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먼저 마중 간 포르투 일주일 여행기
D-12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아서 오늘 하루 일찍 시작한다 생각하고 다시 책상에 앉았다. 몇 날 며칠을 앓고 고민을 하다가 드디어 오늘 모든 일정을 예약했다. 갑자기 주어진 시간에 뭔가 머리 식힐 나만의 의식이 필요했고, 떠오는 곳이 바로 포르투였다. 포르토? 포르투? 발음도 잘 모르면서 목적지로 Porto를 정했다.
아직 시간이 좀 남아 있어서 또 얼마나 많은 ‘소풍 전날’을 겪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가만히 있긴 싫었다. 내일부터는 마음을 잡고 내 일상을 살아낼 것이다. 여행을 떠나서도 나는 크게 특별할 것 없이, 그곳에서 나의 일상을 지킬 것이다. 다만, 멀리멀리 가보고 싶었다. 여기서 가장 먼 유럽, 바다랑 가장 가까운 곳으로. Porto는 항구를 의미한다고 한다. 나에게 Porto는 준비되면 언제든지 원하는 곳으로 떠날 수 있는 곳에 더 가깝다. 배들의 정박지가 아니라, 배들이 출항하는 곳. 지금 나의 상황이 Porto 같아서 더 끌린 것 같다. 아무튼 나는 여행가기 전날까지 마음을 다잡고 규칙적으로 내 삶을 살아낼 거고, 여행지에 가서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들을 무심히 하면서 지내다 올거다. 건강히!! 재미있게!!
D-10
왜 포르투냐고 물으면, 그냥 포르투!였다. 영어도 독어도 들리지 않는 곳으로 떠나 쉬고 싶었다. 내가 있는 곳에서 가장 먼 유럽으로 가고 싶었다. 하루 종일 햇살만 받고, 풍경만 보다가 오고 싶었다. 내 여행을 '포르투 한달살이'라고 이름 붙인 이유는 여행 보름 전부터 마음은 이미 포르투에 가서 이 골목 저 골목을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며칠동안 포르투 관련된 글만 읽으면서 보냈다. 블로그, 브런치, 까페 글, 구글 리뷰까지 닥치는 대로 읽었다. 참 글들을 잘 쓴다. 나도 내가 원하는 말을 힘들지 않게, 유려하게 잘 표현했던 사람인데,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은 말도 글도 다 엉망이 되었다. 더 성숙해지지 않고 기계처럼 일 할 수 있는 기능만 남아 퇴화하고 있는 것 같다. 그나마 필요할 때 바로바로 생각나던 단어들도 다 사라진 것 같다.
이번 여행에선 나만의 시간을, 나 답게 보내면서 글도 많이 쓰고, 다시 내가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나 자신으로 돌아가고 싶다. 이번 여행에서도 분명 뭔가 얻어오는 게 있겠지. 10년을 다른 사람 마음에 들려고 내 본성을 감추고 가렸더니 결국 이렇게 되었다. 글도, 말도 다시 얻어오기 위해서 비우러 떠난다. 조용히, 내 언어들을 다시 가져와야겠다.
D-9
블로그 검색을 하면서 문득, 이제 검색은 그만 해야 하겠다고 느꼈다. 모두 잘 나온 사진, 먹음직스런 음식, 너무 예쁜 노을들을 올렸다. 하지만, 그건 내가 찍은 사진도 아니고, 내가 느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선물 상자를 만지작거리는 건 잠시 멈췄다가, 진짜 D-Day에 열어볼 생각이다. 사진으로 미리 예습하는 게 아니라, 진짜 내 발로 걸어 다니고, 내 마음으로 느끼고 싶다. 포르투의 첫인상은 어떤 색깔로 기억될까?
D-8
비행기에서 긴 시간동안 읽을 책을 샀고, 고민 끝에 일정 중 하루를 강변이 보이는 숙소로 바꿨다. 새벽까지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또 3시를 넘겼다.
D-7
포르투 여행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책을 팔러 중고서점에 갔을 때다. 보통 새 책을 사서 깨끗하게 읽고 되파는 걸 취미로 하는데, 한 번도 제대로 읽지 않은 책등을 호기롭게 꺾은 게 시작이었다. 늘 몇 권이든 가져가면 용돈으로 바꿔서 기분 좋은 빈손으로 돌아왔는데, 매입 불가가 두 권이나 떴다. 한 권은 꺾은 책등 때문에 변형도서라서 안 되고, 다른 한 권은 재고량이 너무 많아 매입불가라고 했다. 그 얘기를 듣는데 마치, 내 머릿속도 이와 같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너무 온갖 생각으로 가득 찼고, 그래서 제 기능을 못 할 정도로 변형, 즉, 지쳐 있으니 이를 해결하려면 비우고, 힐링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까지도 결정을 못하고 있는 나에게 주는 싸인이구나!’라는 생각에 집에 오자마자 폭풍 예약을 시작했다. 어디로든 정말 떠나고 싶었는데 그 사이 ‘용기’가 또 나에게서 멀어져 있었다. 세상이 주는 메시지라고 생각하고 더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갈 계획을 세웠다. 얼른 출국일이 다가 오기만을 바랄 뿐이다. 비행기를 타고 발이 땅에서 뜨면, 그제서야 실감이 좀 나지 않을까? 돌아와서의 일들은 돌아온 후에 생각하기로 했다. 그때쯤이면 새 힘이 생겼겠지. 머릿속에도 비행기 모드가 가끔은 필요하다.
D-6
비행기만큼 책 읽기 좋은 곳이 있을까? 적당한 백색소음과 나에게 말 걸지 않는 모르는 사람들. 가끔 밥 시간이 되면 쉬는 시간이 되는 하늘 위 독서실. 그래서 여행을 준비하게 되면 항상 그간 읽고 싶었지만, 집중하기 힘들었던 책을 하나씩 챙기곤 한다. 이번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골랐다.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고, 항상 여행 전에 우연히 읽고 싶은 책이 생기면 그걸로 정한다. 어려운 철학책 같은 표지에 숨겨져 있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만 알고 첫 부분부터 아껴 읽기 시작했다. 이륙하면 정식으로 읽기 시작 해야지. 누군가를 온 마음을 들여서 사랑해 본 적이 꽤 오래 전 일이다. Saudade. 포르투갈어로 그리움, 향수, 갈망이라고 한다. 바다 멀리 떠나 돌아오지 않는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이 이 단어의 어원이고 시작이다. Saudade. 사랑의 감정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최근 1년간 누군가를 계속해서 그리워한 적은 있다. 그 사람이 없으면 못 살 것 같은, 그런 죽을 것 같은 감정은 아니어서 무던하게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서 다시 만나게 되기는 했지만, 피천득의 ‘인연’이 떠오른 건 왜일까. ‘세번 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라는 그 말을 내가 하게 되었다. 늘 다시 만나면 어떻게 인사할까 막연히 생각했었다. 다시 만나지 않았더라면, Saudade로 계속 남아있었다면 어땠을까 계속 생각하게 됐다.
D-3 언어장벽
나는 3개국어를 한다. 한국어(우리말, 모국어), 영어, 독일어다. 하지만 외국에 나가서는 꽤 긴장하는 편이다. 완벽한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있다. 그래서인지 방구석 언어공부는 미친듯이 했는데, 그에 비해 스스로 외국에 나가 본 경험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늘 '준비되면 가야지, 완벽해지면 떠나야지'하는 생각으로.
오늘 습관처럼 여행 유튜버의 채널을 보다가 여행지에서 스스럼없이 사람들과 만나고 섞이고 대화하는 모습을 봤다. 그의 외국어는 간단했지만 자신감 있었고, 언어의 완벽성 보다는 '대화'를 향해 있었다. 순간, 언어장벽이라는 게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소통’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에게 언어장벽은 이미 허물어져 있었다. 반면에 '기회'와 '용기'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동안 나는 스스로 얼마나 많은 언어의 장벽을 세우고, 나자신을 가둬 두었을까, 세상과 차단 했었을까 생각을 하니 안타까웠다. 이번 여행에서는, 그래서, 문법체계의 틀을 깨고 입에서 나오는 외국어를 해보고 싶다. 혹여, 발화가 된 이후에 생각난 문법상의 오류를 깨닫더라도 자책하지 않는 습관을 기르고 오려고 한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세상과의 '만남'이지 '시험'이 아니니까. 언어를 사랑하는 내가 언어를 통해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
D-Day
내 인생 첫 비즈니스를 탔다. 처음 받아보는 환대에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지만, 데뷔 잘 했다. 그리고 그렇게 편하게 취리히에 도착했다.
D+1
캡슐 호텔에 처음으로 묵었다. 해보고 싶었다. ‘고층’이라는 게 건물의 고층인 줄 알고 예약을 했는데 2층을 의미하는 upper level이었다. 사다리 층고가 생각보다 높았다. 괜히 이름을 Alpine Capsule Hotel로 지은 건 아니었다. 첫날 그렇게 알파인 등반을 하고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5프랑을 추가 지불하고 아래층 침대로 바꿨다.
D+2
새벽에 충전기 플러그 부분이 없어진 걸 깨달았다. 비행기도 모두 온라인 체크인이라 배터리가 닳게 되면 끝장이었다. 방을, 아니 캡슐을 급하게 옮기느라 그랬을 것 같아 리셉션 도움을 받아서 다시 확인해 봤는데, 없었다! 100% 대한항공에 두고 내렸구나. 그래… 일단 공항에서 충전기를 새로 사든지 하자…하고 마음을 비웠다. 공항으로 갈 준비를 하면서 옷가지를 챙기는데 뭐가 툭…하고 떨어졌다. 급하게 짐을 챙겨 옮기느라 청바지 사이에 끼어 들어갔었나보다. 다행중에도 이런 다행이 없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이런 up & down이 얼마나 또 많은가.
캡슐 호텔이 너무 조용하고 답답해서 일찌감치 서둘러 공항으로 출발했다. 공항이라고 해도 2분 거리였다. 스위스 비행기들이 잘 보이는 공항 창문가 카페에 앉아서 아침 7시에 커피와 Lachssandwich를 먹었다. 비행기가 이, 착륙할 때마다 안도감이 들었다. 마치 내 인생도 이대로 가만히 멈춰있지는 않을 거라는 암시 같았다. 취리히에서 포르투로 가는 게이트에 동양인은 또 나 혼자다. 또 성당앞에 홀로 있었던 조약돌처럼 나혼자 튄다. 포르투 유명하다며…왜 또 나 혼자야. 그래도 하나 마음이 좋았던 건 공항에서 맘대로 돌아다니다 아침 식사를 한 카페 바로 앞이 게이트로 배정되었단 사실이다. 우연이고 행운이다. 더 나가면 간증인가?
포르투에 도착한 첫 날, 날씨가 맑아서, 더워서 참 다행이었다. 전망을 보러 클레리구스 성당을 올라갔다가 땀범벅이 되어 내려왔다. 코 앞에 있는 숙소에서 샤워를 하고 다시 사람답게 하고 길을 나섰다. 그 다음날 예정이었던 히베이라 지구, 도우루 강, 루이스 다리, 맞은편 가이아 지구까지 모두 한 번에 돌아봤다. 생각보다 모두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가이아 지구에서 강변에 앉아 포르투를 바라봤다. 따땃하게 내리쬐던 햇빛, 그 덕에 따땃한 돌 위에 앉을 수 있었고, 오후 3시의 포르투를 평생 기억에 담을 수 있었다. 강의 폭이 그리 넓지 않아 맞은편 창문들까지 모두 잘 보인다. 햇살이 부서지는 강변은 사진에 담기지 않았다. 사진은 순간을 기억하게 도움을 주는 도구일 뿐이지 모든 건 내 온 몸의 세포가 기억하길 바랐다.
감격에 차서 루이스 다리를 건너왔다. 다시 한번 강을 바라보는데 누군가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조금 더 같이 걷게 되었다. 좋은 사람 같기는 했지만 낯선 이에 대한 경계심 때문에 일찍 헤어졌고, 그래도 연락은 주고받는 친구가 되었다.
D+3
포르투 날씨는 밀당을 잘 한다. 언덕을 조금만 오르면 땀이 송글송글 맺히다가도, 골목길 그늘에서 바람이 한 번 불면, 언제 그랬냐는듯 선선하다. 땀이 다 마른다. 바르셀로나는 해가 쨍쨍 내리쬐고 더웠지만 공기가 습하지 않아 좋았다. 포르투는 공기는 차갑지만 춥지 않아 또 좋다. 앞으론 이렇게 그 지역 엽서를 사서 기록해야겠다. 괜히 무거운 노트를 들고 다니지 말고. 수첩을 사서 쓰다 마는 것보다 예쁜 그림 엽서가 있으니 일석이조다.
렐루 서점에 갔다가 독일어책 두 권을 사서 나왔다. Amarena Kirsche가 있는 아이스크림 집이 있어 반가웠다. 그리고 집으로 오는 길에 만난 18번 트램이 바다로 데려다 줬다. 등대가 있는 방파제를 기준으로 한쪽은 너무 잔잔하고 빛나는 바다, 다른 한쪽은 파도가 부서지듯 바위를 때리는 바다였다. 잔잔한 바다는 아름다웠지만, 오래도록 눈길이 갔던 건, 파도가 거세게 치는 바다였다. ‘이게 바다지’. 왜 내 인생은 잔잔하지 않냐고 따져 물었던 기억이 생각나 파도를 보다가 울었다. 파도 치는 바다가 잔잔한 바다보다 훨씬 더 살아 있는 것 같아서 파도를 반기기로 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우연히 1번 트램을 타고 다른 루트를 볼 수 있었다. 필요한 것들이 있어서 Primor라는 곳에 가다가 계획에 없던 관광지 중의 하나인 ‘볼량 시장’에도 들렀고, 상 벤투역도 봤다. 계획하지 않고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만나는 이 맛이 여행이지 싶다.
허기가 져서 Casa Costa라는 숨겨진 맛집을 찾아갔는데, 노인정 같은 분위기에 동네 어르신들은 다 계신 것 같았다. 사진을 보여드리며 이걸 먹고 싶다고 했는데, 내가 보여드린 사진은 모두 주인장에게 거절당했다. 대신, 앞니 빠진 어르신에게 서빙되던 음식을 갑자기 뺏어와 나에게 보여주며 이거 밖에 안된다고 했고, 나는 당황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서양이나 동양이나 밥그릇 뺏는건 아니다 싶어 내가 다 미안했다. 주인장 때문에 기분이 상하셨을까봐 최대한 예의바른 젊은이처럼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음식이 나왔고 포르투 동네 어르신들이 이목이 나에게 집중됐다. 나는 콩을 싫어한다. 이러한 비주얼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최대한 맛있게 먹었다. 포크로 먹다가 숟가락으로 먹고 맥주도 한 병 시켜서 먹었다. 관객들의 눈에 경계심, 거부감이 좀 사그라지는 걸 보면서 먹방을 했다. 정말 열심히. 나중에는 빵도 한 덩이 주길래 또 열심히 먹었다. 드디어 거의 다 먹었는데 이제는 백숙 같은 치킨 스프를 준다. 이것도 포함인가? 두 숟갈 먹고 남겼다. 배가 불러서 나가겠다는데 앉아 있으란다. 이제는 케이크를 준다. 케이크는 다 먹었다. 입맛에 맞았기 때문이다. 좀 더 있으란다. ‘카페? 노?’ 이래서 커피는 안 마셔도 된다고 했다. 그런데 커피가 또 테이블에 올려지는 경험을 했다. 에라 모르겠다하고 입에 털어넣고 일어나는데 주인장이 제스쳐를 취하면서 앉아 있으란다. 마지막 벌꿀주. 식고문을 당하는 줄 알았지만 그들의 온정에 참을 수 밖에 없었다. 두 모금 마시고 힘들다는 표정을 지었더니, 술 못 마시면 그만 마셔도 된다고 했다.
배는 부르다면서 케이크는 다 먹고, 술 못 한다면서 맥주는 다 마신 모순적인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는 순간 ‘이렇게 예기치 않은 코스를 먹이고 도대체 얼마를 달라고 할까’ 가슴 졸이며 카운터로 갔는데 주인장이 종이에 쓴 숫자는 7. 이렇게 다 먹고 7유로란다. 왜 구글 평점이 높은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사실 음식은 나에게 잘 맞지 않았지만, 짧은 포르투갈 단어로 거기 계신 노인 분들과 말 몇 마디 주고 받으며 식사한 기억은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새를 한 마리 기르고 있었는데 이방인을 보더니 미친 듯이 지저귐을 멈추지 않았다. 아까 그 앞니 빠진 노인과 아이컨택을 하며 ‘porque(대체 왜 저럴까요?)’라고 말하자 모두가 웃었다. 마음도 배도 가득차서 드디어 탈출(?) 할 수 있었다.
D+4
어제는 비가 왔었다. 비 오는 포르투도 좋았다. 왜 언덕에 이렇게 울퉁불퉁 돌길로 해놨나 궁금했었는데 비가 오니 그 이유를 알겠다. 미끄러지지 말라고. 우리나라는 세차하고 비 오면 엄청 싫어하는데 여긴 비오는 날 세차하는 아저씨를 만났다. 까루모 성당 9시 예배에 참석하게 되어 성찬식도 했다. 나타 맛집을 발견해서 연달아 두 개를 먹었다. 골목골목까지 트램이나 버스가 올라오지 않으니 동네에서 히치 하이킹 하는 사람들도 봤다. 투어버스를 타고 바다로 갔었다. 일몰 전, 해가 가장 빛날 때 바다에 부서지는 빛이 생생하여 좋았다. 오늘은 의도치 않게 3km를 걸었다. 어제 갔던 바다의 반대편까지 찍고 결국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 오늘은 기필코! 문어요리를 먹어야 한다.
D+6
내가 스위스에 머무르는 하루 동안 여행기를 정리할 수 있을까? 종이가 필요해서 엽서를 추가로 더 샀다. 포르투에 충분히, 그리고 어쩌면 지겹도록 있었다. 대중교통을 안 타고 오로지 도보로만 이동해서 그런지 순례자의 길을 걷는 것 같았다. 포르투 특유의 꼬불꼬불한 골목과 고바위 언덕길, 길에서 가끔씩 마주치는 순례자의 길 조개 표식이 그 느낌을 더했다. 특별히 한 건 많지 않은데 지도 없이 다닐 정도로 포르투의 길을 내 발로 직접 걸어다녔다. 골목이 워낙 많아서 가보지 않은 길도 시도해 봤다. 포르투에 총 6일을 있었다. 도착한 날은 매우 덥고, 날씨가 맑아서 행운 같았다. 비 오는 포르투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6일 동안 있어서 다양한 날씨를 겪었다. 비 오는 포르투도 운치 있었다. 아침 포르투, 저녁 포르투, 한낮의 찌는 더위의 포르투도 좋았다. 포르투에 다시 올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쯤은 와 봐도 좋을 거라고, 후회 없을 거라고 말하고 싶다. 혼자라서 자유로웠고, 많이 외로웠으며, 기도도 많이 할 수 있었고, 나 자신과 많이 걸을 수 있어서 좋았다.
D+7
스위스에 다시 왔다. Tram을 타고, 씩씩하게 혼자서 잘 찾아왔다. 청국장 냄새처럼 코를 찌르는 치즈 냄새가 진동하는 호텔 리셉션에선 독일어로 말해도 꾸준히 영어로만 대화하려는 아줌마가 나를 맞았다. 그들의 눈빛에서 코로나 이후 얼마나 더 많은 동서양의 간극이 생겼는지 알게 되었다. 그래도 스시와 새우 샐러드, 리가토니와 라들러까지 사와서 방안에서 편안하게 만찬을 즐겼다. 반 캔쯤 남은 라들러를 옆에 두고 창문이 두 개 있는 옥탑방 호텔에서 여행 마지막 날을 기록하고 있다. 원래 가려고 했던 Imbiss는 문을 닫아서 Coop City에서 장을 봐서 방에서 먹었다. 그래도 방에서 창문으로 바람을 온전히 느끼며 하늘, 구름을 볼 수 있어서 좋다. 일주일간의 여정을 조용하고 잠잠하게 마무리하는 중이다. 내일이면 집에 간다. 이제 집이 그립다.
어느덧 4월 마지막 날이다.
집에 와서 배앓이를 심하게 했다. 그렇게 걱정하던 소매치기는 피했는데, 식중독은 피하지 못했다. 너무 날음식만 먹고 다녀서 그런 듯 하다. 하루 지난 것 같은 크로아상 샌드위치를 시작으로 호텔에 있던 오래된 물병의 물을 마신 것, 스위스에서 스시로만 배를 채운 것, 차가운 새우 샐러드를 먹은 것, 빈 속에 에스프레소를 먹은 것 등등 배탈이 날 이유는 충분했다. 집에 와서 배앓이를 하느라 거의 여행일수의 반에 해당 하는 시간을 그냥 보낸 것 같다.
하도 앓아서 내가 여행을 다녀온 게 맞나 싶었는데 사진들을 보니 다시 실감이 났다. 코로나가 거의 완전히 끝나고는 처음 나가는 여행이었고, 긴장도 많이 했었다. 감을 잃었었지만 금새 다시 찾기도 했었다. 출장지도 아니었고, 내가 정해서 나간 곳이었기 때문에 내 선택에 대한 애정도 컸다.
늘 비슷한 분위기의 곳만 갔었는데, 이번엔 좀 달랐던 것 같아 내 생각의 지평도 조금은 넓어지지 않았을까 기대해 본다. 그리고, '걱정, 막연한 두려움' 대신, '호기심과 용기'를 다시 얻은 것 같아 큰 성과였다.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는 정말 많이 걷기도 했다. 평지가 아니라 언덕이 참 많았다. 30분만 걸어도 낮에는 땀범벅이 될 정도였다. 그렇게 단련이 되어서 그런지 오래 걷는 데에 익숙해졌고, 계단 따위야 웃음이 날 정도였다. 오히려 오래 걷지 않은 날은 많이 답답했다.
기념품을 사지는 않았지만, 도우루 강변에서 2유로짜리 팔찌를 하나 샀다. 내가 좋아하는 모든 색깔이 어우러진 팔찌였다. 값을 지불하고 강변 구석에 가서 나에게 팔찌 증정식을 했다. 앞으로 더 멋지게, 용기 있게 살아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나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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