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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율 Aug 17. 2023

에어컨을 샀지만 마음이 불편합니다


뭐 이런 여름이 다 있어. 장마가 지나간 뒤 본격적인 찜통더위가 찾아왔다. 기온이 연일 35도를 기록했다. 습도는 70퍼센트. 밤에는 질세라 열대야가 이어졌다. 나는 이 주일째 잠을 설치고 있었다. 새벽 두 시에도 깨고 세 시에도 깬다. 한 번 깨면 다시 잠들지 못하는 게 특징. 


자자, 제발 자자. 속으로 외치지만 침대 위를 괴로이 뒹굴 뿐. 침대는 불을 땐 온돌방처럼 뜨끈뜨끈하다. 선풍기를 틀면 더운 와중에 발이 시리다? 이것이 뭔 조화여! 나는 선풍기를 벽 쪽으로 돌려 반사된 바람을 맞는다. 역시 흡족하진 않다. 조금만 덥거나 추워도 부르르 떠는 공주님 몸. 맞추기가 참 어렵다.  


집에 에어컨이 없냐고요? 물론 있지요. 거실 천장에 달려 있다. 남편과 아들이 자는 방은 시원하다. 거실 옆에 붙어있으니까. 집이 엄청 큰가 보다 착각하시려나? 이십 평대 작은 집이올시다. 단 요상하게 길쭉한 구조가 문제. 끝으로 빠진 내 방으론 미처 에어컨 바람이 닿지 않는다. 


(제주살이를 했던 작년을 제외하고) 재작년까진 그런대로 지낼 만했다. 방문 앞에 선풍기를 틀어 찬 공기를 안으로 들어오게 하면 되었다. 엄청 시원하진 않아도 밤에 자다가 깰 정도는 아니었다. 올해는 그 방법이 통하질 않는다.   


이 주일을 시달렸다. 도저히 안 되겠다. 나는 벽걸이 에어컨을 검색해 보았다. 좁은 집에서 에어컨을 두 대나 쓴다는 게 마뜩지 않았다. 그럼에도 뾰족한 해결책이 없었다. 엘지 에어컨이 눈에 들어왔다. 비교적 저렴하고 배송도 빠르단다. 그러나 이미 8월 중순인데? 한여름에 에어컨을 주문하는 건 살림 초보도 안 하는 짓인 걸. 


요즘 불면증 약을 줄이고 있다. 데파스는 끊었고 리보트릴을  반 개로 만들었다. 알약 5개에서 3개 반이 된 것이다. 순조롭게 진행하는 중에 열대야가 발목을 잡는다. 애써서 줄여놨거늘 더워서 못 자는 사태? 어서 잠을 자야 일을 제대로 할 텐데. 주변에 하소연을 했다. 일관적인 성화가 돌아왔다.  


"8월이 뭔 대수냐, 하루라도 잘 자는 게 낫다!"

"빨리 사시오, 고민은 배송만 늦출 뿐이오!"





덕분에 망설이던 주문 버튼을 눌렀다. 그게 지난 금요일. 오오 월요일 이른 아침에 배송과 설치가 완료되었다. 빠르다 빨라. 아마 6, 7월이었다면 오래 걸렸을 터이다. 여름 끝물이라 총알같이 온 것 같다. 나 같은 사람은 많지 않을 테니 말이다. 


후덥지근한 방이 천국이 되었다. 낮에는 일하기에 쾌적한 온도 27도를 유지한다. 책상 앞에 있을 때 나에게 딱 맞는 온도다. 한밤엔 25도로 낮춰놨다가 자기 직전에 에어컨을 끈다. 그럼 밤새 시원하다. 이틀 동안 푹 잤다.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하지만.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해가 갈수록 펄펄 끓는 지구. 여기저기 할 것 없이 가뭄과 폭염, 폭우에 잦은 태풍까지. 기후 변화를 넘어서 돌이킬 수 없는 기후 위기가 닥친 것을 온몸으로 실감한다. "올여름처럼 덥기는 생전 처음이다!" 했더니 아들은 "엄마, 올여름이 남은 인생 중에 가장 시원한 여름일 거야."라고 한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섬뜩하다. 


에어컨을 돌릴 때는 막대한 전기에너지가 든다. 그것을 생산하기 위해 화력발전소를 더욱 가동하겠지, 당연히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어나겠지. 더워서 에어컨을 틀고 에어컨 때문에 더 더워지고. 이건 물고 물리는 악순환일세. 내가 에어컨을 하나 더 늘리면서 지구 온도 상승에 일조를 했구나 싶다, 에효. 


그래도 달라진 게 있다. 과거엔 오존층을 파괴하던 냉매를 썼는데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몬트리올 의정서와 교토의정서에 따라 이제는 오존층에 영향이 없는 HFC 계열 냉매를 쓴단다. 하지만 바꾼 냉매도 여전히 지구 온도를 올리는 건 마찬가지. 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는 에너지를 개발하고 상용화하는 것, 어떤 것보다 시급한 문제가 아닐까 싶다.            


할 수 없이 에어컨을 샀으나 최소한으로 써야겠구나. 그나마 27도에 만족하는 사람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예전에는 후손을 위해서 지구를 지켜야 한다고들 했다. 어느새 당장 내가 살기 힘든 세상이 되어버렸다. 뛰쳐나가 환경운동에 매진할 배짱은 없고. 지금 내가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하려다 포기한 미니멀리즘이 떠오른다. 따지고 보면 매우 친환경적인 라이프스타일이다. 진정한 미니멀리스트는 못 되겠군, 이라며 '유사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편. 일명 나이롱 미니멀리스트라고나 할까. 1년 동안 옷 안 사기를 시도했는데 실패했다. 단 노력이 의미 없진 않았다. 입지 않는 옷을 다 치웠고 꼭 필요만 것만 고심해서 사게 되었으니까. 그릇은 최소한의 개수를 유지한다. 손님용 같은 여벌은 마련하지 않는다. 신발은 용도별로 딱 하나씩만 사용한다. 신발장에 빈자리가 났을 때만 새 걸 들인다.


완벽한 미니멀은 아니어도 유사 미니멀을 실천할 수 있는 원동력은 (우습게도) 작은 집 때문 아니 덕분이다. 공간이 좁아 물건을 늘어놓을 자리가 없다. 뭔가를 사고 싶어도 도통 놓아둘 데가 없으니까요. 소파와 TV가 없는 이유는 이렇게 간단하다.   


아 음식물처리기 이야기도 해야겠다. 남편이 지인에게 강매를 당해 구입했다. 벌써 10년이 넘었다. 남은 음식물 찌꺼기를 잘 헹구어 넣으면 고운 흙으로 만들어 준다. 마술 같다. 안에 흙이 차면 가끔 퍼내어 뒷산에 버린다. 냄새나는 음쓰 봉지를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고 귀찮음도 해결된다. 정말 여러모로 친환경적인 제품이다.


적어 놓고 보니 나도 지구를 위해 조금은 노력하는 것 같다. 죄책감이 1밀리쯤 줄어드는 느낌적인 느낌? 여러분 일상의 작은 실천은 무엇이 있나요?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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