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 나를 쓰는 방법의 재발견.

by 수련화

브런치에 올라오는 글 중엔 유독 "퇴사"와 관련된 글이 많다.
퇴사를 고민하면서 드는 생각들, 막상 회사를 나오던 날의 기억, 그 과정에서의 에피소드들, 퇴사 후 생활에 대한 기록들. 구구절절 가슴 한편을 울려대는 공감 스토리를 듣고 있자면 퇴사라는 것이 한 개인이 겪게 되는 경험들 중에 적지 않은 파문을 남기는 일이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나와 내 남편은 30대 중반에 그 퇴사라는 것을 직접 경험하고, 또한 바로 옆에서 지켜보았다. 나는 작년 10월, 10년 다닌 회사를 그만두었고 남편은 지난 6월에 퇴사했다. 우리 둘 다 스스로 퇴사의 이유와 시기를 정했고, 서로가 서로의 퇴사를 응원하고 지지해 주었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지금, 인생의 새로운 페이지를 써내려 가는 중이다.



# 회사에서 나를 쓰다.
회사생활을 하는 많은 직장인들이 회사에서 본인을 소모품처럼 사용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여러 매체에서도 이젠 관용구처럼 사용되는 표현이기도 하다. 함부로 쓰이다가 버려질 것을 염려해 많은 사람들이 퇴사를 결심하기도 한다. 더 늦기 전에 본인의 가치를 찾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그보다 많은 보통 사람들은 회사에서 본인을 더 많이 써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돌아보면 나와 내 남편도 지난 10년간 그래 왔던 것 같다. 그것은 내 능력에 대한 검증이라는 이름으로, 내 성과에 대한 인정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곁에 머물렀다. 상사들은 칭찬했고, 동료들은 부러워했다. 후배들은 그런 우리의 모습을 닮고 싶어 했다. 빈말이었을지 모르지만, 나중에 선배처럼 되고 싶다는 후배 녀석의 말이 내심 싫지 않았다.

회사에서 나를 쓰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내게 끊임없는 시도와 도전을 요구한다. 가끔은 경영지원 직무로 입사한 직원에게 영업활동을 요구하기도 하고, 운영 직무로 입사한 직원에게는 마케팅 부서로의 전배를 통보하기도 한다. 적절한 인력배치를 통해 직원의 쓰임을 고려한다. 직원을 잘 쓰는 것이 회사의 경쟁력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결정이라는 것이 경영진이 그리는 큰 그림에는 부합될지 모르나, 개인의 커리어 따위는 깊이 고민해주지 않는다는 것이 함정이지만 말이다.
회사가 원하는 방향으로 잘 따라와 준 직원에게는 인센티브도 주어지고, 승진의 기회도 준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권한도 준다. 별도의 팀을 꾸려주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칭찬도 아끼지 않는다. 물론 그 또한, 더 잘 쓰기 위함이다. 회사가 가지고 있는 자원을 최대한 잘 사용하기 위한 노력이다. 직원은 회사의 인적자원이니까.

"회사의 시스템"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그 쳇바퀴 속을 열심히 돌다 보면 어느 날, 나는 원래 어떻게 쓰였던 사람이지 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의 출근길에, 누군가의 퇴근길에, 친구들이랑 맥주 한 잔 하고 돌아서는 골목길 어귀에서 불쑥 그 생각이 치밀어 오른다.
퇴사에 대한 고민은 많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예고도 없이 갑자기 찾아든다.

# 이제야 내가 나를 쓸 수 있게 되다.
갑자기 찾아든 퇴사에 대한 고민은 머릿속에서 좀처럼 떠나지 않는다. 아예 시작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첫 발을 내디딘 퇴사에 대한 고민은 걷잡을 수 없이 내 생활을 잠식해 온다. 퇴사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적어도 10개는 만들어 놓고, 매일매일 회사를 그만두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게 된다. 어느 곳에서든 귀한 나를 소모품처럼 쓰고 있는 회사에 대한 성토를 하고 싶어 진다.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늘 입에 퇴사하겠다는 말을 달고 다니는 동료를 만나게 된다. 그들은 십중팔구 힘든 회사생활을 좀 더 잘 버티기 위한 방편으로 퇴사에 대한 수다를 늘어놓는다. 정작 퇴사에 대한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진짜 퇴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조용히, 은밀하게, 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굳은 심지를 가지고 앞으로 본인을 제대로 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작년 10월, 더 이상 부산스럽게 출근 준비를 하지 않게 된 나는... 사실 막막해졌다. 시간과 기회는 주어졌으나 정작 앞으로 나를 어떻게 써야 할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아니 안다고 생각했는데 모르고 있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나는 10년 동안 회사에서 배웠던 대로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는 것에 열중했다. 배워야 변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나 다운 나를 찾기 위해 뭔가를 계속 경험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내 모습을 외면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으나, 기회가 주어졌으니 뭔가 새로운 것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남들처럼 운동도 해야 할 것 같았고, 퇴사 여행이라며 홀로 여행을 떠나야만 할 것 같았고, 회사원들이 업무에 열을 올리고 있을 평일 낮시간엔 느긋하게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셔주어야만 할 것 같았다.

한 두 달쯤 지났을까. 마음이 점점 조급해지는 것을 느꼈다. 괜히 다른 사람들의 퇴사 후기를 뒤적이고, 오늘 하루도 조금씩 뒤쳐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후회하게 되었다. 마음속 한편이 바스락거렸다. 회사에 출근했더라면 시답잖은 보고서라도 한 장 남겼을 텐데,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사그라져가는 내 하루가 아쉬웠다. 그렇게 청춘의 30대 중반을 살고 있는 내 모습이 아주 가끔 한심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러려고 퇴사한 것은 아닌데... 잠자리에 누우면 자그마한 후회의 조각들이 머릿속에 들어찼다.

나를 제대로 쓰기 위해 퇴사했다고 말했지만, 정작 나는 나를 쓰는 방법을 모르고 있었다.

# 오늘의 나를, 쓰다.
어렸을 적부터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다. 재미난 이야기를 지어내는 재주는 아니어서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을 쓰지는 않았으나, 그저 내 이야기를 남기는 것에는 조금의 소질이 있었다. 틈틈이 엄마가 내 일기장을 재미난 수필집 보듯 들춰보신다는 것을 알고 일기는 더 이상 쓰지 않게 되었으나, 때와 장소에 맞는 짧은 토막글을 쓰는 것은 늘 즐겨왔다.

퇴사 후 지금까지 한결같은 내 고민은 "나를 제대로 쓰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혹자는 잘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구분해 보라고 하고, 또 다른 이는 가슴이 뛰는 일을 하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선뜻 선택하고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30대 중반에 찾아온 고민의 무게를 실감하는 순간이다.

내가 지금까지 지나온 시간들에 대해 부정하고 싶진 않았다. 내가 지나온 자취가 분명, 앞으로 내가 써나 갈 날들에 대한 거름이 되어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 날부터 나는 지금까지 내가 지나온 시간, 내가 만났던 사람들에 대해 하나씩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써내려 간 기록들이 오늘의 나를 설명해 주고, 나아가 내가 앞으로 언제, 어디서, 어떻게 쓰일 수 있을지를 말해줄 거라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오늘의 나를 쓰는 기록은 그리 거창하진 않다.
내가 읽은 것들, 내가 느낀 것들, 내가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짤막한 추억들. 그리고 내가 원하고 하고 싶어 하는 것들에 대한 생각들.

내가 쓴 글들은 나의 시간을 담고 있다.
내 시간의 조각은 모여서 나의 순간이 되고, 나의 인생이 된다. 그렇게 나라는 사람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한 발자국씩 "나라는 사람을 쓰는 방법"에 가까이 가고 있다. 조금은 느리지만, 차곡차곡 시간을 쌓아 내게 꼭 맞는 그곳으로 가고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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