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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산 Oct 07. 2024

밥이 아름다워질 수 있는 순간

'Want to', not 'have to'!

밥.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여성에게 이 한 글자는 애증이 뒤섞인 여러 감정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결혼 전에는 누구나 각자만의 환상이 있다. 완벽한 관계라고 추정되는 나의 짝꿍과 평생 서로 위하며 알콩달콩 사는 환상. 결혼 전후로 살림살이를 준비하며 한 가정이 탄생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물건이 필요한지 알고 새삼 놀랐다. 결혼은 관계의 환상이 아니었다. 긴 물건의 행렬처럼 구체적인 물성이 매일 뭉클뭉클하게 손에 와닿는 현실이었다. 강력한 물성에 내가 지배당하느냐, 지배하느냐를 놓고 팽팽한 밀고 당기기를 펼쳐야 하는 새로운 전장과도 같았다. 연애가 상대의 보이지 않는 마음과 밀고 당기기를 하는 것이라면, 결혼은 보이는 사물들과의 관계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았다.


기나긴 신경전의 최고봉에 ‘밥’이 있었다.

때가 되면 당연히 먹는 것. 잘 차려진 음식을 보는 즐거움. 맛을 음미하는 행복. 호기심으로 스스로 요리를 창조했을 때 느끼는 흐뭇함. 결혼 전까지 유지해 온 나와 밥 사이의 합리적 거리가 깨지며 어느덧 밥의 카테고리에 속하는 물성 전체가 부담스러워졌다. 밥은 일용할 양식이 아닌, 무언의 압박이 되었다. 요리 과정은 체력의 소모가 너무 크다. 적성에 맞지도 않고, 가족들이 맛있게 먹어주는 건 뿌듯했지만 내게 힐링이 되는 일은 아니었다. 아이들 육아와 교육 방향에 대한 고민으로 한참 머리가 아픈 시기에는 양가 어머니들과의 통화마저 압박의 연장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뭐는 빨리 먹어야 한다, 뭐는 어떻게 보관해야 한다, 반찬을 준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말들을 내 머리는 밀어내었다.

“밥 먹었어?”

애정과 관심의 표현인 이 말조차 이젠 편하게 들리지만은 않는다.


밥에 속한 모든 물성은 당신에게 어떻게 다가오는가?

왜곡된 유교 문화 속에서 여성에게 밥은 곧 노동이다. 자연스러운 노동이 아닌, 부과된 노동. 엄마와 며느리는 밥의 유의어 혹은 동의어쯤 되는 것일까? 이제 시대가 변해 밥 하는 일이 여자만의 일은 아니라고 하지만, 여러 관계와 상황을 타고 칭칭 감겨버린 뿌리까지 싹둑 끊어내기엔 아직 멀었다. 이미 내 주변은 나의 성향을 어느 정도 알기에 해 주면 해 줬지, 강요하는 사람이 없긴 하다.

우리 엄마와 시어머니 세대, 또 이전의 세대를 그려본다. 결혼이 곧 밥의 노동이었을, 그녀들의 강점, 적성, 취향, 꿈, 모든 건 우선순위에서 밀려났을 오랜 시간을 애도하고 싶다. ‘밥’의 최전선에 의지와 무관하게 서야만 했던 걸음들. 인내와 의무감 외 행복이기도 했을 그 걸음들이 모여 역사의 토대가 되었다. 행복의 선택지가 별로 없었기에 행복으로 가꾸어 가야만 했을 무수한 익명의 여성들. 비록 남존여비의 문화 탓만이 아닌 가난 때문이었다 해도, 더는 특정한 의무가 지정된 누군가에게만 몰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성에게 밥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면, 아이들에게 밥은 먹어야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큰아들이 어릴 때 생활 습관 형성에 좋다고 해서 구독했던 학습 교재에는 영상물도 포함되어 있었다. 한 영상에 재미난 노래가 나왔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음악에 맞춰 가사를 입힌 노래였다.


나는 밥이 좋아 좋아~구수한 밥이 좋아 좋아~맛있는 밥이 좋아 좋아~새하얀 밥이 좋아 좋아~밥밥밥밥밥 밥밥 밥밥! 밥밥밥밥밥 밥밥 밥밥! 밥밥밥밥밥 밥밥밥 밥밥 밥이 최고야!

    

흐려진 기억의 오류로 가사의 순서가 뒤바뀌거나 틀릴 수 있으나 거의 맞을 거다. 당시엔 정말 독특하고 기발한 노래라고 생각했다. ‘너는 밥을 좋아해야만 해. 잘 먹어야만 해!’라는 말을 우아한 클래식 음악에 담아 거부감 없이 전하고 있지 않은가!

생명 유지와 건강에 직결되기에 밥은 해야만 하는 것, 먹어야만 하는 것이 되기 쉽다. 매일 먹어야 하는 밥. 기왕이면 ‘have to’가 아닌, ‘want to’가 되는 방법은 정녕 없을까? 밥, 밥을 하는 행위, 밥에 속한 모든 물성이 조금 더 아름답게 다가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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