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율 Mar 06. 2024

돌직구 미용실 원장님

나이가 들긴 들었나 보다. 뒤통수 오른쪽 머리카락이 홍해처럼 갈라진다. 자꾸 머리카락이 빠져서 그렇다. 머리를 감은 날은 드라이를 신경 써서 하니까 좀 낫다. 다음날이 되면 여지없이 뒤통수에 홍해가 펼쳐진다. 그럼 매일 머리를 감으라고요? 유분기가 적은 편이라 이틀에 한 번이면 족하다오.


외출하기 전에 늘 손거울을 들고 뒷머리를 확인한다. 오늘은 더 갈라졌나 덜 갈라졌나. 음 뭔가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파마를 할까? 그러면 괜찮을까? 오랜 단골 미용실이 있지만 거긴 안 되겠다. 커트는 참 잘하는데 파마는 별로거든.


홍해 현상만 없애면 되니까 굳이 비싼 데를 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검증이 되지 않은 듣보잡을 갔다가 망하면 어째. 동네 소식이 모이는 인터넷 카페에서 '미용실 추천'으로 검색을 했다. 대형 미용실보단 세심하게 챙겨주는 일인 미용실을 찾았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평이 좋은 작은 미용실 발견.


전화로 예약을 해놓고 찾아갔다. 


"제 머리가 이렇게 갈라지는데요, 파마를 하면 없어질까요? 게다가 오른쪽 방향으로 막 쏠리는 머릿결이에요. 이것도 좀 감안해 주세요."

"가마가 한 둘이 아니에요, 갈라지게 생겼어요! 파마를 하면 훨씬 낫긴 할 거예요. 싱을 두 개 정도 박고 말아 드릴게요."

"엇 가마가 여러 개라고요? 그런 말은 처음 들어요! 어쨌든 빠글빠글한 건 싫거든요. 자연스럽게 부탁드려요."


여느 미용실 원장님처럼 손님의 비위를 맞추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가마가 한 둘이 아니라고 혀를 차는데 조금 놀랐다. 미용사치고 상당히 직선적인 화법을 구사한다. 마른 몸매에 라면발 같은 웨이브의 긴 머리를 하고 있었다. 예민해 보이는 인상이다. 그런데 검붉게 부르튼 입술이 돋으라 졌다.


"에고, 명절 연휴 때 많이 힘드셨나 보다. 입술이 다 부르텄네요."

"연휴라서가 아니라 저는 원래 잠자는 게 너무 힘들어요. 잠만 자고 일어나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온몸이 아파요. 잠자면서 제가 뭘 하는지 모르겠어요. 자는 게 고역이에요. 깨어있을 때가 훨씬 몸이 편해요. 그렇다고 잠을 안 잘 수도 없잖아요." 


그녀에게 잠이란 휴식과 회복의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희한하다. 나도 불면증이 있어서 잘 안다. 보통 잠이 안 들거나 부족해서 문제가 된다. 잠자는 시간 자체가 사람을 괴롭힌다니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다. 어릴 때부터 평생을 그랬다고 한다. 


나는 갑자기 정신과 의사 비슷한 심정이 되었다. 마침 먼저 왔던 손님들이 가고 둘만 남았다.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혹시 무슨 마음의 문제가 있진 않을까요? 정신적인 게 원인일 수도 있겠죠."

"스트레스가 많아서 그래요.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지를 못하니까요."

"누구나 그런 면이 있어요.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돈 걱정 없이 마음껏 써보고 싶고 여행도 실컷 다니고 싶고. 그런 게 안 돼서 그런가 봐요. 지금 생활에 만족해야 하는데 자꾸 욕심이 나거든요. 욕심을 버려야 하는데......"


마치 스무 살짜리가 투정하는 듯한 말투로 들리는 건 단순한 내 느낌이겠지? 그녀는 또 말했다. 


"저는 안 늙을 줄 알았는데 저도 늙더라고요. 늙어서 더 힘든 것 같아요."

"몇 살이신데요? 사십 대 초반으로밖에 안 보이는데요?"

"오십이 넘었어요. 남들이 다들 전 안 늙을 거라던데 결국 늙는가 봐요."

"지금도 완전 동안이세요!"

그 정도면 안 늙은 게 맞구먼. 욕심을 버려야 한다면서 욕심이 과하구려. 독특한 캐릭터인 건 분명했다. 나는 어쩐지 원장님이 귀여웠다. 대단찮은 수다를 나누는 사이, 아까보다 그녀의 얼굴이 한층 밝아졌다. 그러곤 툭 던지는 말.


"김밥 드실래요?"


엥, 느닷없이? 김밥을? 어 하는 사이에 그녀가 쌩 나가버렸다. 잠시 후 김밥 두 줄을 포장해서 들고 왔다. 아니 이건 좀 미안한데?


김밥을 펼치며 하는 말.


"제가 먹는 걸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뭘 먹어도 자고 나면 살이 더 빠져요."

"그래서 이렇게 마르셨구나. 잠도 못 자고 잘 먹지도 않고. 그래도 일단 잘 드셔야 해요! 참, 김밥 값은 제가 따로 드릴게요."

"아니에요, 놔두세요. 제가 먹자고 한 걸요."


그녀는 헤헤 웃으며 김밥을 먹는다. 아이 같은 표정이었다. 나도 맛있게 한 줄을 비웠다. 머리에 중화제를 바르고 드디어 롯트를 풀었다. 딱 기대한 대로 나왔다. 뽀글거리지 않는 적절한 웨이브. 홍해가 사라졌다! 아주 맘에 든다. 나도 활짝 웃었다. 다음에 커트도 여기서 해볼까? 이러다 단골 미용실이 바뀌려나?


기쁜 나머지 파마 비용에 김밥 값을 더한다는 걸 깜빡했다. 아 금붕어 기억력. 다음에 올 땐 간식이라도 들고 가야겠다. 아니다, 먹는 걸 싫어한다니 뭐가 좋을까? 조금 고민이 되네. 




     


    

  


   

매거진의 이전글 'Too much'한 사람이 심리 상담을 받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