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잘 마시지 못한다.
잘 마시게 생겨서(그렇게 생긴 게 뭔지 모르겠지만 그렇단다) 왜 그 모양이냐 타박이다.
마셔보니 알쓰더라. 지켜보니 아빠를 닮았더라. 안타깝게도 술에 관해선 열성 유전자를 물려받고 만 것이다.
술을 마시면 온 몸이 붉게 물든다.
아주 소량이라 할지라도 어김없다. 한잔, 두 잔, 알코올을 위로 계속 보내면 경보를 한 듯 숨이 가빠지고 착륙하는 비행기에 탄 것처럼 귀가 먹먹해지고 결국 흰자위까지 빨강이 된다, 몹시 추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너무 괴롭다. 몸만 취하고 정신은 멀쩡하여 몸이 느끼는 고통이 선명하다. 고통이 사그라들 때쯤 졸음이 쏟아진다.
즐겁자고 나간 술자리는, 마음에 드는 이성이 있어 잘해볼까 하고 나간 그 자리들은 불타는 고구마가 되어 빨간 눈알로 레이저를 쏘다 술집 한 켠에서 쓸쓸히 눈을 감으며 엔딩 크레딧을 올리곤 했다. 그렇게 마시고 자고, 마시고 토하고, 술과 친해지려 나름 애썼지만 결국 실패했다.
시간이 지나 늙고 늙어 40살이 된 지금은 적당히 거절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기도 했고 예전만큼 부어라 마셔라 할 친구가 없기도 하고 술을 먹지 않아도 속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어서 가끔 기분만 내는 정도로 알코올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가끔 술쟁이들을 만날 때 억울함이 목구멍에 맺히곤 한다. 발단은 이렇다. 술을 잘 못하니 안 마시겠다는 의사를 표현하거나, 최대한 예의를 차려 한잔만 받고 다음 잔을 살포시 거절하면 약속이나 한 듯이 ‘마시면 느는데 노오력을 안 해봐서 그렇다’는 말이 미세먼지처럼 잊지도 않고 날아온다. 옘병.
마시면 느는 게 술이란다. 해봤다고, 그놈의 노력해봤다고! 무릎에 힘이 풀려 4발로 택시도 타봤고 위액이 나올 때까지 토해봤다. 소주가 너무 독해 그런 걸까? 콜라, 사이다, 포카리스웨트, 요구르트, 수박, 파인애플… 오만 잡것이랑 섞어 먹어도 봤고 소주가 문제인가 싶어 맥주, 막걸리, 위스키, 보드카…. 주종을 바꿔봐도 매한가지였다. 억울해. 억울해!
술 잘 먹는 게 유세인가! 알쓰가 죄인인가! 어쩌다 세상이 이렇게 되었는가! 그대는 잘 마시니까 술 먹고 나는 많이 먹으니까 안주를 먹는 그런 다름을 인정하는 아름다운 주류사회는 만들 수 없는 건가.
술이 거나하게 올랐을 때의 향락을 알쓰인 나는 알지 못하는 것처럼 술쟁이 니 녀석들도 알코올에 정복당한 몸뚱아리의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는 기분을 모르지 않나. 실은 나도 소주 두 병쯤 우습게 마시는 반주하는 예쁜 언니가 되고 싶었다.
잘 먹게 생겨서 못 먹는다는 말은 뭐 괜찮아 넘어갈 수 있다. 술잔 부딪히고 비우는 리듬을 같이 타지 못하는 섭섭한 마음은 이해할 수 있고 가끔 미안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대뜸 노력을 안 해서 그렇다는 건, 과거의 시간들을 알지도 못하면서 순 자기 입장에서 판단하고 상대방을 무노력쟁이, 불성실자로 만드는 무례함만은 참을 수가 없다.
술을 못해서 썸을 못 타나, 술을 멀리해서 남자랑 사고 한번 없나, 인생의 찬바람을 맞고 있는 줄도 모르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쉽게 단정 짓지 말아 달라고. 제발.
그리고 뭐 꼭 노력을 해야 하나. 살면서 애써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은데, 인생에서 모든 것을 노력하면서 살 수 없기에 더이상 술은 노력하지 않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