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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율 Feb 17. 2024

프롤로그:베트남은 좋지만 더운 건 싫어

베트남에 다시 갈 생각은 없었다, 작년 12월까지만 해도. 2022년이 가기 전에 바람만 쐬려고 다녀온 오키나와 3박 4일. 코로나 시국을 지나 처음으로 시도한 여행이었거늘, 어찌나 재미가 없었던지. 사실 이러기도 참 어려운데 그 어려운 걸 일본이 해냈다. 나랑 일본은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걸 새삼 확인했다.


일본 탓만 있을까, 내 탓도 컸다. 조건만 보고 남자를 아니 오키나와를 선택했다. 하나, 비행시간이 짧다(고로 덜 피곤하겠다). 둘, 집에 이미 엔화 현금이 있다(고로 경비가 덜 들겠다). 셋, 12월 날씨가 시원하다(고로 완전 좋겠다)! 세 번째가 특히 마음에 들었다. 덥지 않다면 내가 가장 바라는 조건이었다.


나는 차를 렌트해서 오키나와 전체를 돌아다니고 싶진 않았다. 혼자서 왼쪽 도로 운전을 하기가 겁날 뿐더러 비용이 부담스러웠다. 그저 나하 시내에서 건들건들 산책이나 하고 동네 카페나 들르고 아무 식당에서나 밥을 사 먹고. 평소 내가 즐기던 '느리고 작은 혼행'이면 족했다.


문제는 나하가 전혀 그럴 만한 장소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국제거리를 제외한 시내는 정말 볼 것도 할 것도 심지어 돌아다니는 사람마저 없었다. 그 흔한 동네 카페나 골목 식당을 찾기가 세상 어려웠다. 마치 죽어가는 도시 같았다. 이래서 사람들이 렌터카로 관광지만 도는구나. 내가 심하게 착각을 했던 것이다. 믿었던 날씨 또한 예상보다 더웠다.         


여행을 다녀오면 행복해 죽을 것 같진 않더라도 목소리가 한 옥타브 올라가는 맛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오히려 씁쓸함만 남겼으니 오호통재라. 의문의 1패를 당했다. 나는 외쳤다. '여행이 내게 이럴 순 없다!' 망한 여행은 흥한 여행으로 달래야 했다.


위와 같은 조금 이상한 이유로 급 베트남 여행을 결정했다. 동남아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라, 생각만 해도 괜히 웃음이 나오는 곳. 역시 베트남이지! 하지만 딱 하나, 더운 건 싫었다. 사실 나는 북부 하이퐁에서부터 남부 껀터까지 대부분의 도시를 가보았다. 빠진 곳은 하노이, 후에 정도. 앗 겨울의 하노이가 20도 언저리라고? 가을이나 마찬가지네. 그럼 무조건 하노이다.


나란 사람은 본래 추위를 많이 타고 더위는 잘 견디는 편이었다. 마흔넷에 유방암 수술과 치료를 하면서 몸이 완전히 바뀌었다. 용광로를 품은 듯 시도 때도 없이 열기가 치솟는다. 게다가 한국의 여름은 아열대에 가까운 기후가 된 지 오래. 안팎으로 시달려 이젠 더위라면 '살려주세요!' 소리가 절로 나온다. 확실히 겨울보다 여름을 나는 게 몇 배는 힘들어졌다.


배낭을 메고 혹서기의 미얀마와 네팔을 누비던 나는 사라졌다. 나는 달라진 나를 받아들였다. 앞으로 더운 나라는 가지 않겠다는 결심 아닌 결심이 생겼다. 그렇다고 추위에 강해진 아니고요. 만약 약간 추운 곳과 약간 더운 중에서 고르라면 차라리 추운 낫다는 쪽이다.


그러나. 세상에 선택지가 개뿐이겠어요? 춥지도 덥지도 않은 장소를 찾으면 된다. 봄가을 같은 날씨에 맞춰가면 되는 것을. '아직 소신에게는 미지의 여행지가 많이 남아있사옵니다.'


예를 들면 1월의 하노이 같은 곳 말이다. 궁금했던 사파까지 끼워서 다녀오면 완벽하겠어. 베트남에서 사파가 가장 춥다고는 하지만 영하로 내려가진 않는단다. 아유, 그 정도야 껌이지. 걸어 다니기엔 안성맞춤 아닌가. 나는 일주일 간의 '하노이 더하기 사파 여행'을 결정했다.  




<연재 브런치북>

화요일: 얼떨결에 시엄마

토요일: 베트남이 춥다니요


<완결 브런치북>

그래서, 베트남

중년에 떠나는 첫 번째 배낭여행

유방암 경험자입니다만

제주살이는 아무나 하나

무작정 제주, 숲길과 오름

딱세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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