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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작가 Mar 23. 2020

서두르지 않기로 해요

카페 콘 레체 (Café con leche). 말 그대로는 커피와 우유. 별다방 용어로 카페라테. 하루라도 거르면 입안에 가시는 아니고 정신건강에 해로워진다. 어디를 가도 기본 빵은 하는 커피 맛 덕분에 오전 일과를 마치면 노천에서 마시는 카페 콘 레체 한잔이 노동자의 낙이 되어 가고 있었다. 


오늘은 아르마스 터미널에 있는 메르카도나에서 장을 보고 1층에 있는 신상 카페를 뚫어 보기로 했다. 주문을 하려고 카운터에 갔는데 직원분이 등지고 서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내가, 그러니까 손님이 왔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손을 번쩍 들고 ‘저기요~’를 외쳤다. 


직원은 설거지를 멈추고 잠깐 뒤돌아 나에게 말했다. ‘지금 나 일하고 있잖아. 조금만 기다려’ 하고는 돌아서서 하던 일을 계속 이어 나갔다. 아니 손님이 왔으면 주문부터 받고 하던 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당황스럽기도 하고 무시당한 것 같기도 하고 복잡한 마음으로 그 자리에 돌처럼 굳어 있었다. 


그때 옆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나와 같이 주문을 위해 기다리던 스페인 할머니 두 분이 나를 향해 무엇인가를 얘기하고 있었다. 스페인어라 정확히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정황상 눈 치상 내용은 이랬다. ‘그래 하고 있는 일이 있잖아. 우리도 기다리고 있어. 너도 참고 기다려야지’ 마치 어린아이를 혼내 듯, 달래 듯 그렇게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당혹스러움이 점차 부끄러움으로 변했다. ‘손님은 왕이다’식 태도가 몸에 밴 것이다. 지구 반대편에 와서도 제 버릇 버리지 못하는 내 모습을 마주했고 이곳에서는 통하지 않음을 깨우치는 순간이었다.


점원을 대하는 문화는 비단 스페인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내가 여행해 본) 유럽의 전반적인 문화이다. 손님이 부르면 만사 제쳐 두고 달려오지 않는다. 처음에는 이 문화가 불친절하다고 느꼈다. 점원이 무엇을 하고 있더라도 손님을 먼저 케어해주던 시스템이 익숙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랬다 가는 거절당하기 일수다. 하던 일을 마저 하고 기다리라는 제스처를 보낸다. 이런 모습들 때문일까? 간혹 식당에서 점원들이 무시한다는 인종차별적 감정을 호소하는데 오해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조급해하지 말고 한 숨만 기다려 볼 것을 추천한다.




한 번은 버스를 타려고 줄을 섰는데 당최 줄이 줄어들지 않는 것이다. 정체의 원인이 궁금해 미간을 구기며 까치발을 들고 운전석 상황을 살폈다. 이런 일이 종종 발생하는데, 바로 동전 때문이다. 유로의 경우 화폐단위가 커서 동전이 많이 생기고 그만큼 쓸 일도 많다. 


버스의 경우 기사에게 직접 돈을 내고 타는 경우가 많아 잔돈을 거슬러 주거나 동전을 골라내야 할 때 정체 구간이 발생한다. 하지만 아무도 재촉하거나 서두르는 기색이 없다. 


동전 지옥은 마트도 예외 없다. 한 번은 앞에 할머니가 계산대에 가지고 있는 모든 동전을 흩뿌려 놓았다. 촤~~~ 찰랑한 소리와 함께 공기 알처럼 동전이 뿌려진다. 캐셔가 첨예한 검지로 쏙쏙 필요한 것만 골라 갔고 그렇게 선택받지 못한 동전은 할머니가 한 땀 함 땀 집어 들어 동전지갑으로 다시 들어간 후에야 계산이 완료되었다. 아니 저기서 저걸 쏟으면 어쩌자는 건지. 동전이 쏟아지던 순간 나는 암흑을 보았지만, 늘 그렇듯이 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불편해하지 않았다.


다행히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급증은 점차 치료되어 갔다. 줄이 줄어드는 속도에 무뎌졌고 계산대에 흩뿌려지는 동전이 더 이상 놀랍지 않았으며 나 또한 동전을 손바닥에 쏟아 캐셔에게 들이밀 만큼 대범해졌다. 식당에서도 카페에서도 더 이상 점원을 보채지 않게 되었다. 느리게 걸을수록 그들의 일상에 더 빨리 물들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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