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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율 Mar 28. 2024

진짜 카페와 가짜 카페

미술 박물관을 보고 돌아오는 길. 바람이 불고 쌀쌀했다. 마침 호텔 직원이 추천한 카페가 보였다. 'Cafe Lam'이라고 에그 커피가 맛있는 곳이란다.


잘 됐다 싶어 얼른 들어갔다. 그런데 바람이 슝슝 들어오는 1층 자리가 맘에 들지 않았다. 앞뒤 없이 에그 커피를 먼저 시켰던 터라 나갈 수도 없었다. 나는 2층으로 올라갔다. 거기엔 담배를 피우는 청년들이 모여 앉았다. 너구리 잡는 굴에서 커피를 마시긴 싫었다.


할 수 없이 1층으로 돌아왔다. 추워도 숨은 쉬어야 하니까. 다시 지도를 들여다 보았다. 에고, 1분 거리에 또 Lam 이란 카페가 있네? 거기가 내가 찾던 카페인가. 그럼 여긴 '가짜 Lam'인가? 왜 이름이 똑같지? 혹시 2호점인가?



아니면 유명한 카페와 같은 이름을 달고 나처럼 착각하는 손님들을 끌어들이려는 수작? 에그 커피는 지독하게 진하고 혀가 쨍하게 달았다. 맛이 유명한 맛일리 없었다. 얼른 마시고 일어났다.


엎어지면 닿을 곳에 위치한 진짜 Cafe Lam. 벽에 그림들이 걸려 있다. 가난한 화가들이 그림을 저당 잡히고 커피를 마셨다는 곳이 맞았다. 과거 궁핍했던 시절 예술가들의 모임 장소였다고 한다.



나는 또 에그 커피를 주문했다. 커피는 부드럽고 담백했다. 좀전에 마신 게 인스턴트에 가까운 맛이라면 이건 자연의 맛이랄까. 유명세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어쨌거나 연속으로 진한 커피를 두 잔이나 마셨다. 신기록 달성이다. 오늘밤 잘 수 있으려나?


실은 작년 10월부터 커피 끊기를 시작했다. 하루에 한 잔씩만 마시는 사람이라 카페인 중독은 아니었다. 누군가 커피를 끊었더니 새 세상이 열리더라는 글을 읽었다. 수면의 질이 높아지고 소화가 잘 되고 살도 빠졌단다. 나도 혹시 불면증이 나아지려나 싶어서 실험을 했다. 결과는 아무 상관없음으로 판결났다.


카페인 중독자가 아닌 이상 큰 변화는 없는 것 같았다. 그래도 실험 덕분에 커피를 일주일에 두세 번으로 줄였다. 게다가 원두양을 절반만 사용한다. 그러니까 실제로 5분의 1 정도로 줄인 셈이다. 대신 꽃차나 허브티, 홍차의 맛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여행지에선 도무지 커피를 멀리할 수가 없구려.


나는 베트남 커피를 만드는 로부스타 원두를 즐기지 않는다. 연유를 넣고 달고 진하게 먹는 재미가 있지만 매일 마시기엔 부담스럽다. 고소하고 달고 신 맛이 나는 아라비카 원두가 상급이라고 생각했다. 하노이에서 그것이 편견임을 알게 되었다.




아까 호안끼엠 호숫가에서 커피와 차를 파는 가게에 들렀다. 다양한 로부스타 원두를 진열해 놓았다. 직원은 원두마다 향을 맡게 해주었다. 어머나. 로부스타가 맞나 싶게 향이 그윽하고 고급스러웠다. 인스턴트 커피를 만드는 싸구려 로부스타 말고 질이 높은 로부스타도 많았던 것이다.


나는 원두를 사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로투스차와 꽃차를 샀다. 커피는 여행지에서 맘껏 마시고 집에서는 건강한 차를 마셔야지. 길고 가늘게 여행을 누리기 위해서.    

     



<연재 브런치북>

월, 화, 수 : 얼떨결에 시엄마

목, 금, 토, 일: 베트남이 춥다니요


<완결 브런치북>

그래서, 베트남

중년에 떠나는 첫 번째 배낭여행

유방암 경험자입니다만

제주살이는 아무나 하나

무작정 제주, 숲길과 오름

딱세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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