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을 끄고 주방으로 향한다. 열린 주방 창문으로 윗집인지 앞집인지 모를 믹서기 가는 소리가 경쾌하다. 잠들어 있는 여행자들이 깨지 않게. 약속한 시간을 어기지 않도록 부지런히 아침을 준비해야 한다. 한국에서부터 고이 모셔온 앞치마를 질끈 동여맸다.
어설픈 김치찌개를 끓이고 며칠이나 흘렀을까? 제법 루틴이 몸에 익었다. 이제야 정신이 좀 들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결국 민박집을 하고 있구나. 긴장이 빠져나간 자리에 설렘이 자라났다. 앞치마 두른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잘 지내고 있다는 메시지를 대신해 엄마와 친구에게 보냈다.
‘고생이 많구나. 엄마가 보면 속상하시겠다. 이사진은 부모님께는 보내지 않는 것이 좋겠어’ 친구에게서 답장이 왔다. 타지에서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위해 밥을 하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는 것이 허드렛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멀쩡한 회사를 때려치우고 타지에서 육체노동을 하는 내가 안쓰러워 보였음이라 짐작해 본다.
하얀색 천에 큼지막한 빨간 꽃이 프린트된 촌스러운 디자인. 천 원짜리 지하철 노점 표 앞치마. 사실 앞치마는 엄마의 선물이었다. ‘딸, 예쁘네. 파이팅’ 엄마의 답장이 왔다.
친구보다 먼저 메시지를 보낸 엄마의 답장이 더 늦게 온 건. 정말 하고 싶은 말을 썼다 지우고 애써 포장하느라 그런 것이었을까? 앞치마를 두른 내가 안쓰러워 보였을까? 빨간 꽃이 마치 스페인의 태양처럼 화사해서 자랑삼아 보낸 사진인데. 친구의 반응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한 번은 부모님 또래 어르신들이 오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넌지시 나이와 결혼 유무를 물으셨다. 대답을 하니 짐짓 표정이 어두워지신다. 그리고는 부모님께 잘하라고 하셨다. 딸이 타지에서 고생하는 거 보면 속상하시겠다고. 부모님은 초대하지 말라고까지 하셨다. 초대를 하더라도 다른 호텔을 잡아 주라고 신신당부하셨다.
매일 아침 2개의 개수대를 꽉 채우는 그릇을 닦고 하수구 머리카락을 빼고 타액 묻은 변기를 빡빡 문지르고 외간 남자의 속옷도 척척 널어야 한다. 해보지 않은 일이라 낯설었지만 허드렛일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뭐 가끔 누런 팬티를 널 때는 살짝 현타가 오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는 세비야에 비가 오는 것만큼 드문 일이니까.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괜찮다. 매일 사무실에 앉아 마우스와 키보드를 휘두르고 클라이언트와 메일로 밀당을 하거나 굽신거리거나 파워포인트와 씨름을 하던 그때의 나보다 좋다.
더 이상 이명(耳鳴)에 시달리지 않는다. 대문만 열고 나가면 매력적인 스페인 중세 거리를 만날 수 있다. 매일 돌리는 세탁기 덕분에 하루도 빠짐없이 옥상에 올라 새파란 하늘을 볼 수 있고 하늘을 올려 보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 변화된 작은 것들에 귀 기울이고 감사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내가 괜찮으니 타인의 시선은 문제 될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