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기 생활 3개월째. 11월에 완전히 실패하면서 오히려 체중이 늘었다. 12월엔 채소 과일식을 하며 찐 살을 빼겠다고 선언했다, 만. 오호통재라. 연말 12월. 이 기간에 가능한 일인가 말이다. 더구나 여행 일정까지 끼었다.
초반 열흘간은 착실했다. 아침은 사과, 당근, 토마토, 양배추를 갈아먹었다. 남편이 지겹지도 않냐고 대단하다고 할 정도였다. 점심 저녁도 두부, 두유, 고구마, 미역국 등 채소 위주로 유지했다. 간식은 최대한 절제했다.
냉장고를 들여다보며 부족한 채소와 과일을 주문했다. 혼자 먹는데 한꺼번에 많은 양을 사기는 부담스러웠다. 소량씩 주문하다 보니 자주 신경을 써야 했다. 반찬을 만드는 수고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채소 과일식을 하면 품을 들여 반찬을 만들지 않아도 되어 편하다.
요리 방법도 갈거나 찌거나 삶으면 끝. 이보다 간단할 수는 없다. 채소를 미리 씻어 자르고 소분해 놓아야 바로 먹을 수 있다. 매번 칼질을 하는 것도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 전날 밤에 냉장고에서 과일과 채소를 꺼내 놓으면 한기가 가셔 다음날 아침에 먹을 만했다. 한겨울이어도 날이 포근해서 먹기가 힘들지 않았다.
그 후 3박 4일의 일본 여행이 흐름을 반대로 돌려놓았다. 워낙 디저트가 다양한 일본, 이것저것 간식을 맛보았다. 의외로 맛이 괜찮았던 오리온 맥주도 매일 마셨다. 맥주만 먹나? 안주도 있어야지. 편의점과 백화점 지하 매장에서 사 온 주전부리를 안주 겸 곁들였다. 여행에서 음식을 제한하기는 애초에 불가능했다. 솔직히 그럴 의지도 없었다.
문제는 여행 중이 아니라 여행 후였다. 여행이래봐야 겨우 4일이 아니던가. 돌아와서 다시 모범생이 되었으면 좋았을 것을. 심지어 귀국길에 나하공항에서 일본 과자를 (남편 선물로) 다섯 박스나 사 왔다. 남은 엔화를 털어버리려는 의도였다만. 실제론 집에 있는 내가 거의 다 먹었다. 한번 터진 입맛은 계속 자극적인 음식을 요구했다. 크리스마스를 그냥 지나갈 순 없잖아. 와인과 피자를 배불리 먹었다. 그 외에도 연말까지 캔맥주, 케이크, 쿠키 등을 죄책감 없이 흡입했다. 이땐 이미 포기 상태였다.
특히 아침에 갈아먹던 채소 과일과 멀어졌다. 꽤 따스했던 날씨가 강추위로 돌변한 탓이다. 뜨끈하지 않은 음식은 먹기가 싫어졌다. 내 안의 악마가 속삭였다. '31일까지만 먹자, 31일까지만. 새해부터 시작하면 되지.' 그런 말은 참 잘 들어요. 2024년이 되었다. 그리고 체중은 더 불었다. 아랫배가 불룩하다.
완벽한 절제는 불가능하다는 걸 안다. 나는 그렇게 못한다는 걸 잘 안다. 그러나 한 번 무너지면 갈 데까지 가는 게 큰 문제. 단단했던 결심이 봉인 해제된다. 나에게 지나치게 관대해진다. 한두 번의 예외가 전체를 망쳐 버린다. 핑계 대지 말고 정도를 지켜야 하는 이유다.
건강식과 일반식을 7 대 3 정도로만 유지해도 괜찮다고 한다. 그러나 5 대 5, 3 대 7 이렇게 거꾸로 달려간다. 나의 의지력이란 쿠크다스보다 약하다는 걸 재확인했다. 특히 나도 모르는 사이 간식을 매우 즐기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초반에 겨우 열흘 동안 건강식을 지키고는 이후 정신없이 간식에 빠졌다. 일종의 보상 심리가 작용한 것 같았다.
결국 환경을 구축하는 수밖에 없다. 냉동실의 간식을 몽땅 치워야 한다. 아예 집안에 들이질 말아야 한다. 그래도 못 참을 경우를 대비해 대체 음식을 마련해야겠다. 달달한 군고구마나 딸기 정도가 좋겠다. 쿠키나 붕어빵, 핫도그보단 나을 것이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지만 도전하는 동물이기도 하다. 1월엔 간식 빼기, 다시 도전! 대부분의 간식은 밀가루로 만들어져 있으므로 저절로 밀가루 음식 빼기도 되시겠다. 만화 속 캔디는 아니지만 넘어져도 슬퍼도 울지 말고 일어나야지. 건강한 식생활이 몸에 붙을 때까지 빼기 생활은 계속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