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박 5일 도쿄 문구 여행 계획 세우기
작년에 숭님의 <도쿄 여행 코스> 추천 영상을 보고, '아, 도쿄에 꼭 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마지막 도쿄 방문은 2015년이었다. 그때는 친구와 처음으로 단둘이 자유 여행을 갔던, 기념비적인 여행이었다. 그 후로 취향도 변하고 경험도 쌓여 이번 여행이 어떻게 달라질지 기대됐다.
이번에는 '문구점 투어'라는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혼자 여행하기로 결심했다. 문구점은 은근히 취향을 타는 공간이기 때문에, 자칫 취향이 안 맞는 사람과 함께 했다간 덩그러니 남겨질 수 있어서 최대한 효율을 추구하고자 오랜만에 '혼자'여행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하나씩 내 취향인 곳들을 발견할 때마다 구글 지도에 저장했다.
'문구'에 대한 애정은 예술고등학교에 다닐 때 가장 높았다. 연필을 깎고 물감을 사용하는 일이 일상이었다. 처음 보거나 좋다고 하는 게 있으면 바로 친구들과 버스를 타고 화방에 가서 재료를 둘러보다 금방 한두 시간이 지났다. 화방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를 정말 좋아했다. 대학에 진학하고 디지털 도구를 주로 사용하면서 점점 문구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들었다. 1학년 때 있었던 드로잉 실기 수업 이후로 손에 무언가가 묻을 일이 없었다.
디자이너가 되어서는 스케치북 대신 아이패드를 들고, 애플펜슬로 스케치를 했다. 아끼던 프리즈마 색연필은 화장대 제일 낮은 서랍 칸 안에서 몇 년째 방치되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아날로그가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하루종일 디지털에 갇혀 지내다가 손으로 하는 무언가를 하게 되면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탈덕은 없고 휴덕만 있다고 했던가. 그렇게 잠들어있던 '문구'에 대한 애정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돈이 없는 고등학생이 아닌 돈을 버는 직장인이 되었다. 그때 마냥 구경하고 즐기던 것과는 전혀 다른, 내 취향이 묻어나는 제품 위주로 찾기 시작했다.
도쿄의 문구점을 찾아보다가, 이건 혼자 즐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50일 정도 유럽여행을 다녀와본 결과, 이렇게 신나는 일을 같이 공유해야 할 사람이 없으면 정말 아쉬울 것 같았다. 그러다 떠오른 고등학교 친구들.
1. 예고에서 만난 친구들이다.
'문구 애정도' 리즈 시절을 함께한 친구들. 다들 문구점을 엄청 좋아하고, 특히 화방을 정말 좋아한다. 물감을 보면 환장하는 아이들. 취향이 정말 잘 맞다. 그래서 그런지 보통 누군가 뭘 하자하면 일단 뭔지 읽지도 보지도 않고 '너무 좋아~(뭔지 모르겠지만 좋겠지~)'라고 하는 친구들이다. 이 의견을 제시하기 너무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준다.
2. 나 혼자 J다.
내 맘대로 할 수 있다. (ㅋㅋ) 모두 P성향이어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계획이 있어도 있는지 잘 모를 때가 있고 계획이 틀어져도 '틀어진 대로~ 오히려 좋아~' 하는 친구들이다. 그래서 이리저리 계획을 짜서 보내면 오히려 고맙게 생각하고 좋아해 준다. 이 점이 제일 좋은 건, 친구들은 대부분 예상하지 못한 일들을 마주하게 돼서 감동을 배로 받아서 그런지 리액션이 좋다. 그럴 때면 계획 세운 사람 뿌듯해지는 거 아시죠.
3. 여행을 여러 번 같이 해봤다.
어떻게 보면 제일 중요한 점. 해외여행은 안 가봤지만, 국내 여행을 여기저기 다녀본 결과 항상 즐겁고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꼭 같이 비행기를 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아쉽게도 기회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이번에 꼭 같이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함께 놀러 가자고 꼬시는 최고의 방법은, <기대감 심어주기>다.
이 여행에서
그래서 2월부터 천천히 친구들의 도파민을 자극했고, 새로운 여행 방식을 제안했다.
1. 알아서, 가능한 시간에 각자 오기
2. 대표 일정은 있되, 편하게 헤쳐 모이기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여러 여행을 다녀봤지만, 이렇게 공통 숙소와 일정만 두고 각자 와서 각자 여행하는 건 처음이었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원래 혼자 가려했던 여행이었고 - 이게 납득이 되는 친구들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결과,
모두 미끼를 물었다!
일단 노션을 켜고, 구글 지도에 저장해 둔 곳들의 정보를 나열했다. 다년간 여행을 다녀본 결과, 미술관이나 문구점, 식당, 카페는 대부분 휴무일이 있어서 그 요일을 피해서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정리하다 보면, 어떻게 하면 잘 묶어서 최대한 단시간에 효율적으로 많은 곳을 구경할 수 있을지 지역별, 시간별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추가로,
우리가 가는 5/1~5/5은 일본의 <골든위크>였다.
일본 골든위크란,
'4월 말부터 5월 초 까지 공휴일이 모여있는 일주일'이다. 영업시간이 다를 수 있다.
5/3(금) 헌법 현충일
5/4(토) 녹색의 날
5/5(일) 어린이날
가기 전에는 '영업을 안 하려나...' 걱정했지만, 다녀와서 알아보니 그때는 일본인들도 휴가라서 오히려 '많은 인파'를 걱정해야 했던 것이었다.
사람이 좀 많다고 생각되는 곳이 있었지만, 번화가라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나.. 지나고 보니 골든위크라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정리하다 보면, 가기 편한 곳 / 가기 애매한 곳 / 애매해도 꼭 가야 할 곳으로 나뉜다.
1. 가기 편한 곳
숙소와 가깝거나, 서로 묶여있는 곳들이다. 예를 들어, <닌텐도샵-로프트-하이타이드-키디랜드-모마디자인스토어-시보네-틴틴샵>은 <시부야~하라주쿠~오모테산도>로 비슷한 위치에 있어서 걸으면서 쭉 돌기에 좋다.
2. 가기 애매한 곳
몇 없는데 거리가 먼 곳들이다. 예를 들어, <36사브로, 페이퍼메세지>는 카키모리에 위치해 있어서, 4박 5일 일정 안에 넣기에는 애매한 곳들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가보고 싶은 곳.
3. 그러나, 애매해도 꼭 가야 할 곳
위처럼 애매하지만, 그래도 꼭 가고 싶은 곳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은 와세다역에 있어서 혼자 위 쪽에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하루키의 짱팬이라서 가기보다는, 내부가 멋지고 도쿄 대학의 도서관을 구경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해외에 와서 대학교 캠퍼스를 구경하는 것도 참 재미있는 경험이라는 걸 지난 여행에서 알았다.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누면, 각각 어느 날에 어떤 일정을 넣으면 좋을지 보인다.
첫날은 오후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고 디즈니랜드에 가는 일정이고, 마지막 날은 아침에 일어나서 비행기를 타고 귀국하는 일정이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통째로 주어진 날은 3일이었다.
그렇게 여행 이틀 전, 공통 일정을 세우고 친구들에게 공유했다.
친구들이 맛집을 찾아줘서 사이사이에 맛있는 음식점들로 구성할 수 있었다. 우당탕탕처럼 보이지만 완벽했던 여행계획.
과거에는 무계획으로 여행을 다니며, '나는 일정 세우는 것과 맞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여러 차례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여행을 경험하며, 큰 틀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걸 선호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두리 방식이라 해야 하나..?
여행을 하다 보면 일정대로 안 될 때가 많다. 그래서 요즘은 이렇게 <휴무일, 영업시간, 위치>는 정확하게 확인해서 시간별로 써놓고 참고만 하고, 여행지에 도착해서는 자유롭게 시간 흐르는 대로 여행하는 것이 오히려 여행을 더 풍부하게 만드는 때가 많았다.
그렇다고 해서 계획이 전혀 없이 가면 돌아왔을 때 아쉬운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틀이 있는 건 중요하다. 어떻게 보면 스스로를 양육하는 방식을 깨닫는 중인 것 같다.
ㅠㅠ 덕분에 많은 줄을 당당히 뚫고 들어가서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자세한 건 다음에..
밴드는 가족 밴드만 (만들어 두고 안 쓰는..) 것이었는데, 이번에 친구가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 밴드 만들어서 사진, 동영상을 공유하자고 했다. 여행 기간 동안에는 카카오톡에서 저화질로 사진 공유하고, 네이버 밴드에 원본으로 공유했다. 너무나도 만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