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로 출국
2015년 가을까지만 해도, 나는, 회사를 그만 둔 상태이자, 안면마비를 겨우 막 극복해서 이제 다시 사회 속에서 살아보겠다고 이력서를 172개를 꼬박 쓰면서 버티고 앉아 있었다. 직종, 직군과 상관없이 쌍끌이 어선처럼 하루 종일 눈에 불을 켜고 내가 다시 다닐 수 있는 곳이면 지원을 했다.
허리가 아파서 일어났던 것 빼고는 책상과 노트북에 그대로 붙박이처럼 붙어 있었다. 오히려 실제 신입 취준생인 동생이 나를 보고 더 놀랐다고나 할까. 다시 건강해진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힘이 나서 무엇이든 할 용기가 있었다. 그렇게 마지막 공채 두 곳이 붙었는데, 대한항공과 한진해운이었다. 물론, 서류만.
지상직이었지만, 말도 안되는 승무원 메이크업을 받고, - 사실 메이크업 샵에서 나올때부터 ‘이 면접은 이미 망했구나’를 직감했다 – 대한항공에 가서 독일어 면접과 토론면접을 봤다. 면접을 보니 욕심이 생긴다고, 최종결과 발표 날에는 집에 있을 수가 없어서 명동성당으로 직행했다. 저녁때쯤 발표를 했던 것 같은데, 잠깐 기도를 하고, 성당이 보이는 커피빈에 앉아서 기다리다 결과를 확인했다.
‘불합격’이라는 글자와 나에게 행운을 빌어준다는 문구를 보자마자 노트북과 짐을 싸서 다시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맨 앞 예배단에 있는 십자가를 말 그대로 ‘째려보면서’. ‘나한테 왜 그래요? 나한테 왜 그랬어요?’라고 눈으로 마음으로 주님께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원망을 퍼부었다.
한참을 눈도 깜빡이지 않고, 십자가를 보면서 온갖 화를 다 쏟아낸 후, 터벅터벅 집에 왔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지냈던 것 같다. 그리고 이틀 후, 오스템 임플란트에서 전화가 왔다. 면접을 보러 오라고. 면접을 보는 중에 독일 교육 주재원 포지션을 제안 받았고, 붙게 된다면 가겠노라고 대답을 했으며, 그 다음날 미니언즈를 보고 있는데 합격 전화를 받았다. 그렇게 ‘독일 주재원’ 타이틀로 나의 정체성을 새로 받은 시간이 다섯 달 정도 흘러, 드디어 발령받은 4월 1일이 되었다.
사실, 내 한국에서의 기억은 여기까지가 가장 최신이다. 그 다음에 들어와서는 지금 흘러가는 대로 따라가기 바쁘다. 오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너무 깊이 마음을 그곳에 두고 살았었나보다. 다시 출국날 공항으로 돌아가자면…
2016년 4월 첫째날, 우리 식구는 모두 인천공항에 있었다. 체크인을 하고, 출국장 나설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결국 내가 신경질을 냈다. “이럴거면, 나 그냥 지금 들어갈게!”하고. 유달리 ‘OO조심해라’, ‘OO조심해라’하며 잔소리를 하는 아빠가 못마땅했고, 다시 언제 볼지도 모르고, 그렇게 출국한 걸 후회할지도 모르는데 “아유, 나 이제 들어갈래!”하고 너무도 갑자기 신경질적으로 가족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출국장 줄을 서면 이제 정말 몇 년 동안은 못 볼 수도 있는데. 그래도 그 잠깐의 시간에 동생과 엄마를 꼭 끌어안고 인사를 했다. 건강해, 아프지마, 잘 있어 등의…동생은 내가 여권 검사하는 곳에 다다를때까지 내 이름을 부르면 내가 울면서 들어가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고 있었다. ‘괜히 줄을 일찍 섰나’하는 생각이 아주 잠깐 스쳤다. 아빠와는 허그를 하지 않고, 악수를 했다. 놀랍지도 않았다. 별로 안 친한 아빠와 딸이었으니까. 그래도 문틈으로 누가 콕콕 치는 소리를 내서 보니까 그 작은 틈으로 아빠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그렇게 유별난 가족들의 인사 샤워를 받고 난 독일로 떠났다.
비행기 안에서도 작은 기적이 있었는데, Thank God! 내 자리는 55K석. 화장실도 자주 안 가고 워낙 조용히 짱박히는 것을 좋아해서 나는 복도석보다 창가석을 선호한다. 그날도 조용히 창밖만 보고-창문을 내가 occupy하고- 갈 생각에 설렜는데, 내 왼쪽 두 좌석에 아직 승객이 오지 않았다. 애초에 예약이 안 되어 있던 건지, 취소건인지 곧이어 ‘비행기 문 닫겠습니다’라는 방송이 나오자 티 안내고 쾌재를 불렀다. 초반에는 얌전히 있었지만, 비행시간이 한, 두 시간씩 지나면서 모든 팔걸이를 올리고, 자체 비즈니스석을 만들었다. 유럽행 비행기에서, 그것도 이코노미에서 받을 뻗고, 심지어 누워서 가다니! 하늘 위에서 하나님께 무한 감사 기도를 드렸다. 이렇게 여기서부터 Lucky하게 도움을 주시는구나 하고. 중간중간 이십 대의 일기를 보면서, 또 혼자서 살아갈 생각에 펑펑 울다가 자다가 Frankfurt에 도착을 했다. ‘이제 이 곳이 내가 일하면서 살 땅이구나.’
Spring Effect. 독일 땅에 도착해서 처음 보이는 모든 것들이 내겐 Spring Effect였다. 고흐였는지, 르누아르였는지, 모네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내가 상상화가 아닐까 라고 생각했던 모든 풍경화들이 실은 ‘인상주의’에 입각한 실제 풍경이고 모습이라는 것을 현지에서 확실하게 실감했다. 들판에는 흰 꽃들이 덤불처럼 만개했고, 붉은 하늘, 시시각각 변하는 구름, 하늘, 하늘빛, 햇빛의 모습은 실제로 나를 뒤덮은 독일의 첫날 날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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