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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율 Mar 22. 2024

한국어전공 대학생과 노는 날

그녀의 이름은 중


대학생 가이드를 만나는 날. 그녀의 이름은 중(Dung). 하노이 시내 투어를 진행하는 단체 '프리투어 가이드'의 한국어 가이드다. 이곳의 봉사자들은 모두 대학생이라고 한다. 자신이 전공하는 언어로 하노이를 안내한다. 나는 미리 메일을 보내 만날 날짜를 정했다. 하노이가 수도인 만큼 가볼 만한 명소가 넘쳤다.


올드 쿼터, 동쑤언 시장, 호안끼엠 호수, 응옥썬 사당, 롱비엔 대교, 역사박물관, 성 요셉 성당, 베트남 여성 박물관, 호아로 수용소, 하노이 고성, 문묘, 미술 박물관, 호찌민 묘, 호찌민 박물관, 호찌민 생가, 서호, 민족학 박물관.  


대충 적어도 이 정도. 그녀와 함께 몇 군데나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실 가이드 투어를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혼자서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거든. 한국어를 공부하는 학생과 종일 대화를 나누는 자체가 재밌을 것 같았다. 더불어 하노이에 대해서 배우는 시간이 될 테고요.


아침 9시, 그녀가 호텔로 찾아왔다. 나는 혼자서 갔던 호안끼엠 호수, 응옥썬 사당, 올드 쿼터, 동쑤언 시장, 롱비엔 대교를 제외하고 나머지 장소를 추천해 달라고 했다. 나답지 않게 꽤 많은 곳을 방문했구먼. 오랜만의 베트남 여행에 한껏 신이 났다.


우리는 루트를 (탕롱 황성 - 호찌민묘 - 문묘 - 성 요셉 성당) 순으로 정했다. 그녀는 탕롱 황성까지 타고 갈 그랩 택시를 불렀다. 나 혼자라면 당연히 걸어갔겠지만 넵, 무조건 분부를 따라야지요. 그랩 택시는 숙소가 있는 곳을 잘 찾지 못했다.


그녀는 기사에게 여러 번 전화를 걸었고 우리는 큰길까지 나가서 택시를 기다렸다. 올드쿼터 안에서 원래 길을 찾기 어려운 데다 토요일이라 더 복잡하다고 그녀가 설명했다. 기온이 훌쩍 올라 택시 안이 더웠다. 나는 매연이 들어오거나 말거나 창문을 열었다.


탕롱 황성



황성으로 들어가는 입구엔 빨갛고 노란 등이 매달렸다. 양 옆으로 용 탈을 쓰고 노는 아이들과 갖가지 과일이 그려진 벽화 담장을 설치했다. 담장을 배경으로 네 명의 여인들이 사진을 찍었다. 용을 주제로 한 그림들도 전시했다. 곧 다가올 뗏(설날)을 기념하는 의미라고 한다.  


탕롱은 하노이의 옛 이름인데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뜻이다. 황성의 건물은 다 노란색이다. 왕을 상징하는 색깔이면서 햇빛으로부터 건물을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아 그래서 호이안 구시가지의 건물들도 노란색이었구나.




우리는 도안몬(단문), 박몬(북문), 허우러우(후루) 등을 둘러보았다. 띠엔 낀 티엔(경천 전)은 프랑스 침략으로 파괴되고 용이 조각된 돌계단만 남았다. 유적이라는 때뿐이다. 돌아서면 어디가 어딘지 도통 구분이 안된다. 머리엔 그저 '탕롱 황성은 노란색'이란 사실만 뚜렷했다.



나는 더 재밌는 걸 발견했다. 바로 아오자이를 입고 사진 찍는 아가씨들이었다. 호안끼엠 호수에서도 같은 모습을 보았던 터라 이유가 궁금했다. 여기선 한 술 더 떠 청년들까지 가세했다. 비싸 보이는 전통옷을 입고 여자 친구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도대체 왜들 저렇게 사진에 진심일까?


설날 SNS에 올릴 사진을 미리 찍는 거란다. 아하. 설날 연휴가 되면 SNS에 너도나도 근사한 사진 올리기 경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나는 당신도 저런 사진을 찍고 싶냐물어보았다. 그녀손사래를 치며 관심이 없다고 했다. 하긴 경제력이 받쳐주어야 가능한 놀이일 것 같았다.


짜까


탕롱 황성만 보았는데 벌써 점심시간. 그녀는 내가 먹고 싶은 요리를 먹자고 했다. 우리는 짜까(하노이식 가물치 튀김) 전문점을 찾아갔다. 물론 또 그랩을 탔다. 현지인은 웬만해선 걷지 않는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이동할 땐 무조건 택시였다. 절대 택시비가 아깝진 않았다. 나는 그냥 걷는 게 좋다고요. 하지만 가이드 님의 의사를 전적으로 존중해야죠.





짜까는 노란 강황 밀가루를 입힌 가물치 조각을 튀겨먹는 요리. 브루스타에 냄비를 올려 직접 조리한다. 가물치와 미나리, 파 같은 야채를 기름에 익힌다. 여기에 면을 곁들여 젓갈의 일종인 느억맘 소스나 맘똠을 뿌려 먹는다. 가물치 살이 야들야들하고 부드러웠다.


그녀의 고향은 하노이에서 오토바이로 1시간 30분 걸리는 박린이라고 했다. 그녀는 또 한국의 군대라든가 내가 쓴 책에 대해서 물었다. 앞으로 마케팅 쪽 일을 하고 싶고 한국으로 유학을 갈 예정이란다. 한국어 전공 3학년이지만 말이 유창하지는 않았다. 가끔 이해하기 힘들 때는 대충 추측해야 했다. 영어 리스닝보다는 수월하지 싶어 불만은 없었다.


호찌민묘



다음 행선지는 못꼿 사원을 잠깐 들러 호찌민묘. 방부처리된 호찌민의 시신을 모신 곳이다. 아뿔싸, 오후 시간이라 문을 닫았다. 그녀는 무덤을 보여주지 못해 매우 아쉬워했다. 묘를 제외하곤 바딘 광장, 주석궁, 호찌민 생가 등을 모두 보았다. 호찌민은 베트남의 국민 영웅이기에 그녀는 할 말이 많았다. 호찌민을 존경하지 않는 베트남 사람은 아마 한 명도 없을걸?



호찌민 생가에서 호찌민이 얼마나 검소하고 소탈했는지를 듣고 있을 때, 갑자기 한 청년이 다가왔다. 영어로 한국인이냐고 물길래 그렇다고 했다. 우리가 한국어로 대화하는 걸 들은 모양이다. 그도 외국인 여행자들을 데리고 다니는 가이드였다.


아주 반가운 얼굴로 "나는 한국인 여행자가 제일 좋아요! 친절하고 예의 바르거든요." 외치는 것이었다. 돌발 고백에 나는 하하 웃었다. "고마워요!" 대답했다. 그러자 그를 따라다니던 일행 중 서양인 아저씨가 화를 내는 척하며 "그럼 당신은 우리가 싫단 말인가요? 왜 한국인만 좋아하는 거죠?"라고 물었다. 물론 농담이다.


아이고 재밌어라. 동남아시아 여행지에서 유독 한국인을 좋아하는 가이드들을 여럿 만났다. 그들은 자신이 안내하는 외국인 손님을 제치고 나에게 달려와 호의를 드러냈다. 내가 뭐라고, 그저 고맙다. K-팝, K-드라마 등 한류로 한껏 높아진 영향력 덕분이겠지.


문묘


우리는 베트남 최초의 대학인 문묘로 향했다. 공자를 모신 곳이자 아직도 유교 전통이 남아있는 곳이다. 출입문 세 개 중 가운데 문이 황제 전용이란다. 왼쪽은 무관이 오른쪽은 문관이 출입했다고 한다. 우리는 황제처럼 중앙문으로 들어가자며 웃었다. 잔디가 깔린 뜰과 나무가 있어 시원했다. 다른 곳에 비해 한적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여기도 온통 사진 찍는 아오자이 아가씨들이 점령했다. 유명 관광지에 관광객보다 사진객들이 넘쳐나는 겨울시즌, 1월이로다. 나는 조금 다른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젊은이가 아니라 나이가 있는 듯한 한 무리의 남녀들이었다.  



문묘 정면에서 빨간 파일을 가슴에 안고 활짝 웃었다. 그러더니 지붕 아래의 붉은색 현판을 떼어내는 것이 아닌가? 아니 문화재를 막 건드려도 되나? 저걸 떼었다 붙였다 하는 거였어? 저게 뭐길래? 석사학위를 축하하는 플래카드였다. 석사나 박사를 따면 문묘에 와서 자랑스럽게 플래카드를 붙이고 기념사진을 찍는다는 것이다. 문묘는 여전히 살아있었다.


성 요셉 성당


오늘의 마지막 코스, 성 요셉 성당만이 남았다. 우와, 내가 이렇게 열심히 돌아다니다니. 하노이에서 지나치게 부지런해졌네. 나는 보통 하루에 두 군데를 간다. 남들이 들으면 코웃음을 치겠지만 내가 만약 세 군데를 갔다면 아주 많이 다닌 날이다.


전날 혼자서 호안끼엠 호수, 올드 쿼터, 롱비엔 대교에 수상인형극까지. 나로선 상당한 예외였다. 나의 여행 속도는 원래 느리기 짝이 없다. 평소 나와는 아주 다른 행보를 보여주는 하노이 여행이로세. 이게 다 코로나 때문이다. 너무 오랜만에 여행을 오니까 자꾸 돌아다니고 싶어 진다.



성당은 내가 좋아하는 고딕 양식이었다. 외부의 색깔이 거무스름해서 아름답다고 할 수는 없었다. 우뚝 솟은 모습만큼은 웅장했다. 우리는 창문을 장식한 스테인드 글라스와 성당을 축소한 모형을 구경했다. 성모상 하나가 베트남 전통옷을 입고 전통 모자를 썼다. 나는 전형적인 성모상보다 더 마음이 끌렸다.


하루 종일 잘도 다녔다. 그녀가 아니었더라면 이렇게 돌아다니진 못했을 것이다. 전문적인 가이드에 비해 부족할지 몰라도 나는 충분히 즐거웠다. 저녁식사로 하루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따히엔 맥주 거리


우리는 따히엔 맥주 거리를 가기로 했다. 가이드북에서 본 노점 생맥주 '비아 허이'를 마시고 싶었다. 그녀는 가는 길에 먹고 싶은 요리가 있으면 사가잔다. 사온 요리를 식당에서 먹어도 된단다. 스팀으로 찌는 라이스페이퍼 '바잉 꾸온'과 꼬치를 넉넉하게 샀다. 꼬치가 익기를 기다리는 동안 바나나 튀김도 사 먹었다.



맥주 거리에선 플라스틱 의자를 길에 내놓고 지나가는 여행자들을 불렀다. 한국말로 "형, 누나, 아줌마! 맛있어요!" 하고 호객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우리는 아무 데나 앉았다. 그녀는 배가 고팠는지 모닝글로리, 조개 볶음 등 여러 개를 주문했다. 들고 온 것들과 함께 식탁이 가득 찼다.


나는 작은 여자 둘이서 다 먹을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말리진 않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를 데리고 다니느라 고생한 사람에게 이 정도쯤 대접하지 못하랴. 주점에선 내가 기대했던 비아 허이를 팔지 않았다. 여름에만 나온다는데 사실일까? 다른 가게에선 팔지 않을까? 이미 너무 배가 불렀고 결국 비아 허이는 마시지 못했다.


우리는 걸어서 호안끼엠 호수로 돌아왔다. 그녀는 거기에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간단다. 둘 다 종일 땀을 흘렸다. 저녁 바람이 시원했다. 우리는 진하게 포옹을 하고 헤어졌다. 중 씨, 열심히 공부해서 꼭 한국에 유학 오세요!




<연재 브런치북>

월, 화, 수: 얼떨결에 시엄마

목, 금, 토, 일: 베트남이 춥다니요


<완결 브런치북>

그래서, 베트남

중년에 떠나는 첫 번째 배낭여행

유방암 경험자입니다만

제주살이는 아무나 하나

무작정 제주, 숲길과 오름

딱세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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