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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율 Mar 24. 2024

쿠킹클래스는 처음입니다

16년 간 여행을 했지만 쿠킹 클래스에 참여해 본 적은 없었다. 웬만한 여행지엔 쿠킹 클래스가 있지만 딱히 내키지 않았달까. 평생 밥을 해온 주부는 여행지에서까지 칼과 도마를 만지고 싶지 않았다. 요리를 안 하는 기쁨이 여행의 이유 중 하나니까요.


하노이에선 특별히, 쿠킹 클래스를 경험하기로 했다. 안 해 본 걸 시도하는 의미에서 말이다. 나는 알아볼 것도 없이 그냥 숙소를 통해 예약을 했다. 인근에 있는 '블루 버터플라이'라는 식당에서 진행한단다. 첫날 숙소 직원의 추천으로 그곳에서 저녁밥을 먹었다. 우아한 플레이팅과 깔끔한 맛이 돋보이는 고급 식당이었다.


오후 3시, 셰프가 나를 데리러 호텔로 왔다. 수업을 신청한 사람은 겨우 세 명. 아마 비수기 겨울이어서 인원이 적은 듯했다. 식당 주방에서 세 학생이 만났다. 한 명은 캐나다에서 사는 베트남 아가씨, 다른 한 명은 네덜란드에서 여행온 아가씨였다. 둘은 만나자마자 유창한 영어로 수다를 떨었다. 아, 나 혼자 소외되는 분위기인가?  


무늬만 베트남 사람이지 어렸을 때부터 캐나다에서 살았다는 그녀. 내가 알아듣든 말든 빠른 영어로 후루룩 떠드는 통에 뻘쭘했다. 네덜란드 그녀랑 두 사람은 쿵짝이 잘 맞았다. 영어가 능숙하지 않은 일행이 있으면 쉽게 천천히 말해 주는 편인데. 요즘 젊은이들에겐 기대하기 어려운 배려였을까.



주방의 널따란 조리대 위에 각자의 앞치마와 도마, 칼, 행주 등을 준비해 놓았다. 오늘 만들 메뉴는 '퍼보(소고기 쌀국수), 분짜(소스에 적셔 먹는 국수), 반쎄오(베트남식 부침개), 넴(스프링 롤)'이다. 이걸 다 만들 수 있을까?


셰프는 퍼보에 들어갈 소고기와 양파, 생강 등을 보여주었다. 국물에 살코기와 뼈다귀, 여러 가지 채소와 향신료를 넣고 오래 끓여야 한다. 들통에선 미리 준비해 놓은 고기 국물이 끓고 있었다.


고백하자면 정확한 요리법은 기억을 못 한다. 상당히 복잡했고요, 요리하면서 메모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로지 내 기억력에 의존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할 리가. 셰프는 메일로 레시피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한국에서 레시피를 받아본들 만들 수 없다는 데 오백 원 걸겠다. 쌀국수 국물이 끓을 동안 우리는 장을 보러 갔다. 내가 첫날 찾아갔던 동쑤언 시장이었다.



셰프는 거리로 나가 시클로를 두 대 잡았다. 저녁 시간엔 길이 붐벼 걸어가려면 너무 오래 걸린단다. 덕분에 쳐다보지도 않았던 시클로를 타보았다. 광장히 편하더군요. 내가 왔었던 아침 시간도 제법 복잡했는데 저녁에 비하면 세발의 피였다. 저녁의 동쑤언 시장은 그야말로 인산인해. 우리의 셰프님은 어리바리한 학생 셋을 이끌고 시장을 누볐다.



먼저 안으로 들어가 점포마다 들러 각종 식재료를 설명해 주었다. 그다음 밖으로 나가 노점을 순례했다. 그는 주로 노점에서 재료를 샀다. 채소와 피시 소스, 라이스페이퍼, 쌀가루, 갓 만든 쌀국수 면... 나는 바깥에 그렇게 많은 노점이 있는 줄 몰랐다. 시장을 둘러싼 골목들이 노점 천지였다. 동쑤언 시장의 알맹이는 안이 아니라 밖에 있었던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간식도 사주었다. 꼬치와 동글동글한 도넛빵, 그리고 벌레 전? 이맘때만 강에서 잡히는 벌레라고 한다. 자세히 보면 작은 (붉은색) 지네 모양이다. 물이 담긴 스티로폼 상자 안에서 바글바글 헤엄쳤다. 그걸 넣고 손바닥보다 작은 전을 부쳐 판다. 맛이 고소하고 담백했다. 단백질과 칼슘이 많은 영양식이란다.


전문가와 함께 장을 보는 게 수업의 굉장한 장점이었다. 시장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맛보는 경험은 현지인 셰프 덕에 가능했다. 우리는 식당으로 돌아와 본격적인 요리 수업에 들어갔다. 70퍼센트는 셰프님이 하시고 나머지를 거드는 식이었다.




분짜, 반쎄오, 넴에 모두 다진 돼지고기가 들어간다. 셰프가 먼저 시범을 보였다. 넓적하고 네모난 칼로 리듬에 맞춰 춤을 추며 고기를 다졌다. 타다닥 탁탁 타다다다 탁탁. 우리도 돌아가며 따라 해 보았다. 춤은 더치 걸이 제일 잘 추는 걸로 인정.




다진 고기를 양념해서 동그랗게 빚어 숯불에 구우면 분짜 용 동그랑땡이 된다. 하노이식 분짜는 중부나 남부에서 먹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나는 분짜가 찬 음식인 줄 알았다. 여기선 새콤달콤한 소스가 따뜻했다. 겨울이기 때문인지 원래 북부지방에선 따뜻하게 먹는 건지 모르겠다. 물어볼걸. 비 오는 날 따뜻한 소스에 적셔먹는 분짜는 짱 맛있지.  


채소, 버섯과 함께 다져 양념한 고기를 라이스페이퍼로 말아 튀기면 넴 완성. 흔히 스프링 롤이라 부른다. 길거리 식당에선 돼지고기 맛만 났는데 우리가 만든 건 담백했다.    



나는 반쎄오가 가장 인상 깊었다. 셰프가 말하길 "중부 지방의 반쎄오는 바삭하지가 않아서 별로다. 오늘 제대로 된 반쎄오의 맛을 알게 될 것이다." 처음엔 흘려 들었다. 어디나 자기 동네 음식이 제일 맛있다고 하는 법이니까.


먼저 노란색 쌀가루를 반죽해서 얇게 부친다. 그 위에 새우, 채소, 고기를 다져 볶은 것을 넣어 다시 부친다. 뜨거운 부침을 잘라서 한 조각씩 각종 잎사귀와 함께 라이스페이퍼로 말아 소스에 찍어 먹는다. 중부 지방에선 부침만 먹는다. 마지막에 잎채소와 라이스페이퍼로 말아먹는 부분이 독특했다.


반쎄오는 만드는 족족, 먹어버렸다. 천상의 맛! 내가 이제까지 먹었던 반쎄오는 진짜 반쎄오가 아니었어! 이것이 정통 하노이의 맛인가. 셰프의 말은 사실을 넘어 진실이었다. 존경합니다, 셰프님!



일단 수업은 끝났다. 셰프님은 셋을 나란히 세우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우리는 수료장을 들고 웃었다. 반쎄오로 이미 배가 불렀지만 본격적인 식사는 지금부터였다. 직원이 홀의 식탁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동안 만든 분짜와 퍼보, 넴미리 차려져 있었다. 맥주와 함께 만찬을 즐겼다.


먹을 만큼 먹었고 대화도 나누었고 나는 그만 일어나고 싶었다. 그런데 두 아가씨가 꼼짝도 안 했다. 아하, 너희들끼리 더 놀고 싶은 거구나. 나는 눈치를 채고 빠져 주었다. 젊은이 둘이서 펍을 가든 바를 가든 알아서 노시오.    


쿠킹 클래스는 재미있었다. 참여하는 사람들은 요리에 관심이 있지만 별로 해본 적 없는, 즉 요리에 대한 로망만 있는 젊은이들인 것 같았다. 체험 삼아 해보라는 데에 찬성표를 던진다.


주로 길거리 음식만 먹다가 이번에 정통 요리를 제대로 맛보았다. 그것도 내 손으로 직접 만들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쿠킹 클래스에 계속 갈 생각이냐고 묻는다면 글쎄올시다. 뭐니뭐니 해도 남이 해주는 밥이 나는 젤로 맛있다. 여행지에서 밥을 안하는 재미를 계속 누리고 싶거든요.   

   



<연재 브런치북>

월, 화, 수 : 얼떨결에 시엄마

목, 금, 토, 일: 베트남이 춥다니요


<완결 브런치북>

그래서, 베트남

중년에 떠나는 첫 번째 배낭여행

유방암 경험자입니다만

제주살이는 아무나 하나

무작정 제주, 숲길과 오름

딱세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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