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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산 Sep 06. 2024

수상한 그들의 ‘이유’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

예전에 인터넷 검색 중 우연히 한 어머니의 글을 보게 되었다. 유치원에서 발달장애가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아이가 자신의 딸을 계속 때리는데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고민이었다. 강도는 약하나 때리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을 계속해서 딸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했다. CCTV를 확인했지만 때리는 이유도 모르겠고 유치원 측에서는 딸의 예민한 기질을 문제 삼는다는 것이었다. 그 글의 댓글에는 진심 어린 조언도 있었지만, 격앙된 용어로 뻔한 ‘가해’와 ‘피해’의 구도를 만드는 이들도 있었다. 답답해서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내용이었다. 그 어머니에게 개인적으로 메일을 보내 조금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어머니는 유치원 원장과 상담을 하기로 했는데 ‘예민한 친구가 유치원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겠다.’라는 원장의 말에 마음이 닫혀 만나지 않았고, 결국 유치원을 옮기는 쪽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특수 교사도 없고, 마치 자신의 아이가 원인 제공자인 양 취급하는 분위기에서 혼자 해결 방법을 찾는 것이 너무 어려웠단다. 사정을 들으며 몹시 안타깝고, 한편으로 대한민국 이곳저곳에서 수없이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으며 일어날 예정인 일인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었다.

    

상대방의 입장과 나의 입장을 함께 헤아리기.

모든 인간관계에서 적용되는 이 원칙은 장애와 비장애, 혹은 소수와 다수 사이에서 더 격렬하게 적용되어야만 한다. 어느 한쪽의 편에서만 보거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할 때 관계는 나빠지기 마련이다. 특히 소수의 입장은 다수에게 익숙하지 않아 잘 모르기 때문에, 서로 존중하고 함께 살아가려면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유치원에서 ‘때리는 것처럼 보이는’ 한 아이의 행동에 다른 아이는 ‘때리는 것’이라고 받아들였다. 때리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의 이유가 무엇인지, 그 행동이 특히 잘 나타나는 환경이 있는지 등 행동 뒤에 감춰진 맥락을 찾아야 한다. 단순히 ‘하지 마’가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허용 가능한 대체 행동을 아이의 발달 수준을 고려해 가르쳐야 한다. 매우 위험한 행동에 대해서는 우선 제지를 해야 하겠지만, 행동 이면에 대한 분석과 세심한 접근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 자신이 계속 맞고 있다고 생각하는 아이에게도 충분한 공감과 해결 방법에 대한 의논이 필요하다.

두 아이 모두를 보호하고 성장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 역할을 기관에서 하지 않으면 두 아이 모두 피해자가 된다. 문제 행동을 하는 아이는 성장의 기회를 놓쳐버리게 되고, 오해를 받은 채로 낙인이 찍힌다. 상대 아이의 문제 행동을 겪는 아이에게는 스트레스와 상처가 될 수 있다. 담당 선생님이 어려우면 기관 대표가 나서야 하고 그도 어려우면 전문 기관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이 잘 연계되어있어야 한다. 이 과정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기에 통합 교육 본래의 취지가 퇴색되기 일쑤다.


아이들을 키우며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가 ‘이상하다.’였다. 말없이 웃기만 하며 자신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모습에, 또 말없이 옆에서 자기 핸드폰을 빤히 쳐다보는 모습에 언어가 발달한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자신과 상호작용 방법이 다르다고 느꼈을 것이고, 아이답게 솔직히 표현했다. 자기 아이가 만든 나무 블록 탑을 갑자기 와서 무너뜨리는 모습에 ‘형이 좀 이상한가 보다.’라고 나직이 읊조리는 어른도 있었다. 무심코 내뱉은 말일 수도 있고 들릴 거라고 생각 못 했을 수도 있다.

발달 지연, 발달장애 아이들은 말로 잘 표현하지 못하고, 상대의 입장을 미처 헤아리지 못하기도 해 몸이 앞서는 경우가 많다. 그게 사고로 이어지기도 하므로 자신이나 타인에게 미칠 위험이 예측되면 대비를 해야 한다. 그렇지만 겉으로 보이는 소위 ‘문제 행동’만 보고 단순히 ‘이상한 아이’ 내지는 ‘이상한 사람’으로 치부해버리지는 않았으면 한다.

그 행동이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알아야 하고, 거기에 맞추어 그와 소통해야 한다. 함께 놀고 싶어서 하는 행동이라는 것을 알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함께하면 된다. 그대로 둘 수도 있고, 게임에 참여하도록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자녀가 만든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모습에 위험하다고 느끼거나 속이 상한다면 “얘, 무너뜨리지 마.”라고 얘기하면 된다. 물론 그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쉽게 그 행동을 멈추지 못할 때는 보호자의 개입이 필요할 것이다.

도끼눈을 뜨고 독특한 행동을 하는 아이를 지켜보다가 참을 만큼 참았다는 태도로 아이가 의도적인 범죄라도 저지른 양 무례하게 소리치는 사람이 간혹 있다. 그 아이의 보호자는 특별히 안전에 위협이 되는 행동이 아니라 유심히 지켜보지 않았을 수도 있고,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느라 아이를 잊고 있었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반드시 부모가 먼저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참지 말고 먼저 얘기해도 되건만….

   

찬과 함께 지하철을 탄 적이 있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지하철 좌석에 앉은 사람들을 신기한 듯 바라보며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었다. 발달장애인으로 보였다. 어느덧 찬 앞에 서서 찬을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나는 ‘이렇게 지하철을 타고 사람 구경하는 게 이 사람 놀이인가?’라고 생각하며 그런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엄마도 가만히 있는데 내 옆에 앉은 여자가 불안한 눈빛으로 팔을 뻗어 아이 앞을 가로막았다. 아마 정신이 온전치 않아 보이는 사람이 아이한테 해코지라도 할까 불안했던 것 같다. 이상해 보인다고 무조건 해코지하지는 않습니다만?

내가 차분할 수 있었던 근거는 첫째, 문제가 될만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었다면 아마 그의 가족이 혼자 다니도록 놔두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 둘째, 좌석에 앉거나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구경하듯 빤히 보기는 하나 해를 끼칠 만한 어떤 행동을 하고 있지는 않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녀의 넓은 모성애에 굳이 토를 달고 싶지는 않다. 그녀는 독특한 사람들에 대한 경험치가 없었고, 매스컴에서 간간이 접한 정신 질환 내지는 발달장애인 관련 사고만이 깊이 각인되어 있어 나와 같이 추리하기는 어려웠을지 모른다.


“안녕”, “안녕” 곧 사춘기로 접어들 두 남자아이가 건조한 인사를 주고받는다. 한 아이가 지나간 후 다른 아이의 아버지가 자신의 아이에게 묻는다.

“친구야?”

“어, 쟤 ○○반 애. 수업 시간에 이상한 말 중얼거리고.”

그 이후 아버지의 답변은 무엇이었을까? 그냥 “응. 그래?”정도로 답했을 수도 있겠다. 이렇게 답해주면 어떨까?

“그 애가 ○○반에 가는 건 네가 어려울 때 도움을 받는 것처럼 필요한 도움을 받기 위해서 가는 거야. ○○반에 간다고 해서 ○○반 애라고 말하면 안 돼. 너희 반 아이라고 해야지. 그런데 걔는 왜 수업 시간에 중얼거릴까? 네가 수업 시간에 지루하면 친구랑 장난칠 때가 있는 것처럼 혹시 걔도 심심한 거 아닐까? 넌 어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듣기 싫어?”

아이의 잘못된 용어 사용을 수정함과 더불어 놓치고 지나칠 수 있는 숨은 의미도 읽어주면 좋을 것 같다. 아이들은 아직 정서 표현이 미숙하기에 ‘이상하다.’라고밖에 말하지 못하지만,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서로의 입장을 어떻게 배려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도록 교육하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니까.

 

나의 모든 행동에 나름의 이유가 있고 맥락이 존재하듯이, 수상한 그들의 행동에도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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