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성적표가 나오던 시절

아빠의 기대와 나의 등수 사이에서 우리는 점점 멀어졌다

by 소윤담

아빠는서울대학교에 합격하지 못했던 날,
집에 오는 길에 엄마가 부탁한 콩나물을 사오라는 심부름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충격을 받았던 사람이다.

그만큼 성적과 결과에 진심인 사람이었다.

아빠는 1950년대에 태어났다. 지금 들어도 충분히 좋은 대학을 졸업했고,
그 시대에 가장 들어가기 어렵다는 OO일보 신문사에 합격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아빠에게 그 면접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다.

“아빠가 면접 보던 날, 어떻게 붙었는지 알아?”


아빠는 늘 같은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면접관이 나한테 이렇게 물어보더라고.
‘OOO 지원자님, 이 면접장까지 오면서 화분에 놓여 있던 난이 몇 개인지 아십니까?’라고.”


보통 사람이라면 당황해서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을 질문이었다.


하지만 아빠는 그 난의 개수를 정확하게 맞췄다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생각했다.


아, 우리 아빠는 정말 꼼꼼하고 섬세한 사람이구나.


작은 것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 사람.
그래서 결국 기회를 잡아내는 사람.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렇게 노력으로 인생을 만들어온 아빠에게
나는 조금 이해되지 않는 딸이었던 것 같다.


아빠는 내가 부족함 없이 자라도록 많은 것을 지원해주었다.


어릴 때부터 아빠는 나에게 아낌없이 투자했다.
지금 생각해도 비용이 만만치 않은 것들이었다.

스피드 스케이트, 바이올린, 수영 1대1 레슨,
피아노 개인 레슨, 영어 개인 과외까지.

무엇이든 대충 배우게 하지 않았다.
거의 모든 것을 1대1로 배우게 했다.

학원도 보내주고, 참고서도 사주고,
집에서는 공부할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주었다.

아빠는 내가 부족함 없이 자라도록 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해주었다.

하지만 문제는 하나였다.


나는 공부를 너무 못했다.


아빠의 기준에서 보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성적표가 나오던 날이면 집안 공기가 달라졌다.

등수와 점수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아빠의 기대와 실망이 동시에 적혀 있는 종이였다.

아빠의 표정이 굳어지고 목소리가 낮아질 때면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또 시작이겠구나.

그때부터 아빠와 나 사이에는 점점 거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빠는 늘 말했다.

“졸리면 잠을 이기려고 노력해야지.”

어느 날은 눈 밑에 치약을 바르면 잠이 깬다며 그렇게 해보라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아빠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졸리면 잤고, 놀고 싶으면 나가 놀았다. 친구들이 부르면

나는 망설임 없이 쪼르르 밖으로 뛰어나갔다.

사춘기 시절의 나는 부모님 속을 썩이는 거의 모든 일을 해본 것 같다.

교복 치마를 줄이고, 야간자율학습을 몰래 빠져나가고,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놀러 다니고.

그 시절의 나는 공부보다 세상이 더 궁금했고
등수보다 친구들이 더 중요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아빠의 마음은 점점 더 상처받았을 것이다.


아빠의 기대는 높았고 내 성적은 늘 그 기대에 한참 못 미쳤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점점 멀어졌다.

중학교 3학년, 열네 살 무렵부터였을 것이다.


아빠와 나는 대화를 하기보다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고, 싸우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기억은 대부분 비슷하다.


문이 쾅 닫히는 소리, 거실에서 높아지는 목소리,
그리고 서로 등을 돌린 채 지나가던 저녁 시간.


중학교 3학년 열네 살부터 스물네 살이 될 때까지.


내 기억 속의 아빠와 나는 서로를 향해 소리를 지르던 장면들로 가득하다.

그때는 몰랐다.


그 시간이 언젠가 다시 돌아가고 싶어도
절대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 될 거라는 걸.


그리고 그때는 더더욱 몰랐다.

내가 그렇게 밀어내던 아빠의 시간들이
생각보다 훨씬 빨리 끝나버릴 거라는 것을 그땐 왜 몰랐을까?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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