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밥하는 여자 아닙니다.

조리원 커뮤니티

by 수련화

가까운 지인들끼리 동네에서 책과 관련된 강의를 열었다.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참석을 했다. 멀리까지 나가지는 못해도 이런 기회를 빌어 육아 스트레스를 털어버리라며 남편도 배려를 해주었다. 회사 일정을 조정해 아기를 봐주겠다고 말했다. 내가 애써 부탁하지 않았는데 미리 알아서 챙겨주는 마음에 1차 감동, 좋은 강의를 들을 수 있다는 생각에 2차 감동. 강의가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육아 스트레스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강의가 한창 진행되던 중. 예상보다 길어지는 내용에 강사님께 살짝 진행시간을 언급했다.

"강사님, 내용이 생각보다 많네요. 오늘은 5시 40분 정도까지는 끝내주실 수 있을까요? 아니면 다음에 한 번 더 모실 수 있도록 일정을 잡아 보겠습니다."

"아... 다들 밥하러 가셔야 하죠? 알겠습니다!"

분위기를 가볍게 하기 위한 강사님의 농담이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굳이 저렇게 말씀하셨어야 했을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한참 동안 이어지던 강의 도중 강사님이 우리를 향해 질문을 했다. 중학교 미술시간에 얼핏 배웠던 기억이 나는데, 정확한 용어까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모르니까 배우는 것이지. 재미있는 강의 내용에 푹 빠져 우리들의 눈은 반짝였다.

"ㅇㅇㅇ 아닐까요?"

내 옆에 있던 분께서 조심스레 답변을 했다.

"오호~ 맞았어요! 대단하시네요! 집에만 있기는 아까운 인재신데요."


나만 불편하다 느낀 것이 아니었는지 곧바로 몇몇 분이 말씀을 이어주셨다.

"이 분, 집에만 계시지 않는데요?! 프리랜서 북디자이너로 활동하고 계세요."

"아. 그러세요? 전 여기 오신 분들, 집에 계시는 분들이 많은 줄 알고요."

"아니에요. 저분은 도서관에 근무하시고요, 저분은 사진작가세요. 이 분은 마을 활동가시고, 이 쪽에 계신 분은 출간까지 한 시인이시고요. 그리고 이 분은... 음... 책을... 좋아하시고 많이 읽으시기도 하고요."


나였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나였다.

책과 연관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도로 말씀하시려다 보니 나를 그렇게 소개해 주셨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순간 울컥하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흔히들 말하는 자격지심 비슷한 그런 마음이었을까. 직업이라는 것이 나를 이렇게 작아지게 만들기도 하는구나. 지금 어떤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나를 이렇게 초라하게 만들기도 하는구나. 악의가 없는 말이었다는 사실 쯤은 알지만, 왠지 마음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기분이 들었다. 크게 뚫린 구멍 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훅 하고 지났다.


'그래.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을 하는 것이 직업이 될 수는 없지. 집에서 아기 키워요라고 말했다면 상처를 받을까 싶어 미리 배려해 주신 것일 거야. 그런 걸 거야. 그런 거야...'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은 복잡하고, 머리 속은 엉켜버렸다. 무어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서러움이 밀려왔다. 누구에 대한 원망이 아니었다. 그저 지금의 내 모습이 초라해져 보였다. 싫다기보다 속상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회사를 다닐 적, 내가 사용한 명함을 모으는 취미가 있었다. 책상 서랍 속 조그만 상자를 열면 내가 그간 사용했던 명함들이 한 장씩 차곡차곡 모아져 있었다. 팀이 바뀌고, 부서가 바뀔 때마다 내 명함은 한 장씩 늘어갔다. 사원이 대리가 되고, 대리가 과장이 되면서 또 명함이 한 장씩 늘어갔다. 그렇게 모은 명함이 퇴사를 할 때쯤에는 제법 되었다. 그 명함들을 하나씩 넘겨보며 지나간 세월을 떠올렸다. 나는 10년 동안 모은 내 명함을 보면서 회사생활의 마지막 날을 마무리 했다.


그러고 보니 대학교를 졸업한 이래, 명함이 없는 생활은 지금이 처음이었다. 항상 나는 회사에서의 소속이 있고, 직위와 직책이 있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시시콜콜 설명하지 않아도 명함에 적혀있는 내용만으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대강은 알아챌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을 하는 것이 분명 큰 일이긴 하지만 직업이라고 인정받기는 어려웠다. 많은 사람들은 직업이 없으면 일을 하지 않는다는 표현을 썼다. 나는 하루 종일 육아와 집안일에 발을 동동 거렸지만, 어떤 자리에서는 그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일 뿐이었다.


남편과 저녁을 먹다가 이야기가 나왔다. 웬일인지 남편 눈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입을 삐쭉거리다가 나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나... 밥하는 여자 아니란 말이야! ㅠㅠ"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엉엉 소리를 내어 울었다. 그렇게라도 울지 않으면 가슴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남편은 속상해했다. 무엇보다 하루하루 작아지는 나를 안타까워했다. 예쁜 아이를 키워내는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며, 당분간 집안일을 하며 숨고르기를 한다고 생각하라며 다독여 주었지만 쉽사리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닦아내고 또 닦아내도 자꾸 눈물이 차올랐다.


그 날 이후, 묘한 오기라는 것이 생겼다. 얼른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회사생활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그게 나를 엄마가 되기 전의 상황으로 가장 빠르게 돌려줄 수는 있겠지만, 궁극의 대안은 될 수 없었다. 그보다는 나를 설명해 줄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함은 아니었다. 나 스스로 자신감 있고 당당하게 세상에 서기 위함이었다.


시간이 흘러 우리가 조금 더 성숙해지고, 우리 사회가 엄마들을 조금 더 큰 마음으로 바라봐 줄 수 있길 바란다. 육아를 그 무엇보다 가치 있는 일로 여겨주고, 집안일을 가정을 바로 세우기 위한 엄마들의 배려와 희생이라고 생각해 주기를 바란다. 아무것도 아닌 일이 아니라 한 아이를 키워내는 가장 값진 일이라 여겨주기를 바란다.

더 이상 엄마들이 주눅 들지 않고, 작아지지 않고, 어깨를 움츠리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그녀들이 좀 더 당당해도 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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