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기준과 사랑의 기준의 다름
나는 오늘도 거울 앞에 서서 볼록한 배를 눌러보면서 입버릇처럼 이야기했다.
“살을 빼야 하는데...”
그 말은 습관처럼 흘러나오고, 그 뒤에는 늘 ‘사회적 기준’이라는 이름표가 따라다녔다.
마른 몸이 예쁘고, 탄탄한 라인이 부럽다고 말하는 세상 속에서 나는 언제나 내 몸을 보면서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고 되뇌이지만 생각은 생각일 뿐 현실은 변함없이 그대로인 몸을 유지하며 몸과 마음은 좀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날도 다르지 않았다.
거울을 보며 중얼거리는 나에게 아이가 다가오더니 내 말을 듣기라도 한 듯, 아니면 늘 그래왔기 때문에 내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일까? 아이는 내 얼굴을 쳐다보며 말한다.
“엄마, 다이어트하지 마.”
“왜?”
“엄마는 지금이 좋아. "
"그래?"
"응, 포근해서..."
그 한마디에 씁쓸한 마음과 함께 웃음이 터져 나오면서 마음이 찌릿했다.
세상은 나를 ‘살찐 사람’이라 부를지 몰라도,
아이에게 나는 ‘포근함'을 주는 사람이었다.
그 말은 내 마음자리에 오래 머물렀다.
‘포근함’이라는 말은 단순히 몸의 감촉이 아니라, 아이가 느끼는 안정감의 온도였다.
아이에게 나의 살은 세상의 기준으로 본 ‘결점'같은 것이 아니라, 자신을 품는 사랑의 증거였다.
품 안에서 잠든 아이의 얼굴을 떠올리니,
이 몸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품고, 안아주고, 지켜왔는지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
사람들은 말하곤 한다.
“자기 관리 좀 해야지.”
“살을 빼야 건강하지.”
물론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말들 사이에는 늘 ‘사랑보다 기준이 앞서는 세상’이 존재한다.
그 세상 속에서 아이의 한마디는 마치 따뜻한 손길처럼 내 어깨를 감싸주고, 내 마음자리에 살포시 앉아 찌릿하게 마음을 울린다.
‘엄마는 포근해서 좋아.’
그 말은 나에게 다이어트를 멈추라는 주문이 아니라,
따뜻한 마음의 메시지였다.
나는 오늘도 거울 앞에 선다.
아직도 배는 그대로이고, 팔도 여전하지만
이 몸은 나의 시간이고, 아이의 기억이며, 따뜻한 사랑이 깃든 존재라는 것을 안다.
세상은 살을 보고,
아이는 살자체가 아닌 그 뒤의 품을 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금 포근한 엄마로 살아본다.
사회적 기준을 벗어나, 소중한 어떤 것들을 자세히 바라볼때 더 아름답다는 것을 아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한 선물로 하루를 채워가면서 말이다.
그 하루의 어느 순간에 아이와의 따뜻한 포옹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