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2일>
1995년 4월 결혼을 했고 그 달에 아이를 가졌다.
물론 준비하거나 계획한 임신은 아니었다.
혹자는 허니문 베이비가 아니냐는 말들을 했지만 그것도 역시 아니었다.
마치 앞으로의 결혼생활이 절대 계획대로 되지 않으리란 걸 암시하듯,
아들은 그렇게 훌쩍 우리 안으로 날아왔다.
신혼이랄 것도 없이 결혼한 순간부터 우리는 이미 세 식구였다.
그리고 만 18년,
이제 아들은 부모를 떠나 제 갈 길로 날아갔다.
결혼한 이후 처음으로 두 식구가 되었다.
남들처럼 결혼-신혼-임신-출산-육아의 순서가 아니라
결혼과 임신-출산-육아-신혼(?)의 다소 엇갈린 순서가 되어 버렸다.
해방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묘한 심정.
그저께 7월의 마지막 날 아들은 알래스카로 떠났다.
샌프란시스코를 경유해 시애틀로,
다시 최종 목적지인 앵커리지로, 긴 비행이다.
공항에서는 마치 짧은 여행을 가는 것처럼 담담하게 보내주었다.
이미 동남아 날씨가 되어버린 서울은 지독하게 더웠다.
남편 회사 앞 카페에서 시원한 아이스커피 한 잔씩을 마시고
남편은 회사로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텅 빈 아들 방을 들어가 보니 어찌나 정리를 말끔하게 해놨는지.
책상 위는 깨끗하고 장롱 안에는 두고 간 옷들이 가지런히 개어져 있었다.
나중에 부칠 짐들조차 얌전하게 상자에 담아놓았다.
평소에는 먼지 뭉텅이가 굴러다니도록 청소를 안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정리의 달인이 되는 녀석이다.
주인 없는 방을 둘러보고 소파에 앉으니.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곧 현관문을 벌컥 열고 들어올 것만 같다.
이럴 줄 알았는지 때맞춰 남편이 전화를 한다.
위로하려고 한 전화였을 텐데 괜히 더 눈물이 난다.
실컷 울고 났더니 좀 개운해졌다.
어제 시애틀에 도착했고 이틀 동안은 시애틀을 둘러볼 거란다.
아침에 통화해 보니 날씨가 시원하고 맑아서 좋다고 하네.
한국은 34도 찜통이라고 말해줬다.
아이가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낼 리는 없고,
아마 잘 돌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앵커리지 들어가면 호스텔에서 약 한 달간 있어야 한다.
배치고사도 봐야 하고 기숙사 배정도 받을 것이다.
기숙사 들어가기 전에 짬짬이 알래스카 여행도 할 거란다.
그려, 뭘 하든 알아서 잘 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으마.
7월 31일 부로 너도 나도 독립이다!
우리 둘 다 독립만세! 한 번 외치고
너는 니 길을, 나는 내 길을 걸어가자꾸나.
이제부터 우리 세 식구 모두에게 제2의 인생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