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보다는 도망에 가까운
“지금 퇴근하는 거예요?”
“네… 뭐…”
“이렇게 늦게까지 일하면 월급 많이 받겠네요”
“그럼 얼마나 좋을까요”
새벽 2시, 오늘도 어김없이 퇴근 시간은 자정을 넘겼다. 대부분 술 취한 취객을 태우는 시간에 맨 정신인 나를 반기는 눈치다. 기사님과 짧은 대화를 마치고 고개를 돌려 창밖을 응시한다. 텅 빈 눈동자는 빠르게 지나가는 가로등 불빛을 쫓는다.
유난히 힘든 회사였다. 들어간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3년은 족히 다닌 것 같은 피로감을 느꼈다. 업무는 나름 재미있었지만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회사였다. 가장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직원의 시간을 회사의 소유물쯤으로 생각하는 임원진의 태도였다.
밤 11시를 넘기지 않으면 일찍 퇴근하는 직원으로 낙인찍혔다. 새벽에 퇴근을 하면 일을 제법 열심히 하고 있는 직원이 될 수 있었다. 주말 근무는 수고가 아니라 의무라고 생각했다. 업무 특성상 야근이 많고 종종 철야도 필요했지만(지금은 이 ‘업무 특성상’이라는 말을 혐오한다) 이번 회사처럼 상사에게 보여 주기식 야근이 자행되고 정시 퇴근하는 직원에게 눈치를 주거나 5시쯤 의도적으로 일을 주는 행태를 보이는 곳은 처음이었다.
창밖의 가로등 불빛이 번지기 시작했다. 나는 울고 있었다. 예고 없이 터져버린 눈물은 집으로 가는 40분 내내 멈추지 않았다.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회사에 휘둘리는 내가 싫었다. (그동안 바른말은 한 차장님들은 퇴사로 내몰렸고 사내 메신저를 뒤져서 회사 험담을 한 직원들을 색출해 해고를 한 경우도 있었다) 무엇을 위해 참고 버텨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부러지지 않고 버틴다면 나는 어떤 모습일까? 모든 업무는 아래 직원에게 미루고 책임도 전가하는 차장님이 떠올랐다. 여기는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들어간 지 1년도 안되어 회사를 그만둔다는 것은 참 끈기 없어 보이는 일이다. 경력에 적을 때도 좋을 것이 없었다.
그동안 켜켜이 쌓여가는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오로지 ‘소비’였다. 즉각적으로 보상을 해주는 것은 ‘소비 ’밖에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소비’ 앞에 대범한 모습을 보이면 내가 쿨 한 사람 같았고 ‘소비’로 나를 화려하게 치장하면 드라마에 나오는 커리우먼처럼 보일 것 같았다.
속 빈 개살구가 되어가는 자신을 숨길 수 있다고 믿었다. 가식과 과장으로 ‘나’를 잃어갔고 ‘카드 빚’은 점점 쌓여 갔다. 한마디로 돈이 없었다. 받을 퇴직금도 없고 잔고도 없는 나는 무작정 퇴사 카드를 꺼내 들 수 없었다. 돈을 벌면서 지금의 생활을 청산할 수 있는 대안이 간절했다.
‘진짜로 네가 원하는 게 뭐야?’ 스스로에게 수없이 묻고 또 물었다. 그러다 묻어 두었던 ‘여행자 공간’이라는 꿈이 떠올랐다. 돈을 벌면서 해외에서 장기 체류할 수 있는 묘수가 떠오른 것이다.
주변에서는 여행을 좋아하는 나와 딱 맞는다며 격려를 해주었고 누군가는 멋진 도전이라며 박수를 쳐주었다. 누군가는 헬조선을 탈출하는 나를 부러워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돌진하는 나를 보며 용감하다 치켜세워주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 무엇도 아닌 도망이라는 것을. 지금 현실만 벗어날 수 있다면 뭐든 상관없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기에 떠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