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진짜 갱년기

나쁘지 않다

by 소율

<2017년 10월 23일>



열이 난다. 요즘 들어 심해진 증상이다. 바야흐로 '진짜 갱년기'를 맞았다.

그럼 가짜 갱년기도 있나? 가짜 갱년기가 진짜로 있었다. 유방암 수술 이후 항암과 호르몬 치료를 하면서 가짜 갱년기를 겪었다. 그 과정이 강제로 갱년기를 만드는 즉, 인위적으로 생리를 멈추게 하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 이미 갱년기 증상을 많이 겪어 보았다. 불면, 열감, 콜레스테롤 증가, 복부 비만, 골다공증 등등. 후유증에 시달리다 못해 항호르몬제인 타목시펜을 끊었다. 그래도 불면증은 나아지질 않았다. 그 후에도 3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수면유도제를 먹어야 했으니까. 총 6년 동안 그 약을 먹어왔다. 징하다, 증말.

최근에야 겨우 잠자는 약, 수면유도제를 완전히 졸업했다. 2년이 넘게 약을 줄이려고 노력한 결과였다. 그러니까 약을 6년째 먹고 있다가 4년이 지났을 즈음부터 줄이기를 시도했다. 처음에 약을 받을 땐 내성이 없다고, 안전한 약이라고 했지만 그건 의사의 생각일 뿐. 실제로 사람마다 예후는 다르다.

처음에는 대여섯 알이었는데 그걸 하나씩 줄여나갔다. 내 경우 약 한 알을 4/1 심지어 6/1씩 쪼개어 먹었다. 한 번에 한 알을 다 빼면 잠을 못 자니 몸에 주는 영향을 최소한으로 하기 위해 쓴 방법이다. 제법 효과가 있어서 그렇게 조금씩 줄이니 많이 먹을 때처럼 여전히 잘 자면서 줄여나갈 수가 있었다.

마지막 한 알이 남았을 때는 정말 고지가 눈앞이구나 했지만 그게 제일 어려웠다. 마이신처럼 캡슐이라 쪼갤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처럼 하려면 캡슐을 열어 속에 든 가루를 다시 반으로 나누어야 했다. 그렇게까지 하자니 '에라, 치사하다!' 그런 맘이 드는 것이었다. 이건 그냥 통째로 빼자. 그러다 못 자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 보자. 처음 1주일은 예상대로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약에 적응된 몸은 단 한 알인데도 그게 없으니 달라고 떼를 썼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아주 못 자지는 않고 서너 시간은 잔 것. 비몽사몽 온통 꿈만 꾸면서 잔 것 같지 않은 잠이었지만, 그거라도 어딘가. 한창 치료받을 때는 진짜 한 시간도 못 잤는데 이 정도면 그래도 양호한 편. 그렇게 1주일이 더 지나자 서서히 잘 자기 시작했다. 대여섯 시간, 다음엔 일곱 시간. 이제 거의 정상적으로 잠을 잔다. 그래도 여전히 이 몸은 까다롭다. 조금 덥거나 조금 춥거나 조금 시끄러워도 자꾸 깨고 한 번 깨면 다시 잠들기 어렵다. 그래도 기특하다. 그 정도는 내가 맞춰 줘야지 어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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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아무 약도 없이 진짜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왔다. 고 생각했다. 그런데 진짜 갱년기가 찾아왔다. 사실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확실치 않다. 생리가 멈춘 건 지난봄 3월 이후였다. 3월에 마지막 생리를 했고 그 후로 지금 10월 말까지 없으니 완전한 폐경이라고 봐야겠지. 난 이 '폐경'이란 말이 참 거슬린다. '폐'라는 단어는 어디에 갖다 붙여도 기분이 좋지 않다. 폐쇄, 폐인, 폐기 등등.

사람을 애 낳는 기계로 보는 느낌이랄까. 사람을 그 용도로만 판단하는 지극히 기능적인 용어. 그래서 '완경'이란 말이 마음에 든다. 비로소 완성된 여자, 완경. 나이 50쯤 되어봐야 진짜 인생의 맛을 아는 것처럼 완경을 해봐야 진짜 완성된 여자가 되는 것이야.

7개월 동안 생리를 안 하는 상태였지만 그게 진짜 완경인지 그냥 치료 후유증인지 알 수가 없었다. 워낙 여름이 더웠고 그래서 더위를 느꼈던 것인지 완경을 해서 더위를 느끼는 것인지 구분이 안 갔으니. 가을이 되어 선선해져서 더 잘 느끼건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특히 더 열이 나는 건 사실이다.

아 이게 진짜 갱년기구나. 치료로 인한 게 아닌 약으로 인한 게 아닌, 내 몸이 자연스레 맞이한 갱년기. 가짜 갱년기가 워낙 엄청난 부작용과 후유증을 가지고 있어서 이 정도야 큰 일은 아니다. 하지만 열감이 다르긴 하다. 어제도 자다 말고 이불 걷어차고 얇은 이불로 바꾸고서야 겨우 잤다. 더워서 깬 것이다. 며칠 전 남편이 썰렁하다고 보일러를 틀었는데 그때도 자다가 말고 더워서 벌떡 일어났다. 얼른 보일러를 끄고서야 누웠는데 다시 잠들기가 힘들었다. 아침에 남편은 한소리를 들어야 했다. 아직 보일러 넣을 때가 아닌데 괜히 틀어서 사람 잠 못 자게 만들었다고. 완전 겨울이 되기 전까지 절대 보일러 틀지 마라 엄명을 내렸다.

6년 동안 가짜 갱년기를 겪었는데 새삼 갱년기를 또 겪을지는 몰랐다. 이미 알고 있는 증상이니 가볍게 넘어가리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다. 참, 사람이 할 건 다 하고 겪을 건 다 겪고 지나가는 게 인생인가벼. 어찌 하나 빼먹지를 않아 그래. 지랄 총량의 법칙이 여기에도 적용되다니. 이건 뭐 고통 총량의 법칙이라 해야 하나? 근데 말이다, 이게 한편으로는 반갑기도 하다. 나도 정상적인 여자의 범주를 따라가는구나 싶은 게 말이야. 환자의 경로보다는 여자의 경로가 훨씬 낫잖아, 안 그래? ㅋㅋㅋ

까짓 거, 갱년기 증상쯤이야, 가뿐하게 겪어주지. 몸에 열이 많아지니 갈증이 나서 자주 맥주를 마신다. 예전 같으면 설사가 날 법한데 그런 것도 없다. 원래 몸이 찬 편이라 한여름에도 얼음이나 아이스크림을 못 먹었다. 어제는 저녁에 짜장면 먹고 나서 얼마나 열이 나던지 아이스크림을 다 사 먹었네. 별 일이다, 가을에 아이스크림이라니. 며칠 전에는 대공원 걷기 하다가 겉옷 벗어던지고 반팔로 걸었다. 나 혼자 그러고 있더라.

나쁘지 않다.
이참에 열 많은 여자, 열정적인 여자, 불타는 여자가 함 되어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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