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그만두었더니 낮에 혼자 길거리를 돌아다닐 일이 많아졌다. 걷다 보면 멀리서부터 나를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나의 미모에 혼을 빼앗긴 젊은 멀쩡한 남자였으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도를 아십니까’의 레이더망에 걸린 것이다.
조심스럽게 ‘실례합니다’라며 실례를 범한다. 눈도 마주치지 않고 바쁘다며 손사례를 치는 것으로 상황을 모면한다. 그럼 등 뒤로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들려오는 말이 있다. ‘얼굴에 공덕이 너무 많으셔서요. 이야기를 하고 한번 해보고 싶은데….” 작아지는 소리에 귀가 팔랑거렸지만 한치의 미련도 없는 듯한 씩씩한 발걸음으로 외면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하마터면 돌아선 몸을 다시 돌릴 뻔했다. ‘공덕(功德: 불교에서 장차 좋은 과보를 얻기 위해 쌓는 선행)이라 구요? 공덕이 빛을 보는 날이 있긴 있나요? 나는 지금 이렇게 힘든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요? 그놈의 ‘공덕’ ‘덕’ 좀 봅시다?’라고 정체불명의 분노를 발사할 뻔했다.
큰일이다. 자꾸 작은 일에도 큰 화가 난다. 지나치지 못하고 분노의 씨앗을 키워 한 줌 재로 사라질 때까지 태우곤 한다. 오늘 퇴직금이 들어왔다. 걱정과 달리 한 번에 잘 들어와서 기뻤지만 더 이상 입금될 돈이 없다는 사실이 허전했나 보다. 공덕이 얼굴에 말고 통장에 쌓였으며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