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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작가 Mar 10. 2020

여행자 공간을 꿈꾸다

“와 찾았다!’

26살, 난생처음 배낭여행을 떠났다. 대망의 첫 도시는 방콕. 카오산 로드를 지나 람부뜨리 골목 끝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를 발견하자마자 기쁨의 탄성이 터졌다. 


“안녕하세요~”

“응 왔어~ 예약했어? 여권 줘 봐 봐”

한국을 떠난 지 24시간도 안되었지만 한국어로 맞아주는 게스트하우스가 반가웠다. 처음 보는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건네는 사장님의 반말이 정겹게 느껴졌다. 


2층 침대 5개가 빼곡히 채워진 도미토리에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먼저 숙박을 하고 있던 여행자의 인사가 나를 맞아주었다. 배정받은 침대에 자리를 잡고 짐을 푸는 동안 어디서 왔는지, 언제 왔는지, 며칠이나 여행을 하는지, 어디를 갈 건지, 끊임없이 대화가 이어진다. 우리는 불과 5분 전에 처음 만난 사이지만 말이다.


3,000원쯤 하는 내 침대는 중간이 움푹 패어 있다. 이불은 말레이시아 항공과 아시아나 항공 담요가 대신한다. (그 시절에는 항공사 담요를 많이 들고 나와 여행이 끝나면 게스트하우스에 두고 갔고 그걸 이불로 대신 쓰곤 했다) 매트가 꺼진 관계로 몸을 쭉 피고 자면 허리가 아프다. 그래서 움푹 파인 곳에 웅크린 채로 쏙 들어가서 잠을 청한다. 마치 자궁 속 태아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10개의 침대, 2개의 샤워실, 누군가 코를 골면 서라운드 입체 음향을 경험할 수 있고 추워도 누군가는 더울 수 있기에 밤새 에어컨을 끌 수 없다. 얇은 담요 안에 몸을 구겨 넣는 것만이 유일한 도피처이다. 지금은 불편할 수 있는 노후되고 미약한 시설이지만 그때는 그것이 낭만이고 여행의 참 맛이었다. (그 이후로 사장님 내외 분은 계속 보수 공사를 통해 시설을 업그레이드하셨다)




핸드폰을 정지시켜 놓고 종이지도와 책에 의지하던 그 시절, 게스트하우스는 여행정보를 얻고 친구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같은 방을 쓰는 여행자의 추천으로 예정에 없던 여행지를 갔었는데 그곳이 지금까지도 태국 여행의 백미로 손꼽히는 빠이(Pai)다. 아마 여행 선배들의 추천이 없었다면 난 결코 가보지 못했을 곳이다. 


첫 배낭여행 때 태국에서 육로로 캄보디아 국경을 건너다 사기를 당했다. 캄보디아를 거쳐 베트남 종단 후 여행을 마칠 예정이었는데 그 여비를 모두 사기꾼에게 갖다 바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고 만 것이다. 그런데 그때 무슨 생각인지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방콕 게스트하우스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일 만에 컴백한 나를 사장님이 반가운 표정으로 맞이해 주셨다. 사정을 듣고 잘 왔다고 특유의 쿨 함을 잊지 않으시며 등을 다독여주셨다. 사기당한 내가 안쓰러웠는지 마주 칠 때면 항상 밥은 먹었는지 술은 마셨는지 마시고 들어온 술이 부족하진 않은지 챙겨 주셨다. 전화위복이 이런 걸까? 돌아간 게스트 하우스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 방콕의 코창이라는 섬을 함께 가게 되었고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에메랄드 빛 바다를 만날 수 있었다.




첫 배낭여행에서 나는 어이없지만 큰 상처를 받았다. 두렵고 겁나서 위축되어있던 나를 다시 여행으로 녹아들게 해 주었던 곳이 ‘게스트 하우스였다’ 아니 ‘게스트 하우스에서 만난 사람들’이었다. 현재 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 만으로 친구가 되었다. 가는 곳이 같다면 기꺼이 동행자가 되었고 마음이 맞으면 주저 없이 계획에 없던 새로운 곳으로 함께 떠났다. 여행자 냄새가 진동하던, 사람 냄새가 코를 찌르던 게스트하우스의 행복했던 시간을 잊을 수 없었고 그때의 기억이 끊임없이 나를 여행하게 만들었다. 


모여 앉은 테이블의 국적과 상관없이 태국의 빠이, 라오스 루앙프라방, 포르투갈의 파로, 모로코의 카사블랑카, 지구 그 어느 곳이 되었든 생각나는 대로, 떠오르는 대로 마구 말할 수 있는 곳. 누군가의 경험에 나의 경험을 더하고 누군가의 에피소드에 무한 공감을 하는.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부러움을 거침없이 표현하며 언젠가는 꼭 가보겠다는 결의로 채워지는. 나도 언젠가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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