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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3일

책가방

by Soyun

결론부터 말하자면, 버스에 가방을 놓고 내렸다. 홀린 듯이 하차 벨을 누르고 정말 몸만 내렸다. 겨울 옷이 두꺼워서인지, 목에 맨 목도리가 짱짱해서 인지, 마스크 때문에 둔해져서 인지, 무언가 몸에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고, 버스 문이 열리자 폴짝! 몸만 내렸다.



집에 가서 쉴 생각을 하고, 성당 앞을 지나는데 그 시간에 가방을 맨 꼬마 하나가 나오는 게 보였다. 그때 불현듯, 등이 서늘하고 허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순간 손으로 등을 더듬어 봤는데, 없다! 없었다! 등에 매고 있다고 생각한 가방이 없었다.



경찰서에 전화를 해야 하나? 이런 일로? 다산 콜센터? 버스 회사? 아니, 뭐 어떡해야 하는 거지? 혼잣말도 제대로 안 나올 정도로 말문이 턱 막혔다. 그때, 반대편에서 내가 탔던 버스와 같은 번호가 보였고, 무작정 뛰었다. 같은 회사겠지, 일단 타고 차고지에 가서 기다리면 되겠지?



퇴근하는 사람들로 꽉 찬 버스 안에서 창피해서 바로 말도 못 꺼내고, 조금 있다가 기사님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다. 나는 마음이 너무 급한데, 기사님은 너무 쿨하게 이런 일이 마치 종종 있었던 것처럼 어딘가로 전화를 거셨다. 기사님 뒤에 딱 붙어 있는 나에게 우선 앉으라고 하셨다. 눈에 보이는 대로 노약자석에 앉았다.



“책가방이에요?”

“네!! 까만색이요!!”


내 백팩이 맞는 것 같았다. 다행히 바로 조금 전 반대편 차선 기사님과 마주치셨고, 내 가방을 보관해 주시기로 했다. 너무 감사하고, 또 방해될 까봐 죄송하기도 해서 맨 앞자리로 옮겨와 조용히 앉아 있었다. 가방 안에 있는 소지품들과 정리해야 할 것들, 처리해야 할 것들이 다시 머릿속을 스치면서 약간 넋이 나가 있었나 보다. 기사님이 집에 어디냐고 물어보셔서 다시 정신을 차리고 한 바퀴 돌아서 다시 가면 된다고 말씀드렸다.



알고 보니, 그 버스는 정차를 하고, 한참 뒤에 다시 출발한다는 것이었다. 코너를 돌 때, 느낌이 쎄하더라니… 앞에 정차된 다른 버스가 더 빠를 거라고 하셔서 또 내려서 냅다 뛰었다. 버스 문은 잠겨 있었지만, 때마침 같이 버스를 타려는 승객이 있어서 아저씨가 문을 열어 주셨다. 아직 출발하지 않는 버스였고, 정류장도 아니었는데 바깥에서 기다리는 승객 두 명이 불쌍했나 보다.



집에 오는 버스를 타고, 차가 익숙한 길에 들어서자마자 눈물이 왈칵 났다. 새해 들어서 이게 무슨 일인지 서러웠다. 집 근처 정류장에 내리자마자 아파트 입구까지 누가 보든 말든 엉엉 울면서 들어왔다. 그런데 엘리베이터 옆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웃음이 났다. 학교 처음 들어간 애들이 가방 잃어버리고 우는 모습과 겹쳐 보여서 너무 웃음이 났다. 8살짜리도 아니고, 서른 여덟이 되어서 가방 놓고 내려 울고 있는 모습과 상황 자체가 너무 웃겼다.


내일 아침 나는 다시 내 가방을 찾으러 버스 회사로 가야 한다. 잘 찾을 수 있겠지? 새해 신고식을 제대로 한 것 같아서 어이가 없으면서도 이젠 좀 웃음이 난다. 이게 인생이겠지. 내 가방이 나에게 잘 돌아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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