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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연 Nov 12. 2018

왜 퀸을 좋아하세요? '보헤미안 랩소디'에 관한 질문

80년대생 늦둥이 퀸 팬의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감상기

내가 언제, 왜 '퀸'을 좋아하게 됐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최근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 대한 입소문이 나면서 오랜만에 '퀸'에 대해 떠올려봤다. 이따금씩 '퀸'의 노래를 듣긴 했지만 가수 '퀸'을 생각해보는 건 참 오랜만이었다. 아마도 중고등학교 때였던 것 같다. 영화든 음악이든 소위 '옛날 것'에 꽂혀있었던 때가 있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이거나 아주 어려서 의식이 없었던 시절의 작품을 접하는 게 좋았다. 작품을 감상하는 것뿐 아니라 작품에 대한 비평과 당시 대중의 반응을 찾아보고 그 시절을 상상해 보는 것도 좋아했다.


올드팝 중 개별 노래가 아니라 가수한테 빠졌던 경우로는 '사이먼 앤 가펑클', '비틀즈', '퀸' 정도가 생각난다. 확실한 건 비틀즈에 먼저 빠졌다가, 퀸으로 옮겨갔단 것이다. 비틀즈를 좋아한 데는 외삼촌과 엄마의 영향이 컸다. 근데 퀸에는 어떤 계기로 빠졌는지 도저히 생각나지 않는다. 어쨌든 난 어제 '보헤미안 랩소디'를 본 후, 수년 만에 책꽂이 한쪽에 먼지 쌓인 채 방치돼 있던 퀸 CD를 꺼내 플레이어에 넣었다.


몇년도에 구매했는지 기억나지 않는 CD. 몇 년 만에 무한재생 중이다.


영화는 퀸의 리드보컬인 프레디 머큐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민자 출신의 파록 버사라(프레디의 본명)는 '좋은 말 좋은 생각 좋은 행동'을 주입시키는 엄격하고 보수적인 아버지에게 "그렇게 해서 성공하셨냐"고 대든다. 그는 평소 작곡과 노래실력을 갈고닦다가 눈여겨보던 밴드에 보컬이 빠진 틈을 타 합류한다.


펍에서의 첫 공연에서 관객들은 뻐드렁니의 동양계 외모를 지닌 리드보컬의 등장에 야유를 보내지만, 그가 노래를 시작하자 분위기는 금세 반전된다. 프레디는 걸출한 가창력과 무대매너로 순식간에 관객들을 홀린다. 가사를 틀리거나 마이크가 제 때 뽑히지 않는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 프레디에겐 무대를 즐기는 타고난 재능이 있었음이 첫 공연에서 드러난다. 평범했던 보이밴드는 프레디의 합류로 세계적인 밴드로 발돋움한다.


사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평이하다. 평소 프레디에 관심이 있었다면 얼추 알고 있을 만한 내용들이 이어진다. 큰 틀에서 퀸이라는 락밴드의 일대기와 프레디의 사생활이라는 두 축이 그려진다. 여느 밴드들이 겪는 멤버들 간의 갈등은 퀸의 음악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 자양분으로 묘사된다. 다만 밴드가 성공하고 부와 인기, 명예를 축적하면서 리드보컬이자 '센터'인 프레디가 나머지 멤버들과 불화를 겪어 결별하고, 프레디가 개인사적인 아픔을 겪는 내용은 어찌 보면 전형적인 내용이다.



근데 이 영화가 대중들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뭘까. (물론 이 영화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현재 스코어로 보면 다수의 대중에게 어필한 것으로 보인다.) 이 질문은, '내가 왜 영문도 기억나지 않는데 어렸을 때 멋도 모르고 퀸에 빠졌을까'라는 질문과 유사하다.


답은 퀸의 매력에 있다. 퀸이 뭐냐고? 퀸은 성공한 밴드이지만 영화에서 언급되듯 "부적응자를 위해 노래하는 부적응자 밴드"다. 프레디는 "스타가 되지 않고 전설이 되겠다"고 했다. 퀸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음악을 했다. 자본을 지닌 제작자에 좌우되지 않고, 장르나 흥행공식에 얽매이지도 않으며, 실험적인 시도를 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스스로 전설이 됐다.


이건 꽤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난 아직도 '보헤미안 랩소디'의 의미를 백 퍼센트 이해하지 못한다. 중고등학생 시절에도 사전과 인터넷을 뒤져가며 해석했던 기억이 뚜렷한데, 지금도 알 수가 없다. Bismillah, Fandango, 뜬금없는 갈릴레오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화자가 죽였다고 하는 남자는(just killed a man) 누구인가. 그런데 그냥 좋다. 어떤 뜻인진 모르겠는데 어떤 감정을 말하려고 하는지 너무나 알 것 같은 느낌이다. 마치 기표는 비어있는데 기의는 꽉 차있는 것 같다.



이런 신비감이 퀸을 정의하기 어렵게 만들고, 차별화했음은 분명하다. 근데 퀸이 만약 성공하기 위해 신비감을 인위적으로 추구했다면 그 파급력은 현재까지 이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프레디의 불안하고 고독한 내면의 문제들이, 그 치열한 고민과 진심이 곡에 그대로 스며들어 있기에 퀸의 음악이 여전히 생명력을 갖고 청중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어렴풋이 예상하고 있었지만, 영화를 통해 더욱 잘 이해하게 됐다. 메리와의 사랑과 이후 성 정체성 혼란으로 인한 프레디의 고뇌가 영화를 통해 시각화된 것을 본 후 듣는 'Love of My Life'는 다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프레디의 에이즈 발병을 알고 난 뒤 그가 1985년 라이브 에이드에서 10만 관중, 15억 명의 시청자들 앞에서 'Mama, ooh I don't wanna die'라고 노래할 때, 울컥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평소 영화를 보면 나름대로 확실한 평가를 내리는 편이다. 이 영화는 조금 어렵다. 영화 자체만 보면 퀸을 소재로 이보다 더 나은 전기영화를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러닝타임의 한계가 있었겠지만 프레디의 인간적인 고뇌와 아픔이 다소 평면적으로, 섬세하지 않게 다뤄졌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싱크로율 높고 진정성 있는 배우들의 연기로 전설의 곡들이 완성되는 과정과 밴드의 일대기가 재연되는 것을 보는 재미는 상당하다. 곳곳에서 적시에 튀어나오는 퀸의 명곡들은 이성적인 판단을 마비시킨다. 영화 초반부 라이브 에이드 무대 시작 전 긴장을 풀기 위해 발을 구르는 프레디의 뒷모습과 'Somebody to Love'의 소절만으로 영화는 퀸을 사랑하는 팬들에게 존재의 의미를 갖는다.


마지막으로 내 친애하는 친구이자 과거 락밴드 보컬이었던 김도연의 영화 한줄평을 인용하고 싶다. "역사란 게 그러하듯 이 또한 평가의 대상이 아닌 듯." 그냥 느낄지어다.


크레딧이 올라간 후 등장한 '진짜' 프레디 머큐리.
진짜 프레디 머큐리의 등장에 관객들은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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