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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떠난 함부르크 여행

2021년 12월 12일 자가격리 방에서

by Soyun

급하게 구한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해가 지는 모습을 창문으로 바라보면서 이 글을 쓴다. 내가 자가격리를 10일 하게 된 이유는 함부르크를 다녀왔기 때문이다. 무작정 집에서 멀리멀리 떠나고 싶었고, 가족을 떠나고 싶었다. 그래서 갑자기, 함부로, 계획도 없이 함부르크에 다녀왔다.


내가 탄 비행기가 독일 땅에 닿을 때쯤, 대한민국에선 해외입국자 자가격리가 기정사실화 되었다. 무사히 귀국을 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자가격리’라는 시간과의 싸움. 호텔도 아니고, 그렇다고 로망도 아니었던 장소에서 열흘을 버텨야한다.


결국 엄마 아빠가 두 번의 걸음으로 보내준 내 이불과 내 베개, 내 쿠션 뭉치를 받아들고 들어와 그 자리에서 엉엉 울었다. 나에게 상처만 주던 부모, 이해받지 못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들을 멀리 떠나고 싶어서 다녀온 여행. 생각보다 가족과 더 오래 떨어져 있을 수 있게 나라에서 규정으로 열흘이란 시간을 더 주었지만, 나는 지금 너무 슬프다. 내가 가장 약해져서,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신분으로 다시 한국 땅에 돌아왔을 때, 내 곁을 지키고 있는 건, 나에게 상처를 준다고 내가 멀리멀리 떠났던 내 부모다. 이불이 들어있는 커다란 세탁소 봉지를 뜯으면서 이렇게 못된 딸이 있나 싶어 엉엉 울었다.


여기서 함부르크에서 있던 시간만큼을 견디고 버텨야 해서 그럴까, 엄마는 사과, 귤, 삶은 계란, 마른 오징어까지 보내줬다. 제사라도 지내란 소린가. 우리집 반찬통 그대로 온 김치와 가래떡, 김, 컵밥, 초콜릿 등을 보고 있으니, 전쟁이 나도 여기선 한동안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참, 요구르트와 아몬드도 보내왔다. 그리고 엄마가 꽤 큰 돈을 보내왔다. 나는 그 돈이 엄마에게 얼마나 큰지 알고 있다. 그래서 마음이 더 찢어진다. 내가 Trink Geld로, Stimmt so!로, 그리고 노숙인에게 기분껏 퍼주었던 그 작은 돈들을 엄마가 모아서 만든 것을 잘 안다. 생각보다 집이 빨리 그리워졌었고, 한국에 오자마자 격한 환영식을 겪으면서 얼른 열흘이 지나가, 우리집에 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내일 선별진료소까지는 도보로 이동할 예정이다. 산책을 하고, 바람을 쐴 수 있다는 생각에 긴 거리도, 코를 찌르는 아픔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늘 처음이 힘들다. 오늘밤도 무사히 잘 지나가고, 여기에서의 생활에도 적응하기를.



Apfel.jpg 한 번 베어 물었는데 이렇게 됐다. 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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