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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화 Apr 28. 2019

흐뭇하다는 건 즐기고 있다는 것

 벚꽃이 흩날리던 어느 날, 아이가 바닥에 쪼그리고 앉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움직이는 개미를 만난 날. 아이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림으로만 보아왔던 개미를 실제로 보다니. 아직 '개미'라는 단어를 제 입으로 말하지 못하니 녀석은 마음이 급해지는 듯했다.

 "꺠, 께, 개?! 째미, 맨미, 깬미"

 개미는 보도블록 사이를 종횡무진 움직였다. 아이에게 개미는 지금 집으로 가는 길이라고 열심히 설명해 주었으나 도무지 집에 가는 모양새로 보이진 않았다. 앞뒤 좌우로 정신없이 움직이는 개미들을 따라 아이는 한참 동안 오리걸음을 했다. 까맣고 조그만 개미를 그만큼이나 조막만 한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쪼끄, 쪼, 쪼끄!!!"

 "개미가 조그맣지? 조그마한 개미가 엄청 빠르지? 까만 다리가 아주 많네!"


 신호등의 초록불이 몇 번이나 바뀌고, 가끔 타고 다니는 낯익은 버스가 몇 번을 지나가도록 우리는 보도블록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벚꽃은 눈처럼 내렸고, 아이의 얼굴엔 벚꽃보다 더 환한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그 맑은 표정을 보고 있자니 우리의 시간이 잠시나마 멈춰버린 것만 같았다.

 나에게 '개미'라는 단어는 다시 쓰였고, 아이에게 '개미'라는 단어는 그렇게 쓰였다.


 엄마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아이에 대한 사랑은 넘쳤으나 그 사랑을 대했던 내가 서툴렀다. 한없이 사랑스러운 얼굴로 아이를 바라보다가도 조금만 힘들고 지치면 인상을 찌푸렸다. 쉽사리 잠들지 못하는 아이를 원망했고, 설거지할 시간조차 주지 않는 녀석에게 투정을 부렸다. 그러다가 방긋 웃는 얼굴에 그만 피식 웃어버리곤 했다. 죽을 만큼 힘들다가 아이의 웃는 얼굴에 모든 노고가 눈 녹듯이 사라진다는 선배 엄마들의 조언이 와 닿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와 감정의 줄타기를 하던 시절이었다.


 겉으로는 무던해 보여도 마음속 깊은 감정선까지 무던하지는 못한 터라 아이를 키우면서 남모를 속앓이를 많이 했다. 10년 가까이 일을 하다가 임신과 함께 전업주부가 된 탓도 컸다. 아이 탓을 하지는 않았으나 전혀 다른 환경과 전혀 다른 역할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내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널뛰기를 했다.


 하지만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고 했던가. 살림이 손에 익고, 아이가 커갈수록 내 마음의 파도도 조금씩 잠잠해졌다. 신랑이 출근하고 난 뒤, 해가 뜨고 바람이 불고 노을이 지고 깜깜해지는 그 시간들을 온전히 아이와 둘이 보내면서 우리만의 룰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아파트 화단의 꽃 무덤으로 무섭게 돌진하는 녀석을 위험하다며 훽 낚아채기보다 무릎을 굽히고 함께 꽃 냄새를 맡아보게 되었다. 위험해서 안돼 라며 무조건 끌어내기보다 철쭉꽃 속에서 꿀을 모으고 있는 벌을 조심스레 살펴보다가 날아오르는 벌을 보고 같이 줄행랑을 치게 되었다. 길을 가다 새소리가 들리면 두리번거리며 새가 날아간 곳으로 같이 뛰어가고, 커다란 가로수 옆 흙더미에서 누가 더 예쁜 돌을 골라왔나 내기를 했다. 비 오는 날은 위험해서 안된다며 베란다에 아이를 가둬두기보다 촉촉이 젖은 잔디언덕을 오르다 넘어지게 그냥 두었다. 비록 아파트 화단에서 만나는 자연이지만 아이가 나무와 꽃을, 그리고 풀내음을 몸으로 만나길 바랐다. 넘어지고 엎어지고 엉덩방아 찧는 모습을 바라보며 가슴 졸였지만 한편으로 대견했다. 아이의 가장 사랑스러운 모습들이 내 마음에 담겼다.


 몇 달 사이지만 뒤뚱뒤뚱 걷던 녀석의 걸음은 제법 단단해졌고, 거침없이 달려가던 걸음걸이에는 엄마를 기다리는 쉼표가 덧대어졌다. 아직 위험한 것을 알아서 피하지는 못하지만 만져도 되는지 엄마를 부를 줄은 알게 되었다. 물웅덩이에 호기롭게 발을 풍덩 담갔다가도 아닌가 싶어 얼른 엄마 눈치를 살필 줄 알게 되었다.


 아이가 그렇게 커가는 동안 내 마음도 조금씩 자랐다.

 너무 예쁘다고 했다가, 너무 밉다고 했다가, 또다시 너무 예뻐서 어쩔 줄 모르겠다고 했던 내 마음에도 조그마한 창문이 생기고 시원한 바람이 통했다. 꽉 막힌 것처럼 답답하기만 하던 내 마음에도 숨구멍이 트였다. 아직 힘들고 지칠 때가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커가는 아이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볼 수 있는 조금의 여유가 생긴 것이다.

 널뛰던 마음이 사그라들고, 그 자리에 잔잔한 물결이 들어찼다.

 동그랗게 쪼그리고 앉아있는 아이를 기다려 줄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늘도 나는 아이와 산책을 나선다.

 오늘은 도토리를 줍게 될까, 강아지똥을 보게 될까. 흙을 주워 먹을 수도 있고, 벌레 먹은 나뭇잎을 내게 선물할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소중한 그 순간에 아이와 내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나 또한 그 시간을 즐기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우리의 산책은 느리지만 소중하고, 세상 무엇보다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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