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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는여자 Mar 23. 2023

너의 공개수업

믿어주는 만큼 자라고 아껴주는 만큼 여물고 인정해 주는 만큼 성장한다.

새로울 것 없는 모든 것이 새로워지는 설레는 3월도 어느덧 중반을 달리고, 아이는 제법 새 학년에 적응해 가고 있었다. 오늘은 공개수업이 있는 날이다. 4학년이 된 아이는 학교에서 엄격한 선생님을 만났고, 학기 초 새로운 선생님과의 적응은 학교에서 만든 마음의 응어리를 집에 와서 털어 내는 것으로 달래곤 했다.


(아들)"오늘은 oo이가 수업시간에 물을 마셨는데, 선생님한테 혼나고 물병을 전부 사물함에 넣어 놓으라고 했어. 목마르면 물은 마실 수 있는 거 아니야? 선생님은 너무해."


(아들)"엄마, 진짜로라는 단어는 나쁜 단어야? 선생님이 진짜로라는 말은 하지 말래. 선생님을 의심하는 말 이래. 나쁜 말은 아닌 거 같은데 쓰면 안 되는 거야? 그리고 선생님이 뒤에 '요'자를 쓰지 말래, 종결 어는 '다나까'를 쓰래."


(담임 선생님은 학기 초에 상호 존대어를 쓰는 교실을 만들고 면학 분위기 조성을 위해 교실 기강을 단단히 하는 과정 중에 있는 듯하였다.)

 

아빠는 아들의 불만 어린 말에 웃음으로 달래려고 농담을 한다.


(아빠)"그래? 그럼 '그렇다', '진짜다' 이렇게 말하면 되겠네."


(아들)"아빠아~"


(나)"아, 그런 좋은 방법이 있었구나. '진짜다' '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면 되겠네"


아이는 집에 와서 이렇게 긴장을 뺀 대화로 하루의 긴장감을 풀고 툴툴거리면서 또 내일을 준비한다.


엄마를 넘보려 하는 키에 큰 치를 가진 아이인데, 하는 행동은 어린아이 같아서 그저 귀엽기만 하다. 언젠가는 저렇게 재잘되는 모습이 그리워질 때도 있겠지.


새 학기가 시작되고 학교 갈 때마다 긴장이 잔뜩 들어간 아이는 점심시간에 밥을 1등으로 먹고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낙이 학교생활의 8할인데, 새 학기가 시작된 후에는 늦게 교실에 입실하면 혼난다고 좋아하는 축구도 하지 않고 교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새 학기 적응기간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이다. 하교 후 친구들이 물어본다.


"호박아, 점심시간에 왜 운동장 안 나왔어?"


"응, 늦을까 봐."




공개수업은 아빠만 가기로 하였는데, 전날 저녁 아이가 말한다.


(아들)"엄마, 엄마도 공개수업에 와도 된데, 작년에는 코로나 기간이라 한 명만 와야 했는데 이번에는 둘 다 와도 된데."


(나)"아빠가 가기로 하였는데 꼭 엄마도 갈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아들)"부탁이야, 엄마도 같이와."

 

(엄마)"입고 갈 옷도 없는데..."


(아들)"엄마는 얼굴이 예쁘니깐 괜찮아."


할 일이 있고, 두 명이나 가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고, 다른 이유도 있었기 때문에 가지 않으려고 했는데 아이의 애교 어린 부탁에 마음이 약해졌고, 4학년 교실에서의 호박이 모습이 궁금해서 공개수업에 가기로 마음먹는다.


4학년의 교실은 3학년 때 보다 훨씬 어른스러워 보인다. 뒤에 전시된 미술 작품도, 아이들이 쓴 미니 편지도 3학년 때 보다 정돈되고 훌쩍 큰 느낌이다.

무엇보다 1시간여의 수업시간 동안 각 잡힌 아이의 모습은 처음 본다. 1살 더 먹어서 그런지, 선생님이 엄격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바른 자세로 앉아서 수업을 듣는 모습에 '우리 아이도 저런 자세가 나올 수 있구나'라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아이가 항상 했던 말, 선생님은 수업을 자주 늦게 끝내준다고 했었는데 공개수업날에도 수업 종료 시간은 지연되었다. 같은 상황에서 3학년 때 같았으면 손을 번쩍 들고,


"선생님, 시간이 다 되었어요." 했을 아이인데 조용히 옆의 짝꿍한테 '30분, 30분'이라 말하면서 수업 끝나는 시간이 이미 지나갔음을 알린다. 조용히 속으로만 생각해도 되는데 꼭 말을 해야 되나 보다.


공개수업에서 본 교실의 풍경, 그리고 그 구성원인 아이들과 선생님, 수업방법, 게시물 등 아이가 평소에 했던 말과 행동을 눈으로 보며 혼자 퍼즐 맞추기 놀이도 해본다.


작년의 활달했던 모습이 얌전함으로 바뀐 것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학기 초, 아이가 계획했던 4학년의 계획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친구를 많이 좋아하는 아이인데 혼자만 짝꿍이 없어 외로웠었고, 짝꿍 소개하는 글을 쓰는데 혼자만 소외되어 속상해했고, 회장선거 나가려고 연습했는데 담임선생님은 추천제로 회장을 뽑지 않아 준비한 연설을 해보지 못해 시무룩했었다. 의도된 결과는 아니였던 나에겐 사소한 것 같은 일이 아이에겐 사소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아이와 대화하며, 예전보다 더 성숙해지고 여유로워진 나를 마주하며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리고 아이는 속상함을 가족과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나누며 풀어 갈 수 있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아이가 하교 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 아이 편을 들어주지 않고, 규범만 중시하고 아이를 나무라기만 했던 시절이 있었다. 불편함을 이야기하는 것조차 싫었고, 불편함을 털어놓으면 의무적으로 아이가 마주한 문제 해결해 주어야 할 것만 같아서 회피하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 불편함의 원인을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며 내 마음속에 불만이라는 쓰레기가 쌓여갔다.


그때 아이는 "엄마는 호박이 엄마가 아닌가 봐, 다른 사람 편만 들고 맨날 내가 잘못했다고 해"라고 말하며 울먹거렸다.


많은 생각과 소통, 그리고 마음가짐을 변화시키면서, 이전보다 조금 성장했고, 그 마음속 불만의 쓰레기는 넘치기 전에 발전에 필요한 소량만 남기고 전부 비워냈다.


'나는 왜 그것밖에 안 되는 걸까?'라고 나 자신을  채찍질하고 남의 시선을 신경 썼던 과거의 나를 마주한 현재의 나는 그냥 피식 웃는다.  




아이는 자신의 상황과 처지를 두루 살피며 자신만의 방법으로 환경에 적응해 갔다. 생각보다 아주 빠르게 말이다. 그리고 이미 알고 있었다. 아무리 불평을 해도 이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바꿀 수 있는 것은 자기 마음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지금은 마음을 바꾸고 환경에 자신을 적응시키고 단련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아이의 유연한 사고를 배운다. 그렇게 오늘도 우리는 서로 한 뼘 더 성장한다.  

유머를 좋아하고, 축구를 즐기고, 대화와 소통을 좋아하고 언제나 놀이의 중심에 있는 아이, 분위기 메이커가 가장 큰 장점인데, 장점을 발휘 못하니 답답할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보여준 것보다 보여줄 것이 많고, 자신의 장점을 발휘할 날이 언제 가는 올 것이라 믿는다.


그러기 위해 지금의 인연을 만난 것이 아닐까? 좀 더 세련되게 다듬어진 개성을 가지고, 앞으로 살아갈 사회라는 틀에, 그 영역에 더 가까워져  쓰임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라는 뜻을 받은 것이 아닐까?


1년 후 더 단단하고 의젓해진 호박이가  벌써 내 눈앞에 그려지면서 마음속이 꽉 채워지는 것 같다.


틀 안에 딱 맞지 않고 그 틀을 고무줄처럼 쫙 늘려 자신의 영역을 구축해 보려는 아이와 규정과 틀을 견고하게 설정하시는 선생님과의 궁합은 극과 극 같아 과연 그 둘의 에너지의 합이 어떤 방향으로 향할지 그리고 그 에너지의 발산은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매우 기대되는 1년이다.


새 학기에 아이가 보여준 모습과 지금껏 꾸준히 쌓아온 자존감의 뿌리가 튼튼함을 알기에 나는 믿는다. 그 새로운 에너지는 아이를 비롯해 그 주변까지 좋은 영향력의  향기를 흩뿌릴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사람은 믿어주는 만큼 자라고 아껴주는 만큼 여물고 인정받는 만큼 성장한다."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믿어주고, 아껴주고, 인정해 주는 것, 이 세 단어가 마음을 관통한다. 오늘도 아이는 부모의 믿음, 아낌, 인정을 가슴에 심고 지나는 곳마다 행복한 바이러스를 뿌린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했던 세월 속 이 깨달음을 경험하게 된 지금, 우리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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