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율 Mar 04. 2024

'Too much'한 사람이 심리 상담을 받습니다

상담을 받기로 결심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언젠가'라는 막연함에서 '지금 당장'이라는 결론까지 오래 걸린다. 흔히 말하는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거리랄까. 멀고도 멀다. 어렵게 결심을 한 뒤엔 '누구'를 찾아가느냐 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가 남는다.


이십여 년 전 부부상담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아는 상담사도 없고 상담사를 연결해 줄 사람도 전혀 없었다.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한 상담소를 발견했다. 홈페이지를 정성껏 관리하는 걸 보니 믿음이 갔다. 싫다는 남편을 겨우 설득해 첫 상담을 받았다.


그러나 결과는 처참했다. 남편은 상담이 끝나자마자 화를 내며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비싼 심리검사비와 상담료만 날리고 단 한 번만에 파투가 났다. 내 눈에도 상담사가 미숙해 보였다. 하기 싫어서 핑곗거리를 찾던 사람에게 기름을 붓다니. 인터넷 상담 능력과 실제 상담 능력은 아무 관계가 없었다. 그걸 통해 알았다. 우선 상담사를 선택해한다. 그런 다음 (남편은 포기하고) 혼자 간다.


이십 년이 지나서야 나는 발길을 뗄 수 있었다. 반복되는 신호가 질질 끌던 마음을 굳히게 만들었다. 나는 나에게 호감을 느끼는 사람을 만나면 지나치게 나를 내보인다. 아니 까보인다. 때때로 상대가 부담스러워서 도망갈 만큼. 아직 그 정도로 친밀하지 않은데 내밀한 이야기를 불쑥 꺼낸다. 즉 'Too much'한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다.  


물론 말이 통할 거라는 판단과 함께 자연스레 이야기가 흘러가게 된 거지만. 상대방은 적잖이 당황스럽다. '이런 속내까지 듣고 싶지는 않아요'의 심정이 된다. 그걸 눈치채고도 일단 터져 나오는 말을 멈출 수가 없다. 속으로 '이제 그만!'을 외치지만 입이 저절로 움직인다. 입력된 값대로 작동하는 기계 같다.


다행히 난 데 없는 솔직함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금방 친해진다. 하지만 그 반대라면 상대는 차갑게 돌아선다. 작년에 두 번이나 큰 오해를 샀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도저히 내 의지만으로 해결할 수 없겠다. 빨간 불이 켜졌다.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더 이상 미루면 안 되겠다. 이미 많이 늦었다.


나는 주변에 소문을 냈다. 좋은 상담 선생님이 있으면 소개를 해달라고. 자신이 상담을 받았던 선생님을 지인이 추천했다. 그녀를 믿으므로 선생님 또한 믿기로 했다. 작년 8월 말부터 나는 매주 한 번씩 상담을 받고 있다.


상담을 하러 가는 길은 언제나 머릿속이 하얗다. 오늘은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아무 생각이 나질 않는다. 막상 선생님 앞에 앉으면 억울하고 서러웠던 사연은 또 어찌나 많은지. 해도 해도 끝이 없다. 한바탕 쏟아낸 후 시원해지기는커녕 돌아 나오는 발걸음이 무겁다. 묵은 상처를 헤집어 오히려 괴롭다.   


해가 바뀌어도 진전이 없는 것 같았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일까. 만 55년 동안 내 안에 켜켜이 맺힌 감정이 알래스카 빙하만큼 두껍고 무거울 것인데. 어느 세월에 편해질까? 가능하긴 한 일인가? 마음이 조급해졌다. 하지만 수 십 년 인생의 문제를 고작 몇 달 만에 해결 보려는 심보 역시 말이 되질 않는다. 그거야말로 불가능한 일이다. 내겐 시간이 더 필요했다.            




대문 사진 출처: 픽사베이            

매거진의 이전글 그러라 그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