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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율 Mar 23. 2024

호아로 교도소 박물관에 꼭 가보세요

하노이에 박물관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 베트남 민족학 박물관, 호아로 교도소 박물관, 베트남 여성 박물관, 베트남 미술 박물관, 호찌민 박물관, 국립역사박물관, 군사 박물관 등. 역사, 부족 문화, 순수 미술, 여성 등 다양한 주제를 아우르는 박물관이 널렸다. 어디를 가야 할지 고르기가 어려웠다.  


그중 나는 호아로 교도소 박물관, 베트남 여성 박물관, 베트남 미술 박물관을 방문했다. 오가는 날 빼고 4박을 하는 동안 세 곳을 갔으니 꽤 부지런히 움직였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호아로 교도소 박물관이었다.


아침부터 안개비가 내리는 날. 며칠간 덥던 날씨가 쌀쌀해졌다. 숙소 직원들은 춥다고 어깨를 떨었다. 하노이의 진짜 겨울을 드디어 만난 건가. 걸어 다니면 어치피 땀이 날 것 같아서 도톰한 긴팔 티셔츠 하나만 입고 나섰다. 걸으면 시원하고 멈추면 싸늘했다. 너무 얇게 입었나? 숙소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기엔 멀리 왔다. 그냥 버텨야 한다.


나는 올드쿼터를 벗어나 하노이 시민들이 생활하는 거리를 지나갔다. 도로엔 오토바이 물결이 밀려왔고 사람들은 두꺼운 패딩을 입었다. 이젠 길을 건너는 데 선수가 되었다. 외국인 대상 길 건너기 대회가 있다면 상위권에 입상할 자신이 있소.      


호아로 교도소 박물관은 노란색. 베트남에서 중요한 건물은 모두 노란색이다.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빌렸다. 설명을 들으며 관람을 시작했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호아로에 수감된 독립투사들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우리나라의 일제강점기가 저절로 떠올랐다.



당시 제국주의 국가들은 식민지의 국민들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프랑스인들은 베트남 수감자들이 최대로 고통을 느끼게끔 교도소를 설계했다. 건축 자재와 부품을 대부분 프랑스에서 가져왔다. 창문 없는 방과 발목에 족쇄를 채우는 건 기본이다.


좁은 방에 누울 자리도 없을 만큼 많은 인원을 몰아넣었다. 여름엔 못 견디게 덥고 겨울엔 손발이 얼도록 추웠다. 모레가 섞이거나 상한 음식을 내주었다. 죄수들은 여러 번 데모를 해서 조금씩 생활을 개선시켰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일부러 사선으로 기울게 만든 시멘트 감옥방을 보고 나는 경악했다. 30도쯤 기운 바닥에서 족쇄를 찬 발을 위로, 머리를 아래로 두고 누워야 했다. 방에 있는 것 자체가 고문이 되는 방식이다. 저런 걸 고안해 낸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고 구조를 가졌을까.


나는 교도소를 방문하는 프랑스 여행자들이 과연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했다. 선조들이 저지른 악행을 보는 기분은 어떤 걸까. 지나간 역사일 뿐일까, 아니면 반복하지 말아야겠다고 반성을 할까. 언젠가 물어보고 싶다.



죄수들의 사연과 그들이 사용한 물건을 꼼꼼하게 전시했다. 여자 죄수들은 감옥 안에서 몰래 자수를 놓았다. 몸은 비록 갇혀있지만 존엄성을 가진 사람임을 잊지 않으려는 몸짓이었을 게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선물하고자 수를 놓은 여인도 있었다. 감옥에서 선물이라니! 그녀의 어머니는 딸이 정성껏 놓은 자수 천을 죽는 날까지 고이 간직했다고 한다.


아름다운 사연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솜씨 좋은 죄수들이 만든 작품을 프랑스인 관리자가 팔아서 돈을 벌었다. 벼룩의 간을 빼먹는 것보다 더한 짓이었다.       


프랑스의 지배에서 벗어나고 미국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고자 하는 과정에서 다다른 결과가 베트남의 사회주의 사회인 것 같다. 여행자로서 느끼는 베트남은 여느 자본주의 나라들과 다르지 않았지만 말이다.




박물관을 나오자 아까보다 훨씬 추웠다. 안개비가 보슬비로 바뀌었다. 맛집을 찾아갈 기력이 없었다. 길가에 식탁을 놓은 현지인 식당도 싫었다. 바람이 들어오지 않는 따뜻한 실내에서 점심을 먹고 싶었다.


다행히 안에서 먹을 수 있는 식당을 발견했다. 번듯한 인테리어에 정중한 직원까지 음, 외국인 관광객만 대상으로 하는 곳 같았다. 메뉴엔 국적 불명의 음식명이 적혀 있어 무슨 요리인지 모르겠다. 비싼 가격은 둘째치고 맛을 장담할 수 없었다. 나는 안전하게 볶음 국수를 시켰다. 맛 역시 국적 불명. 매우 짰다.  



이불 밖은 아니 식당 밖은 위험했다. 여전히 추웠으니까. 나에겐 두 번째 일정 베트남 여성 박물관이 남았다. 열심히 여성 박물관을 관람했다. 어느새 저녁시간. 기온이 더 떨어졌다. 이젠 걷는 것만으로 추위를 이길 수 없었다. 목폴라와 경량 패딩을 가져왔건만 숙소에서 잠만 자고 있다니. 하노이의 겨울을 우습게 본 대가를 치르는구나.


나는 덜덜 떨면서 걸어갔다. 호안끼엠 호수 앞에서 딱 보이는 유니클로 매장. 홀리듯 들어섰다. 결국 반팔 티셔츠 하나를 사서 안에 받쳐 입었다. 훨씬 낫다. 그러나 숙소에 돌아가 반팔을 벗고 목폴라로 갈아입었다. 충동구매한 옷은 그대로 가방에 들어갔다. 무시하지 말자, 하노이의 겨울을.    


(호아로 교도소 박물관 사진이 없는 이유: 내부가 컴컴해서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노트북에 저장할 때 실수로 날아간 듯. 결국 핸드폰 사진 두 장만 남았다)




<연재 브런치북>

월, 화, 수 : 얼떨결에 시엄마

목, 금, 토, 일: 베트남이 춥다니요


<완결 브런치북>

그래서, 베트남

중년에 떠나는 첫 번째 배낭여행

유방암 경험자입니다만

제주살이는 아무나 하나

무작정 제주, 숲길과 오름

딱세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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