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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김종욱 찾기

쿠알라룸푸르 여행기

by Soyun

모든 여행은 그대로 의미가 있다. 나는 그 의미에 대해 여행경비를 지불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포르투에서 돌아온 지 닷새만에 다시 비행기를 탈 생각을 했다. 요즘 방영되는 ‘지구마블 세계여행’을 혼자 찍고 있다. 굳이 ‘빠니보틀’의 엔딩을 따라 하자면, 이번 말레이시아 여행은 나에게 세 가지 의미로 다가왔다.


1. 순수했던 나의 첫사랑 시절로 회귀했었다. 가는 곳마다 19살의 그 아이가 어떻게 생활했을지 그려졌다. ‘김종욱 찾기’였다.

2. 가족과의 소중한, 돈 주고도 못 사는 시간을 보냈다.

3. 유럽만 좋아하던 내가 동남아에 대한 편견을 깨고, 조금 더 넓은 세상을 받아들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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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의 첫 번째 의미. 나의 이십 대.

이번 말레이시아 여행은 별로 빠릿빠릿하지 않았고, 약삭빠르지 못했던 내 이십 대에 대한 헌사였다. 회사가 처음이라 뛰쳐나왔던 내 첫 직장의 흔적을 많이도 만났다. 나무가 정글 같은 곳에 있다는 것만 빼고. 동생이 물었다. ‘저기 계속 다녔으면 지금쯤 연봉이 얼마였을까’ 하고. 아쉽지 않으면 거짓말이겠지만, 난 그때 사막 같아서 나왔다. 후회를 의식적으로 하지 않는 이유는, 그 이후의 모든 경험과 내가 살아온 날들, 그리고 내가 했던 선택에 대한 존중이다. 이미 내가 살아온 하루하루가 나에겐 더 소중하다.


그렇게 과거로 생각이 이어지다가 잊고 있었던 19살에 만났던 친구가 생각났다. 그 친구는 말레이시아에서 유학을 했었다. 나는 고3이었고, 방학 때만 잠깐 왔다가 우연히 마주친 그 친구를 보러 가겠다고 떼를 쓰기도 했었다. 그땐 그렇게 그 아이를 보러 오고 싶었다. 나의 가장 중요했던 고3 시절에. 하지만, 그 이후, 대학에 들어가고, 삶이 바빠지고, 더 복잡하고 재미있는 일들, 사람들이 내 삶을 가득 메우면서 말레이시아는 나의 여행지 후보군엔 없었다. 아마 이번에도 가족들이 먼저 이곳으로 여행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나도 비행기표를 끊지 않았을 것 같다. 덥고 습한 나라. 내가 선호하는 여행지는 아니었다. 선발대인 가족과 추억을 만들겠다는 생각 하나로 뒤늦게 합류했을 뿐이다.


시티 투어를 하다가 학교를 지나게 됐고, 그래서 생각이 났다. 그 친구가. 고3 때까지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던 나로서는 그 친구가 부럽기도 하고, 더 나아가서는 얄밉기도 했었다. 좋아하는 마음과는 따로. 지금 드는 생각은, ‘가족과 떨어져서 외롭기도 했겠구나. 더운 나라에서 힘들기도 했겠구나. 주말엔 친구들과 이곳에서 지냈겠지. 이 장소도 들렀을까?’였다.


“Terima kasih(테리마까세)”

말레이어로 ‘감사합니다’란 표현이다. 말레이시아로 편지를 많이 보냈었다. 편지봉투에 주소를 적고 나서는 그 밑에 ‘테리마까세’를 함께 적었다. 국제전화로는 다 못했던,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었고, 그 모두가 그 아이에게 전달되길 바랐었다. 시간이 참 많이 흘러, 내가 그렇게 편지를 보냈던 곳에 직접 와 있으니 잔잔히 19살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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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의 두 번째 의미. 가족.

가족과 여행을 하는 건 재밌고 편하다. 편한 사람들이라서 혼자 여행보다 불편할 때도 있었다. 지치고 힘들게 되면 가장 쉽게 짜증을 낼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핏줄이라는 팀워크를 발휘하다가도 서로의 감정이 표정에 바로 드러나기도 했다. 예전만큼 기민하지 못한 엄마가 마음이 짠하면서도 걱정되는 마음에 잔소리를 하게 됐다. 여행지에 와서 너무 우리만 믿지 말고, 긴장을 좀 하라고 두 남매가 엄마에게 잔소리를 했으니 엄마의 자존심과 기분이 어땠을지 상상이 간다. 그래서인지 다음 일정부터는 길을 찾거나 이정표를 발견하면 ‘이거 엄마가 한 건 한 거지?’라며 우리를 뿌듯하게 바라봤다. 엄마가 귀여웠다. 현지인들과 대화하는 우리를 보더니 엄마가 자극을 받았나 보다. 한국에 가서 영어 공부를 하겠다고 한다. 외국에 나갔다고 더 친절하지도, 젠틀하지도 않고, 투박하게 집에서 하던 대로 그냥 지냈다. 가족이 함께 있으면 어디든 Home이다.



이번 여행의 세 번째 의미. 언젠간 깨질 편견.

이번 여행에서 얻은 교훈은 직접 경험하기 이전의 모든 생각과 상상은 편견이라는 것이다. 사람들, 시스템, 대형 서점까지 나의 생각을 뒤집어 놓는 경험을 많이 했다. 세계 보고서 등에서 매긴 순위는 내가 만나 대화한 이 사람들, 이곳의 생활, 분위기, 풍경 등을 담기엔 너무 편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없는 책들이 여기엔 들어와 있는 걸 보고 GDP 순위만으로 한 나라의 첫인상을 상상한 지난날들을 반성했다.


우리나라 여의도 같은 푸트라자야 투어를 했는데, 푸트라는 Prince를, 자야는 Victory를 의미한다고 했다. 끊임없이 자기 말만 하는 가이드의 말을 끊고 겨우 물어봤다. 라디오를 틀어 놓은 듯, 너무 빨리 말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추임새 밖에 없었다. 그곳에 핑크 모스크가 있었다. 이 또한 나의 편견을 깬 계기가 되었다. 모스크 안에 들어간 건 처음이었는데 빛으로 채광을 할 수 있는 창문들이 아름다웠다. 바르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안에서 쏟아지는 빛으로 감동을 했던 때가 생각났다. 유럽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만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내가 또 한 번 놀랐다. ‘나의 세계를 조금 더 넓혀야지’라고 다짐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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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해가 될 만할 때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조금 더 열린 시각을 얻고 가서 큰 성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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