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무도한 범행수법 이례적으로 구체적 공개...실체적 공포 해소 요구
오늘, 너무 많은 뉴스가 날 슬프게 했다.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이건 여러 측면에서 그간 언론에 보도되고 세간에 알려진 여타 사건들과 결이 다르다. 국민들이 어느 때보다 격분할 수밖에 없다.
우선 범행 수법의 잔인성이다. 복부나 흉부가 아닌 얼굴과 목, 그것을 뿌리치려는 손만 30차례 이상 찔렀다. 다른 말로 주요 장기가 손상되지 않았는데 사망에 이를 정도로 얼굴 부위를 극렬하게 가해했단 것이다. 매우 드문 경우이며 비인간적인 행태다.
보통 언론은 살인사건을 다룰 때 범행 수법을 자세하게 기술하지 않는다. 언론윤리지침상 흉기와 수법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도록 돼 있다. 구체적인 상황이 다 취재돼도 2차 가해와 유족 등을 고려해 생략한다. 근데 이 사건은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져 직간접적 목격자와 지인들이 속출했고 cctv마저 공개됨으로써 그 잔인성이 만천하에 공개돼 버렸다.
뉴스 영상이나 지인의 인터뷰, 탄원글 등을 통해 이미 한 번 공개된 사건 정보에 대해서는 경찰이나 기자들이 함구하지 않고 추가적인 정보를 공개하려는 경향이 있다. 거기다 피해자를 담당했던 응급전문의가 오늘 이례적으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피해자의 처참한 자상과 죽음의 순간을 매우 자세하게 공개했다.(전문을 읽어봤을 때 담당의의 선의는 의심할 나위가 없었다. 다만 망자의 프라이버시와 인권 보호 측면에서 이 글을 쓰는 게 옳았는지는 생각해볼 지점이다.)
결론적으로 현재 이 사건은 한국에서 언론에 공개된 살인사건 중 가장 수법이 극악무도한 사례 중 하나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게 됐다. 실제 이보다 더 잔인한 범행이 어딘가 존재할 수 있지만, 이렇게 낱낱이 공개된 경우는 거의 없다.
거기다 범행 동기는 충격을 배가한다. PC방에서 알바생이 불친절하단 이유로 저지른 우발적 범죄다. 수년, 아니 수개월간 갈등이 쌓인 관계가 아니란 거다. 심지어 알바생은 손님의 요구를 가능한 선에서 최대한 들어주려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별 잘못을 하지 않아도, 그저 일상 속에서 불과 몇시간 전엔 알지 못했던 사람으로부터 아무 예측을 못한 채 이토록 잔인한 죽음을 당할 수 있단 게 확인됐다.
담당의에 따르면 의료진들은 피해자의 상처를 보고 막연히 뿌리깊은 원한관계일 거라 생각했다가, 단순 말다툼에 벌어진 일이란 경찰의 얘기를 듣고 욕설을 내뱉었다고 한다. 알바생과 손님은 익명에 가까운 관계다. '묻지마 폭행'과 다를 바가 없다. 게다가 알바생은 생계에 도움이 되고자 알바를 하며 꿈을 가꿔가던, 스무살 꽃다운 나이의 평범한 학생이었다.
이 사건과 관련한 정보에 멍하니 노출되다 보면 자연스레 나도, 우리 가족도 어느날 영문도 모른 채 매우 잔인한 방식으로 당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피의자가 심신미약을 주장하고 있으니 청와대 청원이든 그보다 더한 것이 됐든 여론이 들끓는 건 당연하다.
이걸 ‘단순한 호기심’이라는 단어로 표현한 김병관 의원은 발언 취지와 무관하게 사태를 한참 잘못 읽었다. 사실 나도 언론을 통해 이런저런 살인사건을 하도 많이 접하다 보니 처음엔 안타까움과 별개로 그중 하나려니, 했다. 근데 영상과 담당의의 글을 읽으며 사건이 이미지로 구체화되는 순간 이제껏 느껴보지 못했던 실체적 공포를 느꼈다.
대중에 이처럼 낱낱이 사건이 공개된 게 바람직한지 여부와 별개로 이번 사건의 여파는 클 것이다. 아직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한 네티즌의 여론 심판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건 경찰이 공정하게 수사하면 될 일이다. 시민사회는 나름대로의 토론의 장을 열고 해결책을 모색해 보는 게 나쁘지 않다고 본다.
혹자는 너무나 드물게 일어나는 천재이변과 같은 사건을 자극적으로 언론이 확대 재생산하며 사태를 부풀리고 있다고 한다. 난 그렇게 보지 않는다. 슬프게도 실제 현실은 언론보도로 공개된 것보다 잔인할 가능성이 크다. 또 이번 사건은 언론이 주도적으로 파헤쳤다기보다 대중의 관심을 언론이 따라간 측면이 크다. 실제 피해자의 유가족이나 지인들이 언론 접촉을 경계하지 않고 도리어 관심을 촉구했기에 현재와 같은 사건 공개가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형량을 아무리 높여도 이런 범죄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으므로 현재의 논의가 의미 없다는 의견도 있을 것이다. 다만 지금 이 사건은 대중들에게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공개되고 전달됐단 점에서 공포의 충격파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대중이 심심해서 이 사건에 흥미를 갖는 게 아니다. 나도 당할 수 있단 극심한 공포를 느꼈기 때문에 사법기관의 조치와 별개로 이 공포를 어떻게든 해소해야 하는 요구가 생긴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형벌 강화가 궁극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게 무엇이든 우리 사회에서 이번 사건을 터놓고 충분히 토론하며 분노와 슬픔을 극복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