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는여자 Apr 25. 2023

발자국과 일몰

꽃내음을 품은 햇무리

꽃지해수욕장 모랫길, 산책로를 따라 함께 걷는다. 산책로는 그 긴 길을 따라 누구인지 모를 여러 사람의 발자국이 남겨져 있다. 각자의 모습이 다른만큼 다양하게 남겨진 발자국 위에 내 발자국을 찍어낸다. 계속 걸어, 눈에 보이는 바다 산책길이 더 이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때뒤돌아 걷는다. 

걸어온 길을 따라 되돌아가며, 반대로 나의 발자국을 남긴다.

모래 산책로에서 쪽으로 모래 위를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하는 거대한 파도가 보인다. 이 파도를 품은 바다와 그 주변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무심한 척 스쳐 지나갔다.


되돌아오는 길의 오른편으로 같은 장면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그 파도와 바다를 지나쳐 오면서 보지 못한, 구석을 가득 매운 크로버 풀들이 보인다. 바다를 보며 끌끌해진 나는, 이든 마음을 채우고  뒤돌아 다시 발자국을 남긴다.


"언니 세 잎클로버가 무슨 뜻인지 알아요?"

"응, 행복"

"일상의 행복이래요."


우리는 쪼그리고 앉아서 세 잎클로버 더미 속에서 네 잎클로버를 찾는다. 하지만 행운은 쉽게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수많은 일상의 행복을 마음에 담고 다시 걷는다.

처음 찍힌 발자국 주변에, 반대방향으로 찍힌 회상의 발자국, 발자국의 모양이 궁금해 고개를 돌려 그곳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다시 고개를 들어 옆을 보니 앞으로 걸을 땐 보지 못한  산책로 옆에 다른 길이 나온다. 성취 발자국인 전진, 쉼과 성찰의 발자국인 회상, 이 둘이 만나 아름다운 꽃이 만발한 길로 안내한다.


그 길을 따라 올라가니, 서서히 해가 지고 있는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하늘 도화지에, 달에 사는 토끼가 절구에 빻아 가지고 온, 고운 색감의 동백꽃, 개나리, 벚꽃, 수선화의 꽃잎사귀를 짜서 무리를 만든다. 그 꽃즙으로 만든 햇무리의 향내음을  담은 하늘은 그 위에 동그란 해바라기 얼굴을 떠안는다.


뿌려놓은 꽃길 바다 아래로 서서히 떨어지더니, 해바라기가 바닷속으로 천천히 내려간다. 바다는 그 즙을 흩뿌리리더니 금세 해를 품어버린다.


떨어지는 해를 마음으로 보고 있자니, 바다에 뿌린 할머니가 생각난다. 몇 년 전  엄마는 파도치는 이 바다에서 멀리, 윤슬을 보며 모래 위에 앉아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 바다에 있을 할머니를 그리워했다.


 "엄마, 할머니는 향기로운 꽃즙을 담은 바다가 해를 품은 것처럼 잘 품어 주고 있을 거예요."

되돌아가며 찍한 회상의  발자국은  엄마의 울음, 할머니와의 이별, 세 잎클로버를 담아낸다. 전진만 했다면 마음껏 꺼내보지 못할 조각들을 꺼내놓으며, 우리가 지나온 길에 그 자취만큼 무엇인가를 더해준다.


꽃 같은 석양이 지면, 다시 꽃씨를 품고 돌아올 내일이 희망참을 알기에 우리는 이 시간을 온전히 즐긴다.


바다를 배경으로 놀고 있은 사람들을 본다. 눈에 들어온 모든 것을 느끼고 향유하는 하루라는 은 프렉탈은 큰 프렉탈의 모습을 쪼개 놓았다. 우리의 매일은 결국 인생 전체를 담고 있는 작은 프렉탈인 셈이다.


앞으로 나아감의 성취에 되돌아감의 감성이 더해져 더욱 단단해진 매일의 작은 프렉탈이 완성된다. 그리고 그것이 인생전체의 큰 프렉탈을 만든다. 작은 변화가 더 가치 있는 큰 변화가 될 수 있음이다.


3차원의 모랫길 위에 전진하는 성취의 발자국과 성찰하는 회상의 발자국이 다른 시간에 다시 만나 더 성숙해진 자아를 끌어내며 우리는 4차원의 세계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한다. 

개한 벚꽃을 이곳에서 다시 본다. 서울의 벚꽃은 꽃비와 단비에 작별을 고했지만 다른 공간인 이곳에서 만개하며 그 화사함을 뽐낸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화사한 벚꽃의 봄이 다른 공간에서 다시 열릴 수 있음을 알려준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이중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