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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율 Jan 08. 2024

그날 그곳에서 우연히 만날 확률은?

나하 성과 긴조정 다다미 길

<오키나와 여행 2023. 12. 10 ~ 13>


유이 레일을 타고 나하 성에 가는 날. 이 꼬마열차는 첫날 숙소를 찾아갈 때 타보았다. 나하공항 역이 우중충하기 짝이 없었는데 여기 겐초마에도 같은 상황이다. 그래도 그날은 북적북적해서 사람 냄새가 났다. 일요일이라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화요일, 역도 전철 안도 한가했다. 다만 전철이 새 거였다.  


전광판이 있어 다음 역을 알아보기 쉬웠다. 열차 안은 한가했다. 자리가 듬성듬성 비었다. 맞은편에 까만 겨울 교복을 입은 남자아이가 앉았다. 나는 세월을 거꾸로 돌렸나 두 눈을 의심했다. 세상에, 내 고등학교 시절의  남학생 교복이었다. 목둘레 깃이 동그랗게 올라가는, 영화 '친구'에서나 나오는 옛날 교복 말이다. 아직도 저걸 입고 있다니!


나의 중고등 시절은 복장 자율화의 과도기였다. 중학교 때 처음으로 머리 자유화가 되었다. 오직 단발머리만 가능한 시대에서 약간의 자유가 허락된 것이다. 나와 친구 두 명은 반에서 일등으로 커트 스타일로 머리를 잘랐다. 담임 선생님은 "이 녀석들아, 이쁜 단발을 꽁지 빠진 수탉처럼 만들어 왔냐?" 하며 아쉬워하셨다. 고등학교 때는 교복자율화가 되었다. 소풍날 위아래로 사복을 입었던 게 생각난다. 민주화의 바람이 수십 년 굳었던 교복과 머리 스타일의 변화를 불러왔다.


언젠가부터 대부분의 학교에서 다시 교복을 입는 걸 보고 나는 의아했다. 얼마나 어렵게 얻어낸 자유인데 뒷걸음질을 칠 수가 있나. 하긴 요즘 교복의 의미가 옛날과는 다르니까. 아이들은 일종의 패션처럼 교복을 생각하는 듯했다. 스타일도 다양하고 예쁘기도 하고. 우리 땐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얼굴 화장까지 자유로운데 뭘 걱정하는겨.


일본의 교복을 볼 때마다 화들짝 놀란다. 어쩜 40여 년 전의 한국 교복과 똑같지? 아니 일제 시대와 비슷하다고 해도 맞을 것이다. 색깔이라도 알록달록하면 나을 텐데 고집스러운 검. 정. 색. 변화에 익숙한 한국인으로선 느리다 못해 멈춰 선 듯한 일본의 모습이 매우 당황스럽다.    


몇 년 전 화재로 불탄 나하 성은 아예 안 가는 여행자가 많다지만. 류큐 왕국의 유산이라 겉모습이라도 보고 싶었다. 드디어 날씨가 조금 시원해졌다. 22도에 바람이 분다. 여전히 난 반팔을 입었다. 습도가 높아서 아주 서늘하진 않았다. 걷기 딱 좋은 날이다. 비록 햇빛은 없지만 차라리 이게 낫지. 일본인들은 두꺼운 외투까지 입었다. 목도리를 한 남자도 있었다. 오키나와가 워낙 더운 곳이라 저들에겐 꽤나 추운 날씨인가 보다. 여행지에서 흐린 날을 반길 때가 다 있네.


굵은 가지가 길게 늘어진 돌담길을 걸어 성문 앞에 도착했다. 같이 걷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어서 맞는 길인지 긴가민가했다. 나는 늘 길을 잃는 편이라 스스로를 못 믿는다. 남들이 올린 나하 성 사진을 보면 푸른 잔디가 가득하던데 내가 아무래도 엉뚱한 방향에서 왔나 봐. 어쨌거나 왔으면 된 거지.



화재 전의 모습을 입구에 그려 놓았다. 빨간색 건물이 독특하고 아름답다. 오키나와 사람들에겐 참으로 가슴 아픈 현실이겠다. 일본에 합병되기 전 류큐 왕국의 유산이 몽땅 불타 없어졌다. 자신들의 뿌리가 훼손된 느낌일 것이다. 어디선가 보았는데 오키나와 사람들은 일본 사람이라기보다는 류큐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민족과 역사가 다르니 그럴 법도 하다.


사실 성문을 제외하곤 그다지 볼거리는 없었다. 그럼에도 복원 중인 내부를 공개한다. 원래 모습의 사진과 남은 조각을 전시하고 이런 식으로 재건하고 있다,라고 알려준다. 불에 타 흉한 모습을 감추는 게 아니라 복원하는 과정을 하나하나 보여주는 건 대단한 자신감이 아닐까. 덤으로 계속 입장료를 받을 명목도 되고 말이다. 일석이조, 현명하다.  


올해 내 몸은 체온 조절 장치가 고장 난 게 틀림없다. 나는 반팔을 입고도 여름처럼 목이 말랐다. 커다란 나무 아래 학생들이 단체로 모여 있다. 대충 저곳에 쉼터가 있을 듯. 건물은 식당이었고 물은 팔지 않았다. 양옆의 기념품 노점 끝에서 간신히 생수를 샀다.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목을 축였다. 앉아있으니 땀이 가시고 서늘해졌다.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졌다. 장마처럼 쏟아지진 않겠지?


나하 성 인근에 있다는 긴조정 다다미길을 찾아갔다. 구글맵이 가리키는 대로 한적한 골목길을 걸었다. 동네에서 현지인 얼굴 보기란 하늘의 별 따기인가? 역시 마주치는 주민이 없었다. 가다가 카페가 나타나길 기도했다. 기도씩이나 하는 이유는 나하에서 우연히 카페를 발견하기란 또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니까요. 잠깐씩 카페에서 노닥거리는 건 여행자의 국룰 아니냐 말이다. 여긴 국룰이 안 통한다.


하늘의 별은 딸 수 없었고 비만 쏟아졌다. 내내 흐리고 꾸물거렸던 날씨라 이상하진 않았다. 우산을 꺼내 썼다. 빗줄기가 거세서 운동화가 젖기 시작했다. 비 오는 동안 카페에서 느긋하게 차 한 잔 마시면 딱 좋을 텐데. 구글맵을 뒤졌다, 야호! 바로 앞 오르막에 카페가 있다. 그러나 문을 닫았다.


실망하며 내려가다가 비에 홀딱 젖은 서양 여성 두 명과 만났다. "헬로!" 인사를 하자 그들은 어깨를 으쓱하며 하하 웃었다. 당신이 보기에도 우리 모습이 꼴사납지? 하는 표정이었다.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도 멀쩡한 그들의 체력이 부러울 뿐이다. 나는 어느 집의 처마 밑에 섰다. 비가 잦아들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굵은 빗줄기가 서서히 가늘어졌다. 언제까지 서 있을 순 없고요, 나는 다다미 길을 탐험했다. 계단이 많은 내리막인 데다 미끄러웠다. 넘어지면 큰일이다 싶어 살금살금 걸었다. 한 할머니가 우산을 들고 올라왔다. 오르막 계단이 익숙한 듯 차근차근 느리게. 근처에서 처음 만난 현지인이었다. 말을 걸진 못 했지만 내심 반가웠다. 다다미길은 중간에 여러 갈래로 나누어졌다. 나는 재미 삼아 옆길로 샜다가 돌아서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다다미 길이 끝났다. 카페 금단 현상이 극에 달했다. 무조건 카페를 찾으리! 휴식이 필요해! 믿을 건 구글맵 오직 너다. 다행히 케이크가 맛있다는 카페를 알려주었다. 7분 거리, 가깝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어라, 여긴 카페가 아닌 온리 베이커리? 다양한 조각 케이크가 맛깔스럽게 진열되어 있지만 내부는 좁고 정신이 사나웠다. 테이블은 구석에 딱 하나. 거기 앉으려면 거의 찌그러져야 할 판이다. 바로 나갈까 말까 5초 정도 고민했다.  



에휴, 그냥 주문을 하자. 나는 앙증맞은 블루베리 케이크를 골랐다. 크기가 손바닥 절반만 했다. 어지간히 작기도 해라. 그런데 음료는 안 파나요? 직원은 입구의 자판기를 가리켰다. 고급 케이크에 자판기 음료라. 나는 홍차를 눌렀다. 어수선한 홀에 있기가 싫어 쟁반을 들고 테라스로 나갔다. 케이크만 만들기도 바쁘니 먹을 사람은 밖에서 먹으시오,라고 말하듯 테라스에 테이블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이제야 소망했던 여유로운 순간이다. 나는 케이크를 조금씩 맛보았다. 달지 않고 부드럽고 은은하다. 엄청 맛있는데! 무시했던 자판기 홍차 맛도 나쁘지 않았다. 축축한 등이 말라서 개운했다. 가방을 메고 다녀 항상 등에 땀이 찼다. 점심을 어디서 먹을까 검색하던 중, 옆자리에 중년 부부가 앉았다. 엇 한국말이다. 두 분 다 말투가 나긋나긋하다. 남편이 아내가 하는 말마다 부드럽게 맞장구를 친다. 와 저 나이에 사이가 참 좋구나. 의문의 1패를 당한 기분. 흐흐흐.


그들을 방해할까 봐 일부러 말을 걸지 않았다. 여행지에서 한국인을 만났다고 반가워하면 외려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오키나와처럼 한국인 여행자가 많은 곳은 더욱 조심해야 한다. 잠시 후 "저기, 혹시 얼마 전에 의왕에서 여행 강의하셨던 작가님 아니세요?" 하는 말이 들렸다. 나는 고개를 번쩍 쳐들고 그녀를 마주 보았다.      


어머나. 얼마 전 의왕에서 4주 동안 강의를 진행했다. 수업 중에 흘리듯이 오키나와 여행을 간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때 한 분이 지난주 강의가 너무 도움이 되었다며 미에로화이바를 건네주셨다. 성의가 고마워 즐겁게 받았다. 본인도 곧 오키나와에 간다면서 설마 거기서 만날 일은 없겠죠? 했던 것이다.


남편분도 "말씀 많이 들었어요. 여기서 만나 뵐 줄은 정말 몰랐네요. 세상 참 좁아요!" 반가워하셨다. 삼일 만에 한국말로 수다를 떨었다. 이분들도 나처럼 렌터카를 빌리지 않았단다. 둘이서 버스 타고 배 타고 돌아다닌다고 한다. 초보자는 아녀, 여행 좀 하는 분들이다. 숙소가 어딘지 물어보기에 국제거리 초입에 있다고 했다. "설마 알몬트 호텔은 아니죠??" 설, 마, 숙소까지 같은 곳이었다.  


그날 그 시간에 그 장소에서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게다가 같은 숙소에 묵을 확률은? 우연치곤 엄청난 우연이다. 나는 숙소 근처에 점 찍어둔 꼬치집을 알려주었다. "상황이 되면 오늘 저녁 7시에 거기서 만나요. 꼬치랑 맥주로 저녁 먹자고요. 하지만 꼭 나오시지 않아도 돼요. 내키면 나오세요." 여행지에서 하는 약속이란 의지와 상관없이 지켜지지 않을 공산이 크다. 즉 절반의 약속이라 보면 된다. 과연 우리는 또다시 만났을까, 아닐까? 다음 글에서 공개합니다. 크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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