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지해수욕장 모랫길, 산책로를 따라 함께걷는다. 산책로는 그 긴 길을 따라 누구인지 모를 여러 사람의 발자국이 남겨져 있다. 각자의 모습이 다른만큼 다양하게 남겨진 발자국 위에 내 발자국을 찍어낸다. 계속 걸어, 눈에 보이는 바다 산책길이 더 이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때쯤 뒤돌아걷는다.
걸어온 길을 따라 되돌아가며, 반대로나의 발자국을 남긴다.
모래 산책로에서왼쪽으로 모래 위를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하는 거대한 파도가 보인다. 이 파도를 품은 바다와 그 주변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무심한 척 스쳐 지나갔다.
되돌아오는 길의 오른편으로 같은 장면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그 파도와 바다를 지나쳐 오면서 보지 못한,구석을 가득 매운크로버 풀들이 보인다. 바다를 보며 끌끌해진 나는, 이든 마음을 채우고 뒤돌아 다시 발자국을 남긴다.
"언니 세 잎클로버가 무슨 뜻인지 알아요?"
"응, 행복"
"일상의 행복이래요."
우리는 쪼그리고 앉아서 세 잎클로버 더미 속에서 네 잎클로버를 찾는다. 하지만 행운은 쉽게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수많은 일상의 행복을 마음에 담고 다시 걷는다.
처음 찍힌 발자국주변에, 반대방향으로 찍힌회상의 발자국,발자국의 모양이 궁금해 고개를 돌려 그곳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다시 고개를 들어 옆을 보니 앞으로 걸을 땐 보지 못한 산책로 옆에 다른 길이 나온다. 성취의 발자국인 전진, 쉼과 성찰의 발자국인 회상, 이 둘이 만나 아름다운 꽃이 만발한 길로 안내한다.
그 길을 따라 올라가니,서서히해가 지고 있는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하늘 도화지에, 달에 사는 토끼가 절구에 빻아 가지고 온, 고운 색감의 동백꽃, 개나리, 벚꽃, 수선화의 꽃잎사귀를 짜서 햇무리를 만든다. 그 꽃즙으로 만든 햇무리의 향내음을 담은 하늘은 그 위에 동그란 해바라기 얼굴을 떠안는다.
뿌려놓은 꽃길이 바다 아래로 서서히 떨어지더니, 해바라기가 바닷속으로 천천히내려간다. 바다는 그 즙을흩뿌리리더니금세해를품어버린다.
떨어지는 해를 마음으로 보고 있자니, 바다에 뿌린 할머니가 생각난다. 몇 년 전 엄마는 파도치는 이 바다에서 멀리, 윤슬을 보며 모래 위에 앉아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 바다에 있을 할머니를 그리워했다.
"엄마, 할머니는 향기로운 꽃즙을 담은 바다가 해를 품은 것처럼 잘 품어 주고 있을 거예요."
되돌아가며 찍한 회상의 발자국은 엄마의 울음, 할머니와의 이별, 세 잎클로버를 담아낸다. 전진만 했다면 마음껏 꺼내보지 못할 조각들을 꺼내놓으며, 우리가 지나온 길에 그 자취만큼 무엇인가를 더해준다.
꽃 같은 석양이 지면, 다시 꽃씨를 품고 돌아올 내일이 희망참을 알기에 우리는 이 시간을 온전히 즐긴다.
바다를 배경으로 놀고 있은 사람들을 본다. 눈에 들어온 모든 것을 느끼고 향유하는 하루라는 작은 프렉탈은 큰 프렉탈의 모습을 쪼개 놓았다. 우리의 매일은 결국 인생 전체를 담고 있는 작은 프렉탈인 셈이다.
앞으로 나아감의 성취에 되돌아감의 감성이 더해져 더욱 단단해진 매일의 작은 프렉탈이 완성된다. 그리고 그것이 인생전체의 큰 프렉탈을 만든다. 작은 변화가 더 가치 있는 큰 변화가 될 수 있음이다.
3차원의 모랫길 위에 전진하는 성취의 발자국과 성찰하는 회상의 발자국이 다른 시간에 다시 만나 더 성숙해진 자아를 끌어내며 우리는4차원의세계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한다.
만개한 벚꽃을 이곳에서 다시 본다. 서울의 벚꽃은 꽃비와 단비에 작별을 고했지만 다른 공간인 이곳에서만개하며 그 화사함을 뽐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