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니가 평생 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내가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20대 중반에 사랑니가 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고 통증만 있더니 선홍 잇몸 사이로 하얀색 치아가 살짝 보이기 시작했다. 계획에 없던 사랑니가 내 인생에 갑자기 나타났다.
시청 근처 치과에서 치위생사로 일하는 친구가 있었다. 자기 병원에서 사랑니를 뽑고 근처에 기가 막힌 곰장어 집에서 저녁을 먹자고 했다. 엑스레이를 찍었다. 아래 사랑니 2개가 모두 누워있다고 했다. 신경을 건드릴 수 있으니 대학병원을 가보라고 했다. 친구랑 맛있게 곰장어를 먹으며 앞으로 사랑니를 뽑기 위해 격게 될 고통을 위로했다. 사실 윗니 하나 정도는 뽑을 수 있었는데 곰장어를 못 먹는다고 해서 그냥 나온 건 절대 아니다.
대학 병원은 예약 잡기가 힘들었고 일반 치과는 토요일에 사랑니 발치를 하지 않았다. 회사를 다니면서 시간 맞추기가 힘들었다. 사랑니는 그렇게 무럭무럭 자라났다. 피곤하면 붓고 피나기 일수였다. 당장 내일 가서 뽑아 야지 하다 가도 부기가 빠지고 괜찮으면 그새 잊어버렸다. 절대 치과 가기 귀찮아서 그러는 건 아니다.
해외에 1년에서 정도 나가 있을 일이 생겼다. 보험도 안 되는 해외에서 사랑니가 붓고 아프면 골치 아플 것 같았다. 이번 기회에 꼭 뽑아 야지 다짐했다. 장기체류다 보니 준비할 서류가 너무 많았고 그를 위해 밟아야 할 절차가 너무 복잡했다. 겨우 서류 준비를 마쳤을 때는 떠나기 2주 전이었다. 동네에 매복 사랑니 발치로 유명한 치과가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혹시나 해서 사랑니 발치하고 2주 있다 비행기 타도 괜찮은 지 물었더니 조금 조심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발치를 하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막상 뽑으려니 무서워서 그러는 건 절대 아니다.
20대 중반부터니까 대략 15년 동안 해결하지 않고 질질 끌고 온 것이다. 그래서 그런 걸까? 언제부터인가 사랑니가 내 게으름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한 번은 넘어야 할 산 같았다. 이걸 뽑아내야 내 안의 ‘현실 회피’, ‘결정 부족’, ‘행동 결핍’, 이 따위 악의 무리들도 같이 뽑혀 나갈 것만 같았다.
퇴사를 하고 ‘해야 할 일’ 리스트 첫 번째가 ‘사랑니 발치’였다. 이사를 했으므로 새로운 동네에 매복니 발치로 유명한 치과를 찾았다. (동네마다 매복 사랑니 발치로 유명한 치과가 하나씩은 있나 보다. 심지어 전 동네랑 치과 이름도 같았다. 암튼) 그리고 대망의 발치를 했다. 뼈를 자르고 치아를 당기고…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충격이 턱에 가해졌다. 장장 20분에 걸쳐 발치를 완료했다. 입술이 찢어지고 잇몸에 상처가 나는 등 고통이 따랐지만 내 안의 묵은 게으름과 이별을 고한 것 같아 속이 시원했다. 하지만 아직 왼쪽 사랑니가 남아 있다. 1차 사랑니 발치 수 2주 후에 나머지도 발치하려고 했는데 한 달 뒤로 미룰까 살짝 고민 중이건 절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