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 최승자
나의 취미는 교보문고에서 새 책을 사서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 읽은 후에, 아직 깨끗할 때 알라딘 중고서점에 되파는 것이다.
책을 가졌다는 안도감, 따로 반납 기일이 없다는 것, 남의 손떼가 묻지 않았다는 만족감에 일단 책을 읽는다.
책을 읽으면서 책 등을 꺾지 않는 습관이 있다.
처음에는 아끼는 책들을 처음 상태 그대로 더 오래 잘 보존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알라딘을 알고나서는 나의 '상품'이 최상등급을 받도록 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늘 알라딘에 되팔 것을 염두에 두고 책을 사서 읽지만, 때론 마음에 깊히 박히는 단 몇 줄 때문에 아예 내 책장에 들어앉히고 싶은 책들이 있다. 최승자 시인의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가 그 책들 중 하나이다.
교보문고에서 아무 생각 없이 산책을 하다 담배를 피우고 있는 시인의 모습이 담긴 표지가 눈길을 끌어서
그 자리에서 서서 몇 장을 읽었고, 독문학과 출신이라는 이름 모를 동질감에 구매를 했다.
'새에 대한 환상' 챕터에서 이 책은 다음 세 줄 때문에 팔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랑하는 도시 프라하가 나왔고, 하필 프라하 여행에서 나도 봤던 유람선 따라가는 오리들이 나왔으며,
결정적으로는 다음의 line 때문이다.
'...그 이후로 나는 하늘에서 날아가는 새들을 보면서 그들의 자유로움을 그리기보다는 그들 날갯짓의 중노동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한다. 쉬운 삶이란 없다. 어떤 존재든 혼신을 다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2020년 여름 회사를 그만두면서 오랜 꿈에 대한 도전을 했었지만, 완벽한 성취를 이루지 못한 후로 계속 '회사에 남아있었다면 더 나았을까'에 대해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월급도 많고, 안정적이고, 딱히 변화도 없고, 매일이 시트콤 같은 그 곳에서 오래도록 나의 젊음과 두뇌를 맞바꾸면서 취미생활이나 해외여행 정도는 충분히 여유롭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훨씬 자유롭고, 다시 나의 본성을 찾아가고 있고, 시간도 더 많아졌지만, 늘 불안하다. 별로 날카롭지 않은 검 하나 들고 나온 프리랜서같다. 하지만, 난 그 때 눈빛이 살아있는 사람들 틈에서 일하고 싶었고, 출근하면 하루하루 책상에서 내가 나에게 벌을 주고 있는 느낌이었다. '지금 참 잘 한거야, 자기계발에 더 몰두하면 돼. 할 수 있어.'
......
하루에도 몇 번씩 후회와 자기위안의 경계를 왔다갔다 했었다.
오늘, 이 책을 만나서 다행이다.
날갯짓의 중노동이 있지만, 나는 자유롭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나보다 오래 살아본 시인의 말을 빌려, 쉬운 삶이란 없다면, 그래서 모든 존재가 혼신의 힘을 다해 살아야 하는 거라면,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자유롭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 용기 낸 그 날 이후, 다시 처음으로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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