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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는여자 Jan 03. 2024

입교식

받들어 총

 처음 이곳으로 온 날, 우리는 모든 소지품을 반납했다, 6명이 같이 사용하는 내무실로 들어가기 전에 박스가 있었다. 그 박스 안에는 군복과 전투화가 들어있었다. 대충 눈으로 나한테 맞겠다 싶은 사이즈를 집어 들어 갈아입고 연병장으로 다시 모였다.     


 서로 군복으로 갈아입은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군복, 전투화 어느 하나 몸에 맞는 것을 입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몸에 맞지 않는 엄마 옷을 입은 어린아이 같았다. 그러나 웃을 수는 없었다.      


(훈육 장교) “보급받은 전투화가 맞지 않는 후보생은 앞으로 나오도록 한다.”     

몇몇 후보생이 앞으로 나왔다     


(훈육장교) “필요한 전투화 사이즈는?”     


(후보생1)  “235사이즈입니다”     


(훈육장교) “235사이즈 두 개인 후보생?”     


(후보생2)  “제 전투화 하나가 235사이즈 입니다.”     


(훈육장교) “서로 바꾸도록 한다.”     


이런 식이었다.          


내무실은 생각보다 깔끔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깔끔하게 정돈된 침대, 각이 잡혀있는 이불이 있었다. 관물대를 열어보니 필통, 가방, 우의 등 보급품이 누군가의 손길을 거친 듯 잘 정돈되어 있었다.


며칠 후 점호시간, 내일 이발을 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우리 모두 입대를 위해 머리카락을 짧게 잘랐다. 그래서 조금 자르거나 다듬는 수준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다음 날 저녁 점호시간 전 이용원으로 이동한 우리는 순서대로 강제 이발을 당했다. 정말 커트가 아닌 이발이었다. 스타일 같은 것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그냥 군무원이 기계적으로 서둘러 이발을 했다. 어릴 적 드라마에서 엄한 아버지가 말을 듣지 않는 딸을 집에서 나가지 못하도록 마구마구 자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바로 그 머리였다. 아무래도 이 머리로는 민간인을 만나지 못할 것 같았다. 내무실에서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았다. 또 웃음이 나왔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존재들이 이 내무실에 살고 있었다.     


(후보생1) “뒷머리. 이게 뭐야.”     


(후보생2) “나도 저런 거야? 어떻게.”     

며칠 후에는 총기를 지급 받았다. 태어나서 처음 만져보는 총이었다. 총기 손질법도 배웠다. 손이 작고 악력이 부족했던 나에게 총기 손질은 생소하고 어려웠다. 마치 연습이라도 하고 온 것처럼 잘하는 동기가 부러웠다.     

( 나 ) “개머리판과 몸통 뭉치를 분리하고 꽂을대에 총기 수입포를 끼워서 닦는 거지?”     


(동기) “꼬질대를 총열 내부로 깊숙이 넣어봐”     


( 나 ) “넣긴 했는데 왜 이렇게 안 빠지냐? 으쌰~ 빠졌다...총기수입포가 까맣게 변했어.”  

   

며칠 후 입교식 연습이 있었다. 입교식 때 학교장님께 경례를 하려면 반드시 총을 앞으로 들어야 한다. 총을 든 채 인사를 하기 위해서는 오른쪽 어깨에 맨 총을 왼손으로 옮겨 잡고,  총을 들고 있는 왼팔을 쭉 펴서 ‘충성’을 외친 후 잠시 버텨야 했다. 공교롭게도 입교식 내 자리는 맨 뒤 사이드였다. 실수하면 티가 가장 많이 나는 자리였다. 총으로 하는 인사는 정말 어려웠다. 총을 들고 있으면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결국 팔을 부들부들 떨고 있던 나를 본 훈육 장교가 결단을 내렸다.    

 

(훈육장교) “111번 후보생 왜 이리 팔을 떠나? 111번, 108번 서로 자리를 바꾸도록.”         

 

모든 것은 그렇게 낯설고 힘들고 또 혼란스러웠다. 모포를 접는 것도, 관물대 정리도, 총기 손질도, 처음 하는 모든 것이 어려웠다. 어떤 동기는 ‘각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가질 만큼 모포를 예술로 접었다. 어떤 동기는 총기 분해와 손질을 영화 주인공처럼 척척 해냈다. 모두 이곳에서 저마다의 특기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없었다. 잘하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순간순간 좌절은 계속되었다. ‘도대체 내가 여기 왜 와 있을까?’라는 생각을 종종 했다. 그러나 돌아갈 수는 없었다. 힘들어도 여기는 서로를 챙기는 전우애가 있었다. 덕분에 좌절은 점점 긍정적인 마음으로 바뀌어 갔다.     


모든 훈련이 끝났다. 임관식 당일 아침. 우리 모두 소위가 된다는 뿌듯함과 성취감 더 훈련이 끝났다는 사실이 더 달콤했다. 16주의 고군분투가 끝나고 내 어깨 위에 다이아몬드가 세워졌다. 16주라는 시간 동안 나는 드디어 특기를 발견했다. 바로 사격이었다.     


놀이동산이나 번화가를 지날 때면 손을 잡은 아들이 나를 이끈다.     

  “엄마 사격하는 거 보여줘.”     


나는 아들을 보며 웃는다. 군에서 하는 사격과는 다르지만, 사회에 나와서도 실력은 녹슬지 않았다.    

  

  “아들, 저 중에서 어떤 인형 갖고 싶어?”

  “음. 파란색 코끼리 인형!!”     


아들의 손에 들려있는 파란색 코끼리 인형과 초록색 코끼리 인형을 보니 자꾸 그때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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