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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는여자 Apr 14. 2023

운동화와 전투화

군납운동화와 브랜드 운동화

지금으로부터 대략 20년 전,  꽃이 피지 않은 이른 봄이었다. 장교가 되겠다고 모인 150여 명의 꽃다운 사관후보생들은 멀고 먼 경상도의 어느 사관학교  훈련장에 모이게 되었다.


그곳에서,  다이아몬드 계급장을 달기 위한, 외부와 단절된 강도 높은 훈련은 시작되었다. 입교식을 마치고 중대와 소대를 배정받고 훈육장교님이 말씀하셨다.


"너희들의 군복과 모자에 누워있는 다이아몬드는 16주간의 훈련을 마치면 똑바로 설 것이다. 모두 건강하게 훈련을 마치고 바로선 다이아몬드 계급장을 달도록 하자"

세워진 다이아몬드

그때까지도 몰랐다. 16주 동안 어떤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말이다. 전투복, 전투화, 개인화기에 익숙해져 갈수록 훈련의 강도는  점점 높아졌다.




훈련의 마지막인 유격훈련을 위해 우리는 전투화를 신고 훈련장까지 하루 5Km~10km 이상을 걸으며 예행연습을 시작했다. 훈련장은 숲과 나무가 우거진 자연 그대로의  외진 산 어딘가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그 거리가 꽤 되었다.

 

매일의 행군이 계속되면서 아픈 동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전투화가 딱딱했기 때문에 발에 잘 맞지 않는 경우 물집이 잡혔다. 또한 훈련장에서 훈련을 받으며 다치는 경우도 있었다. 매일 신어 익숙해진 전투화이긴 하지만 부상자들이 전투화를 신고 훈련을 지속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때 훈육장교의 허락을 받고 신을 수 있는 신발이 전투체육과 아침 뜀걸음 때 신는 군납 운동화였다. 전투화를 신고 하루종일 훈련을 받다가 운동화를 신으면 고된 하루일과를 끝내고 휴식하는 느낌을 주는 단비와 같은 존재였다. 건조한 후보생 생활에 피어난 화려하지 않은 수수한 꽃 같았다.

카텔란의 "무제"




군납 운동화는 훈련을 지속하기 힘든 부상자들에게는 훈련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이자, 임관할 수 있는 희망이었다.


멀고 먼 훈련장을 갈 때 환자조가 따로 있었다. 환자조는 당장 걷기가 힘들었음에도 임관하기 위해서 훈련은 지속해야 하는 동기들이었다. 부상이 있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후보생들과 함께 행군을 하게 되면 뒤쳐져서 훈련진행이 원활하지 않았기 때문에 만들어진 선발대였다.


선발대는 아침을 일찍 먹고 일반 중대, 소대 보다 일찍 출발하였다. 그리고 운동화를 신을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다. 그렇게 먼저 출발한 선발대는 보통 3명~5명 정도 되었는데, 일반 소대인 우리가 중간정도 가다 보면 우리 앞으로 그들의 모습이 보였다.


뒤에서 보는 그들의 복장은 훈련장에서만 볼 수 있는 패션을 자랑했다. 전투복 바지에 고무링을 끼워서 7부 길이로 접힌 바지, 그 아래 종아리는 국방색의 긴 옷(양말)을 입고 단일 민족임을 뽐냈다. 국방색의 종아리는 모두 흰 운동화를 신고 같은 모습으로 서로를 의지했다.


흰색과 국방색의 대조적인 만남은 뒤에 전투화를 신고 오고 있는 우리의 모습과 비슷한 듯 달라 보였다. 그리고 그 모습은 군가를 부르며 행군하는 우리의 눈에 들어왔다.


"휘날리는 태극기는 우리들의 표상이다. 힘차게 전진하는 우리 대한 민국이다...."

나는 힘차게 군가를 부르면서도 눈은 군납 운동화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나도 운동화 신고 싶다.'  


칼발에 발이 작았던 나는 딱딱한 전투화가 참 힘들었다. 하루종일 전투화를 신고 내무실에 들어가면 발바닥 통증으로 잠이 오지 않은 날도 있었다. 작은 면적의 발이 나의 체중을 지탱하며 매일을 열심히 일한 결과였다. 작은 물집이 잡힌 적도 있었지만 밴드를 붙이고 다시 전투화를 신곤 했다.


발바닥 통증이 있을 때면 운동화가 신고 싶었다. 그런 나의 마음과 눈이 연결되어 운동화를 신고 걷고 있는 동기들의 발에 내 눈의 스포트라이트가 켜져 운동화가 더욱 빛나 보였나 보다.




운동화는 후보생 시절 나에게 반가움과 동시에 편안함과 부러움을 느끼게 한 존재였고, 부상이 있는 동기들에게는 훈련을 지속하게 하는 마중물이자 임관할 수 있는 희망이었을 것이다.    


운동화는 겸손하게도 공식적인 행사에서는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임관식, 입교식등 각종 행사의 주인공은 항상 전투화나 군납 구두였다. 하지만 군납 운동화가 화려한 행사의 숨은 조력자임을 기억해주고 싶다.


흔한 존재가 특별한 것이 되는 때가 있다. 흔한 컵라면이 멀고 먼 여행지에서는 특별한 것이 되고, 언제나 볼 수 있는 흔한 사람도 무인도에서는 소중한 존재가 될 것이다. 또한 도시에서는 흔히 탈 수 있는 버스도 시골마을 오지에서는 사람들의 발이 되는 흔하지 않은 감사한 이동 수단이리라.


그리고 20년 전의 흔한 군대의 경험은 세월이 지나 그곳을 벗어난 나에게,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숨어서 후보생들의 임관을 지켜보고 아픈 후보생들의 희망이 되어준 운동화라는 존재.


흔하지만, 그 시절 그곳에서 특별한 존재였음을 기억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는 존재할 흔하지만 특별한 존재를 생각해 본다.


그리고 지금 내 발에는 그때보다 훨씬 더 좋은 브랜드 운동화가 신겨져 있다. 하지만 내 마음은 그 시절, 잊을 수 없는 군납 운동화의 포근함을 기억하며 그 기억을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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