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인가 보다. 아침부터 일어나는 게 힘들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오늘은 늑장을 부려본다. 오늘, 친구를 만나기로 한 시간이 11시니까 30분만 더 눈 좀 붙이면 딱 좋겠다. 이런 건 즉시 실행에 옮겨야 해. 바로 침대에 몸을 던진다. 좋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30분이 지났는데도 일어나기가 싫다. 그래 그때도 그랬지. 후보생 훈련받을 때, 기상음이 울릴 때 안 떠지는 눈을 그대로 두면 완전히 계속 안 뜨고 싶을까 봐 의무감에 번쩍 눈을 뜨며 일어났다. 새벽기상 뜀걸음과 짜인 일과, 그 규칙적인 생활이 싫지 않았다.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그런 생활 속에서 몸과 마음은 더 건강해지는 것 같았다.
오늘은 그 시간 함께했던 동기를 만나기로 한 날이다. 원주에서 달콤한 신혼생활을 보내고 있는 옛 동기를 만나기 위해 서울역으로 향한다. 따뜻했던 봄을 질투라도 하는지, 비가 내리고 날씨가 쌀쌀해지더니 환하게 땅을 비췄던 해는 어느새 그 모습을 감췄다.
112번 후보생 그녀, 참 야무졌었지. 나는 오늘 그녀와의 만남을 앞에 두고 20년 전 시간 터널을 통과해 추억상자를 열어본다.
나는 111번, 그녀는 112번 우리의 공통점은 성이 "ㅊ "이라는 점. 그리고 같은 학번을 공유했다는 점이었다.(당시, 우리는 2년 늦게 입소했다. 물론 여군사관이 되기 위해 늦게 입소하는 경우가 드문 일은 아니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여군의 문이 다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육사는 막 그 문을 열기 시작했고, ROTC, 삼사는 아직 여생도의 문을 열지 않을 때였다.)
나와 그녀는 거의 모든 훈련을 가까운 곳에서 함께 했다. 후보생식당에서도 옆자리였고, 같은 분대 앞뒤자리였다. 군대에서 번호의 힘은 그렇게 컸다. 오랜 시간 같은 내무실을 사용했고, 훈련조가 2인일 경우 둘이 한조가 되기도 했다. 세월이 지나 내가 전역한 후, 가는 길이 달랐음에도 인연의 끈이 이어진 데 한 몫하지 않았을까?
그녀와 함께한 기억에 남는 훈련은 "독도법"이다, 군인의 길에 대한 야망이나 특별한 지식 없이 들어온 나는 모든 훈련이 뭐랄까 쇠귀에 경 읽기 느낌이랄까? 이건 뭐 수업을 들을 때는 알겠는데 실제 하려면 머리와 몸이 따로 움직이는 그런 느낌이었다. 사격은 재미있었지만 소총분해는 어려웠다. 도무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다들 연습이라도 하고 온 것처럼 처음부터 잘 분해하던데 나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야산에서 하는 독도법은 그 길이 그 길 같은 느낌이었다. 모르니깐 배운다지만 이렇게 하다 전시에 길을 잃어 적진으로 갈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학교 다닐 때 걸스카우트라도 해둘걸 그랬다.
2인 1조였던 독도법에서도 111번 후보생이었던 나와 112번 후보생 그녀는 같은 팀이 되었다. 지도와 나침반을 들고 높고 너른 야산을 뒤지며 지도에 표시된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면 되었다. 도착한 목적지에는 교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매우 열정적이었다. 지금이 전시 상황이더라도 믿고 따라가면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우리는 지도와 나침반을 받아 야산을 오르고, 내리고 목표점을 찾아 걷고 또 걸었다. 늦은 오후가 되자 지친 몸으로 한 지점에 도착하였으나 그곳은 우리가 찾던 목적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한참을 걸어 산을 오르고 또 걷기를 반복했다. 나중엔 지쳐서 내가 가는 건지 내 다리가 가는 건지 모를 그런 상황이 되었다. 지친 나와 달리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나를 이끌었고, 해가 지고 어두워져서야 우리는 목표점을 찾을 수 있었다.
오늘 만날 그녀를 생각하니, 앞뒤 번호의 운명으로 공유한 추억이 많지만, 씩씩하고 야무진 모습이 제일 먼저 생각난다.
후보생 때 에너지 넘쳤던 그녀는 이후 종종 만나긴 했지만, 군에 몸담고 있었던 그녀와 의무복무를 채우고 사회에 몸담고 있었던 나는 자주 만날 수는 없었다. 우리는 서로의 인생을 충실히 살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인연의 고리는 길게 늘어져 오늘에 이르렀다.
그랬던 그녀가 몇 년 전 결혼을 하더니, 출산을 일주일 정도 앞둔 것이다. 늦은 나이 결혼 인연을 맺는다는 말에 동기들은 "ㅇㅇ이 결혼을 한다고?" 하며 물음표와 느낌표가 섞인 신선한 문장부호를 만들어냈었는데, 곧 엄마가 된단다. 군대를 한번 다녀온 것처럼 야무지게 훈련받던 ㅇㅇ의 엄마 모습이 사뭇 기대된다.
여전히 활기 넘치는 그녀, 그리고 지금은 경험을 간직한 40대만이 누릴 수 있는 평온함까지 더한 얼굴이었다. 미혼때와 다르게 아이 이야기, 시댁이야기, 남편이야기를 하는 우리를 보니 그 달라진 소재에 20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것 같은 실감이 난다.
세월의 터널을 타고 경북의 한 사관생도 훈련장이 아닌 서울역이라는 공간에 와 있는 우리의 모습은 묻어둔 타임캡슐을 꺼내 그것을 열어보는 것처럼 다시 설렌다.
건강하고 충실하게 각자의 인생을 살아내고, 성실하게 살아낸 만큼 더 해진 경험과 가치관을 가지고 세월을 건너뛰어 만난 우리. 우리에게 그때도 지금도 변하지 않은 한 가지가 있다면 밝게 웃는 웃음에서 보여주는 긍정 에너지가 아닐까? 나는 긍정의 힘을 믿는다.
숨어있었던 해가 우리의 헤어짐을 배웅하러 직접 나오려나 보다. 부재중이었던 해는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구름 사이에 환하게 드러나는 해가 구름과 섞여 망망대해 바다에 서있는 등대의 빛처럼 빛난다.
집에 돌아가는 길, 어느새 구름이 그 자리를 옮겨 청명한 파란 하늘에 높게 뜬 해가 완전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가 선물한 노란 장미의 얼굴처럼 해맑은 얼굴을 보여주는 해는 친구 뱃속에 있는 튼튼이의 앞날과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40대 이후의 삶이 비 온 후 개인하늘, 그 사이를 뚫고 나온 해처럼 밝을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 가슴이 꽉 찼다.
그녀가 열심히 살아온 삶뒤에 맞은 40대 또한 누구보다 밝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언제나 열심히 살았고, 또 살고 있으며 앞으로도 빛날 그녀의 삶을 응원해 본다. 그리고 소중한 인생의 찰나를 공유한 추억을 기억하는 것처럼, 그 기억 위에 또 다른 추억을 함께 담아가기를 바라본다. 각자의 삶을 살다 그 길이 겹쳐 같은 길을 걷는 날이 오게 되면 말이다.
하천길을 걸어 집에 돌아오는 길, 구름사이로 환하게 그 얼굴을 드러낸 해가 하천의 물에 반사되어 반짝인다. 그리고 그 아래 잉어가 심심했는지 자기 몸을 꾸물거린다. 잉어가 꾸물거리며 생긴 물결과 살랑이는 봄바람이 만나 잔잔한 물결 파동을 일으킨다. 그리고 내 마음의 에너지가 온 마음을 휘저으면서 잔잔한 물결을 만들며 마음의 풍요로움을 만들어 낸다.
그 평온한 물결옆에는 훈련받는 예비역들과 하교하고 발 빠르게 집에 가는 어린 학생들이 보인다. 하늘 위의 구름과 물 위에 비친 구름이 서로를 마주 본다. 그리고 20년 전 나의 모습과 지금의 내 모습이 그렇게 교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