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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작가 Mar 20. 2020

세비야에 가면 세비야 법을 따라야 한다 : SIESTA

스페인은 지리적으로 아프리카와 가장 가까운 유럽이다. 남부인 안달루시아 지방 중에서도 세비야는 우리나라의 대구처럼 분지 지형의 도시이다. 그러니까 매우 덥다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Siesta  : (점심을 먹은 후) 낮잠 자는 시간, 휴식 시간 <네이버 사전 참고>

 

스페인 하면 떠오르는 ‘문화’이지만 여행을 하면서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다. 대표 관광지 위주로 다니기 때문이기도 하고 3박, 2박 짧게 머무는 도시는 더더욱 시에스타를 피부로 겪을 만한 일이 없었다. 하여 시에스타란 예전에 활발히 지켜졌지만 지금은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지나간 전통이라고 생각했었다.




43℃. 세비야의 여름 보통의 기온이다. 한국과 달리 습하지 않고 건조하기 때문에 그늘에서는 견딜 만하지만 햇빛에 그대로 노출된다면 아마 영혼이 뽑혀나가는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무더운 세비야는 시에스타가 착실히 지켜지고 있는 도시이다. 점시시간이 지난 뜨거운 오후, 도시는 이른 새벽처럼 다시 고요해진다.


보통 시에스타 시간은 오후 3~8시 사이이다. 식당들은 점심시간이 끝난 5~8시까지 쉬는 경우가 많고 일반 가게들은 3~6시 사이 쉬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슈퍼마켓도 시에스타를 지키는데 처음에 장을 보러 갔다가 허탕을 치고 온 기억이 아직도 강렬하다. (물론 주인의 재량에 따라 다르지만 개인사업자 가게들은 대부분 시에스타를 지킨다고 보면 된다.)


 식당의 경우 시에스타 시간에 문을 열었다 하더라도 모든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장님은 안 쉬어도 주방장은 쉬기 때문이다. 간단한 음료와 이미 만들어져 있는 타파스 정도만 먹을 수 있다. 적어도 내 경험에 의하면 시에스타 시간에 쉬지 않고 정상 영업을 한다면 맛집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아침식사, 청소, 빨래 등 모든 루틴을 마치면 오후 3~4시 사이가 된다. 점심 먹고 슈퍼도 가고 밥도 먹고 해야 하는데 문을 다 닫아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처음에는 내가 하고 싶은걸 하고 싶을 때 할 수 없는 것이 불편하고 답답했다. 빨리 끝내 놓아야 마음이 편한데. 한 번은 조급한 마음에 5시에 문을 여는 슈퍼에 20분이나 먼저 도착해서 그 앞에서 문 열기를 기다렸다가 1등으로 들어간 적도 있었다. 


한국에서 ‘잠’은 몰아 쓰는 시간이었다. 매일 에너지를 착즙 하는 시간들을 보내고 주말에 받는 보상 같은 것이었다. 그렇다 보니 잠을 나눠서 자는 시스템이 영 불편했다. 한번 일어났으면 해가 질 때까지 잠들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면 게으른 것이라고 교육받았고 훈련받았었다.


그래서 초면인 시에스타는 참 느리고, 게으르고, 답답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흐른 후에 시에스타는 지혜롭고, 합리적이고, 여유가 넘쳐 보였다. 우리와 비슷하게 그들도 아침 일찍 하루를 시작하고 밤늦게까지 하루를 길게 보내는 편이다. 너무 더워 활동이 어려워지는 시간을 버티기보다는 휴식을 취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렇게 시에스타는 타인의 문화에서 나의 일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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