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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연 Nov 02. 2022

용산구에서 나고 자란 내가 이태원을 추모하며

참사 당일 쓰고 이제야 공개하는 글

이태원은 나에겐 아주 어렸을 때부터 추억이 많은 곳이다.


이태원이 소위 힙플레이스로 인식되지 않던 90년대부터,  아빠 손을 붙잡고 이태원에 자주 갔다. 친구들은 이태원은 무서운  아니냐고 했지만, 실제 당시는 외국인이  많았고 더러 무섭게 말을 걸어오기도 했지만.. 용산구에 태어나 자란 나로선 가깝고 친숙한 곳이었다. 접하기 힘든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 패션, 음식이 있었다.


대학시절부턴 친구들과 많이 놀았다. 핫한 맛집 등이 이태원을 시작으로 경리단, 해방촌, 한남 등으로 뻗어가 많이도 다녔다. 내 20대를 생각하면 딱히 클럽도 안 가고 잘 노는 애도 아니었지만 친구와 약속 잡을 때면 거의 항상 이태원 인근이 되던 때가 있었다. 이태원은 혼종적이고 정신없고 어찌 보면 고급짐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알 수 없는 해방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가성비 좋고 선도적인 가게가 많았고 다양한 국적의 하위문화가 뒤섞여 만들어내는 매력이 남달랐다. 젊은이들을 계속 끌어들인 이유다.


어제 사고와 관련해 새벽에 믿을 수 없는 사상자 수에 충격받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대통령실에서 밤 11시 반쯤부터 계속 메시지를 내길래 첨엔 상황을 몰라 왜 그러나 했는데.. 사고 발생 장소는 이태원에서도 완전 중심가였다. 프로스트, 해밀턴, 추억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그곳에 갔던 이들을 욕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제발. 놀러 가는 건 잘못한 일이 아니다. 20-30대 젊은 청춘이 어울려 축제를 즐기려 한 행동이 손가락질받을 일인가? 코로나 때문에 3년을 제대로 놀지 못하고 자유를 억압받은 청춘들이다. 요즘 20대들 저럴 줄 알았다느니 MZ세대 싸잡아 욕하지 말았으면 한다. 난 핼러윈이 언젠지 무감한 구세대가 됐지만, 각 세대의 놀이와 유행이 다른 거다. 40대 이상은 저 나이 때 안 놀았나? 한국 명절이 아니고 근본 없는 기념일이라 한심하단 지적도 있는데, 그리 생각할 수 있지만 저 세대의 문화는 다를 수 있단 거다. 철없을 나이고 친구 따라 흥을 즐기러 갔을 수 있다. 어른들 눈에 한심해 보인 대도 이들의 목숨은 잃어도 될만한 게 아니었다.


그리고 모두가 핼러윈을 즐기러 간 게 아닐 수도 있다. 저기가 일상 공간인 사람도 많고 나도 핼러윈 날짜 개념이 없어서 이태원에 약속 잡았을 수도 있었다. 누구나 저길 그 시간에 하필 지나갈 수 있었다. 동정심이 안 든다? 생각은 자유지만 애도에 재는 뿌리지 않았으면 한다. 정치적 이용도 제발 삼가자. 사건 경위는 제대로 파악하되 안타까운 일이 다신 벌어지지 않도록 뭘 할지 미래지향적인 일에 머리를 맞댔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이태원이, 상처를 딛고 치유되길 바란다. 많은 사람들의 젊음과 추억이 담긴 곳이다. 불안한 젊은 영혼들에게 위로가 돼준 곳이다. 당분간 아픔은 어찌할 수 없겠지만 많은 외국인들에게도 상징처럼 알려졌고 그들의 추억도 쌓였을 이곳이 다시 웃게 되는 날이 오기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prayforitae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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