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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율 Dec 27. 2023

국제거리에 카페가 없다니 말이 돼?

<오키나와 여행 2023. 12. 10 ~ 13>


3박 4일의 일정 중 두 번째 날. 아침을 사 먹으려고 숙소를 나섰다. 호텔에선 조식(뷔페)을 제공하지만 나는 신청하지 않았다. 느긋하게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적당한 카페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토스트와 커피 한 잔이면 충분했으니까. 어제의 더위를 떠올리며 반팔을 입었다. 어라 밖은 흐리고 바람도 분다.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죄다 두꺼운 옷을 입었다. 드디어 시원해진 건가? 나는 기뻐하며 방으로 돌아가 긴팔 티셔츠로 갈아입었다. 하늘이 안 보이는 벽 뷰의 방에선 날씨를 가늠하기가 어렵단 말이지.      


길 건너에 아침 메뉴를 파는 카페가 있었다. 물론 구글 맵을 뒤져 찾았다. 토스트에 계란, 커피까지 세트로 파는데 평이 아주 좋았다. 카페 안 서너 개 테이블엔 이미 손님이 꽉 찼다. 하나같이 빈 밥상을 마주하고 앉았다. 이제 요리를 시작해서 나오면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 평범한 토스트를 먹자고 30분 이상 기다릴 일인가. 나는 발길을 돌렸다. 카페가 여기뿐이겠냐고.


역시 국제 거리 쪽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자고로 관광지에서 카페 찾기란 누워서 떡 먹기 아니겠어. 어젯밤과는 달리 조용한 아침, 대부분의 식당은 오픈 전이고 기념품점들만 물건을 내어놓느라 부산했다. 거의 길 끝부분에 도달할 때까지 카페가 전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심히 당황스러웠다. 길을 걷다 눈에 들어오는 카페에 들리는 게 나의 취미이자 즐거움이거늘. 우연한 만남이란 여행의 특권이자 낭만이 아닌가. 국제 거리는 '그런 낭만 따위는 고이 잊어 주세요!'라고 외쳤다. 기온이 그새 올라가 이마와 등짝에 땀이 흘렀다. 그냥 반팔 입을걸!


구세주 구글 맵을 다시 켰다. 겨우 두 개의 카페를 간신히 찾았다. 1번 카페는 오키나와현 청사 지하에 있고 2번은 돌아돌아 멀리 골목에 숨었다. 여행 와서 공무원들이 드나드는 카페(그것도 지하)에 가는 건 좀 폼이 안 나지. 나는 2번 카페로 향했다. 맵 선생님은 20분을 걸어가란다. 아이고야, 아침밥 먹기가 이리도 힘들 줄이야. 내일은 그냥 호텔 조식을 사 먹어야겠다. 그나저나 이토록 카페가 없는 여행자 거리라니 이게 말이 되냐고.



국제 거리 사이에 난 뒷골목을 한참 걸어 작은 공원을 통과했다. 남쪽나라 섬답게 얼기설기 늘어진 열대 나무들이 서있다. 공원 안은 지나가는 사람이 없어 고요했다. 산책하기엔 국제거리보다 이쪽이 훨씬 낫다. 카페는 유이 레일이 지나가는 고가도로 아래 길가에 자리했다. 숙소에서부터 한 시간은 걸어왔다. 여기도 기다려야 한다. 네 무조건 기다릴게요. 더 이상의 숨바꼭질은 사양입니다.


나는 가게 밖의 나무 의자에 앉아 땀을 닦았다. 손수건이 축축해졌다. 바람이 부는 데도 왜 이리 더위를 탈까? 앞으로 더운 나라는 절대 못 갈 것 같다. 지난여름 잠을 못 잘 정도로 더위에 허덕였다. 하루라도 편하게 자려고 뒤늦은 8월 중순, 내 방에 벽걸이 에어컨을 달고야 말았다. 내가 나이 먹는 방식은 갈수록 더위에 약해지는 것이었다.


금세 손님이 빠지고 나도 자리를 얻었다. 카페 안은 역시 좁았다. 일본 가게들은 서너 테이블이 기본인가 보다. 이곳은 주인이 직접 만드는 햄이 맛있다고 구글 후기가 말해주었다. 나는 햄치즈 샌드위치와 커피를 시켰다. 10시 반, 드디어 이 도시가 나에게 아침밥을 허락했다.


오래 기다린만큼 샌드위치는 만족스러웠다. 두툼하고 담백한 독일식 빵 사이에 (구운 돼지고기처럼 보이는) 수제 햄과 야채가 들어있다. 한 입 베어물자 건강한 맛이 감돌았다. 나는 게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한국에서 먹던 샌드위치와는 확연히 달랐다. 투박하지만 고급스러운 가정식 스타일? 단 평소처럼 커피 한 잔 놓고 여유를 부리기엔 어쩐지 눈치가 보였다. 띄엄띄엄 밖에서 기다리는 손님들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일본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느낀 것, 나와 일본은 오묘하게 핀트가 안 맞는다. 전에 교토와 오사카를 묶어서 갔을 때도 뭔지 모를 애매함이 있었다. 밋밋한 여행이었다. 내가 여행에서 기대하는 것과 일본이 내어주는 것 사이에 틈이 있는 것 같다. 여행자가 여행지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여행지가 여행자를 선택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게 맞는 걸까? 오묘하고 애매한 일본 그리고 나하시, 우리 서로 좀더 탐색을 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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