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속도로 일하고 있습니다 (아르테, 이혜린 지음)
저녁 산책을 다녀오는 길,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며 남편에게 말을 건넸다.
"오빠. 내가 집에만 있어서 답답해 보여?"
회사를 그만 둔지도 어느새 2년이 가까워 진다. 그동안 아이를 품어 세상에 내어 놓았고, 그 아이를 또 10개월이나 키워냈다. 눈도 못뜨고 혼자서는 움직이지도 못하던 녀석이 이젠 혼자 일어설 수도 있고, 손가락을 들어 음식을 집어 먹을 수도 있다. 한 생명을 키워냈으니 대단하다고 할만도 한데, 내 마음은 왠지 그렇지 않았다.
뭔가 허전한 느낌이었다. 아니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집에만 있는게 가끔 남편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집 안에 몸을 숨겨도 되는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키우는게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경력단절'이라고 이야기하는 세상의 잣대에서 여유롭지 못했다. 사실 내 주변에는 아이와 함께하는 이 시간이 아깝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 보였다. 아까운 능력을 집에서 썩히냐고 묻는 목소리들이 종종 내게 들렸다.(그 능력이라는 것이 결국 돈 벌어오는 능력 뿐이긴 했지만...) 나조차도 하루에 몇 번씩 그런 생각을 했다. 엄마가 되어서도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전쟁같은 육아라고들 하지만 어쨌든 시간을 쪼개어 살고 있는 그녀들에 비해 나는 같은 엄마였지만 너무도 다른 시간을 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괜히 내 잘못인 것처럼 느껴졌다.
"다른 사람들은 엄마이기 이전에, 여자로서의 삶을 잃고 싶지 않데. 어떤 엄마가 쓴 책에 그렇게 쓰여있었어. 그 구절을 읽는데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거지 라는 생각이 들더라."
"엄마가 되어서 아이를 돌보는게 여보가 없어지는 거야?"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 내가 일을 하고 있진 않으니까 그런거 같기도 하고. 지금 우리 시윤이 키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게 있는가 싶기도 하고. 어렵네."
내가 태어나 맞닥뜨린 가장 어려운 물음이었다.
문제가 정확히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는 문제. 당연히 아직 답도 찾지 못했다. 풀지못한 문제를 마음에 이고 있으니 늘 머리가 무거웠다. 일을 하는 것도, 아이를 키우는 것도 어느 것도 정답이 되진 못했다.
"여보가 없어지는게 아니라 회사 다니는 김과장이 없어지는 거겠지."
"그런가. 그런거겠지?"
"여자로서의 여보 인생은 아주 잘 쓰여지고 있어.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마. 기운내."
가끔은 다른 엄마들의 시간이 내게 부담을 준다. 일분 일초를 쪼개어 살고 있는 그녀들의 모습이 나를 주눅들게 한다. 그렇게 살아야 마땅한 시간을 집에서 까꿍놀이를 하느라 허비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어린이집은 언제 보낼거냐, 문화센터도 가지 않고 집 안에서 뭘 하는거냐는 물음은 늘 나를 작아지게 만든다.
그래, 정답은 없다. 그녀들의 시간도 옳고, 내가 보내고 있는 이 시간 또한 어쩌면 옳다. 우리 모두 각자의 인생에서 옳다고 믿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타인이 보내고 있는 시간을 부러워 하지도, 동시에 몰아세우지도 말일이다. 그저 그 엄마의 시간인 것이다. 그 엄마의 선택인 것이다.
다만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속앓이 하는 고민들은 그대로 내버려 두자. 일하는 엄마라도, 그렇지 않은 엄마라도 본인이 살아보지 못한 시간에 대한 동경과 상상은 인정해 주어야 하니까. 오늘도 끝없는 까꿍놀이 너머 엄마의 고민은 깊어져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