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의 호수에 깃든 햇살
“(훈) 엄마, 찬이가 자꾸 ‘달콤 박스’에 가자고 해요.”
“찬이 좀 바꿔봐.”
“(찬) ……”
“찬아, 집에 가면 기다리던 ‘나무 크롱’이 와 있을 거야. 그러니까 빨리 집에 가. ‘달콤 박스’는 나중에 가자.”
“(찬) 네.”
“(멀리서 들리는 훈의 목소리) 찬아, ‘나무 크롱’이 더 중요해.”
하루는 일을 마치고 마무리를 하던 중 훈의 전화가 왔다. 엄마를 대신해 동생을 돌봄 센터에서 데리고 나와 집에 가던 중 무인 군것질거리 가게 앞에서 난관에 부딪힌 것이다.
아주 어릴 적부터 엄마와 치료실이나 병원에 다니며 편의점에 들러 원하는 간식을 사 먹던 찬은 어느 날 손가락으로 멀리 보이는 편의점을 가리켰다. 나는 “편의점!”이라고 장소의 명칭을 알려주었다. 발음이 어려운 단어라 귀 가까이서 두세 번 또박또박 반복해서 들려주었다. 찬이 따라 말했다. 그 후 찬의 편의점 사랑은 나날이 깊어졌다. 해외여행을 다녀와도 가서 뭐가 제일 재밌었냐고 물어보면 ‘편의점!’이라고 답했다. 편의점 외 나머지 풍경은 배경일뿐! 나에게는 편의점이 배경이지만 누군가에게 전경일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아마 무인 군것질거리 가게도 찬의 눈에는 편의점 범주에 속하는 공간으로 보였으리라. 호랑이, 사자, 표범, 고양이 모두 고양잇과 동물이듯, 찬에게는 마트, 슈퍼마켓, 무인 군것질거리 가게, 다이소, 편의점이 모두 편의점과 장소이다. 무작정 가게에 들어가자고 조르는 동생을 잘 타일러 집으로 인도했을 훈이 새삼 대견했다.
훈이 6살 무렵, 훈의 호수처럼 빛나는 눈동자를 바라보다 ‘이렇게 예쁜 눈을 가진 아이가 누구하고 대화도 못 하고 살면 어쩌지.’ 하는 막연한 불안이 스친 순간이 있었다. 마치 맑은 하늘에 불쑥 다가오는 먹구름 같았다. 어린이집 등‧하원길에 엄마와 아이가 나누는 대화만 들어도, 카톡방에서 오늘 아이가 집에 와서 무슨 얘기를 했고 무슨 놀이를 하더라는, 다른 이가 남긴 글자만 봐도 그 먹구름은 검게 드리웠다. 빛나는 호수 위를 덮는 먹구름은 호수의 색마저 바래게 했다. 햇빛에 푸르게 반짝거리다가도 이내 회색빛 눈물이 고인 웅덩이처럼 보였다.
보석 같은 아이의 앞날에 외로움이라는 불청객이 떡 하니 끼어드는 것이 몸서리치게 싫었다. 감기만 걸려도 주변에서 ‘약 먹었냐’, ‘병원은 다녀왔냐’고 묻건만 이해받지 못하는 아픔을 갖고 살아갈 인생이 그려지는 것이 화가 났다. 내가 살아온 세상은 그런 이해를 볼 수 있는 세상이 아니었다. 신의 뻔뻔함에 ‘이 빌어먹을 ○ 같은 양반!’ 소리가 늘 목구멍까지 차 있었고, 이전까지 어떤 경우도 신의 섭리를 믿으며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여겼던 나의 상태는, 전혀 그런 상태가 아닌 것이 확인되었다.
훈의 일상생활과 의사소통 능력은 많이 발전했다. 내가 일을 다시 시작하고 여러 가지 미래를 꿈꿀 수 있었던 건 이런 훈이 동생을 살뜰히 챙기는 모습을 보면서부터이다. 훈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엄마와 수없이 다녔던 치료실에 혼자 버스를 타고 다녀왔다. 이제 대부분 장소를 혼자 다닐 수 있다. 매끄럽고 논리 정연한 대화는 어려워해도 일상적인 대화가 가능하다. 만으로 세 살 차인 동생에게 형과 삼촌 사이 그 어디쯤 같은 형님 노릇을 하고 있다. 훈은 태어나서부터 지금껏 일관되게 우량아였고, 동생은 작은 체구를 꽤 오래 유지했었기에 겉으로 봐선 5~6살 터울이 나 보이는 형제였다. 그래서인지 업어달라고 조르는 동생을 업고 놀기도 했고, 엄마 잔소리를 그대로 모방해 “대충 씻지 말고!”라고 말하며 동생의 손 씻기를 도와주기도 했다. 남들이 보기엔 그저 그런 평범한 일상일지 몰라도 내겐 호수 위 쨍한 햇살만큼 눈이 부시게 감사한 일상이다.
첫째가 느리거나 장애가 있는 경우 둘째를 가질지 고민하는 부모들이 많다. 한 아이를 돌보기에도 벅차다고 느끼기 때문일 거다. 난 그런 고민을 미처 해보지도 못했지만, 훈이 동생을 너무 사랑스럽게 여기고 아끼는 모습을 보면 아무것도 모르고 낳길 잘한 것 같다. 먹을 것 하나라도 동생 몫을 챙겨두는 형과 달리 형이 외출하면 혼자 독차지하고 싶은 마음에 부리나케 과자를 꺼내오는 찬을 보면 착한 형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더니….
한편으로 늘 폭탄을 안고 사는 기분이기는 하다. 가족 안에서는 신뢰와 사랑을 바탕으로 잘 성장하고 있지만 생활 반경이 넓어지면 오해와 마찰, 갈등이 빚어진다. 아이와 세상은 서로 거칠게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타닥타닥 소리를 내곤 한다. 폭탄이 터질 때마다 마음 졸이며 온갖 대처 방법을 고민하느라 머리를 쥐어짜던 시절도 지나고 이제는 내 아이와 사회의 발달을 함께 촉진해야 한다고 느끼게 됐다. 박수는 양손을 마주쳐야 소리가 나기 때문이다.
평범한 삶은 끝났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내가 생각했던 ‘평범’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나는 지금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평범한 일상을 누리고 있다. 누군가에겐 이 일상 또한 기적이고 꿈이라는 걸 안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비교하기보다는 지금 빛나는 나의 호수에 눈을 맞추고 발을 담그며 언젠가 다가올 먹구름도 기꺼이 맞이하려 한다. 먹구름이 지나가면 다시 쨍한 햇살이 반짝거리며 쏟아져 내릴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