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언제부터 인가 ‘살아보기’라는 여행의 행태가 유행처럼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서핑을 하고 요가를 하고 나만의 단골 집을 만들고 이웃을 만들며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보기를 실현하는 중이다.
한 때 나에게 여행은 새로운 문화의 경험이라던가 갇혀 있던 사고의 틀을 깨거나 운명적 만남이 기다리고 있는 판타지 영역이었다. 쉼 없이 떠나고 돌아오기를 반복해 보니. 여행은 인생을 드라마틱하게 바꿔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창한 바람을 걷어내고 여행을 들여다보니 그저 자유롭고 싶어 떠났었다.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사람들의 판단 질로부터. 뚱뚱한 내가 민소매를 입어도 흘깃거리는 시선이 없는 평화로움. ‘무슨 일 하니?’, ‘결혼은?’ 조건을 탐색하는 질문이 아닌 ‘여행은 어때?'라고 기분에 귀 기울이는 질문을 받는 설렘. 오로지 소비 그리고 소비만 있는 (환전한 돈 안에서) 펑펑 써 재끼는 환희. 자유에서 파생되는 다채로운 감정들을 탐닉하는 시간 '여행'.
그렇게 여행력을 꾸준히 적립하면 할수록 더 길게 더 오래 머물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렸다. 여행지에서 생일 보내기, 새해맞이하기, 블로그에도 없고 영어 메뉴도 없는 동네 맛집 찾아보기, ‘늘 먹던 걸로 줄까’라고 묻는 단골 카페 만들기… 소망 리스트가 점점 쌓여갔다.
여행지에서 누리던 ‘자유’에 ‘여유’를 더하고 싶은 바람이 오래 머물기를 ‘살아보기’를 욕망하게 한다.
꿈만 꾸던 ‘여행자 공간’을 생각지도 못한 스페인 세비야에서 하게 되었다. 바라던 장기체류가 시작된 것이다. 1년 동안 ‘살아보기’를 시전 하면서 느끼고 경험했던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담아보았다. 가끔은 꿈만 같았고 때때로 처절했던 그 시간들이 기록. 일상에서 일상으로의 여행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