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크다스 멘탈女

내 안의 두려움이랑 연애하기!

by 수련화

10년 다닌 회사를 그만두고 세상 밖으로 홀로 나선 내가 마주친 첫 상대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도, 부모님의 걱정 어린 눈빛도, 줄어드는 통장 잔고도 아닌...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두려움이었다. 어느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데, 하루가 다르게 점점 더 깊숙한 곳으로 기어들어가고 있는 나 자신이었다.


회사를 다닐 때 나는 제법 일을 잘 하는 직원이었다.
경영 성과를 좌지우지할 만큼의 큰 프로젝트를 도맡아 할 만큼의 직급은 아니었지만, 맡은 바 업무의 120%를 해내고야 말겠다는 욕심 있는 직원이었다. 적당히 인정받았고, 그랬기에 회사생활이 그다지 힘들지는 않았다. 인복이 있어서인지 똘끼 있는 상사를 만나지도 않았고, 무턱대고 대드는 후배 녀석도 없었다. 오히려 실무자 입장에서 차부장들을 한 번씩 들이받아 버리는 당돌한 직원이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10년 동안 그런 모습으로 살다 보니 내가 입고 있는 이 옷이, 내게 내려지는 사회의 평판이 회사의 이름값인지, 내 이름값인지 구분이 안될 만도 했겠다. 나는 그 사실을 퇴사한 뒤에야 서서히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막상 퇴사를 한 직후에는 마음이 엄청 여유로웠다.
뭐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몇몇 지인은 주변에 퇴사한 사람 중에 내가 가장 행복해 보인다는 이야기까지 전해왔다. (내 얼굴에 드리워진 웃음이 진짜인 것 같다고 했다.)
회사에 다닐 때 내가 일 년에 얼마를 집행하던 사람인데, 내가 어떤 업무까지 해봤던 사람인데, 이런 걸 못하겠어하는 생각이 앞섰다. 쉽게 말해 세상 무서울 것이 없었다. 세상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무궁무진했다. 사람들은 왜 이런 노다지 기회를 놓치고 있는 거지 하는 허세도 앞섰다.
당장 사무실을 얻고 사업자등록만 하면 금세 개인사업자가 되고, 물건 몇 개 가져와 팔면 판매업도 할 수 있을 기세였다. 어느 분야를 선택해서 시작하느냐는 온전히 나의 선택이었다. 내가 정한 방향이었고, 그것이 곧 나의 미래가 될 일이었다.
퇴사 초기, 나는 그렇게 부푼 꿈에 빠져서 잠시의 휴식시간을 내게 선물했다. 10년이나 일했으니 이 정도는 내게 선물처럼 주어져도 무방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두려움이라는 녀석 따위 누구인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연말이 다가왔고, 직장인이 아닌 사회인으로서의 첫 새해 계획을 세웠다.
멋있게 다시 시작하고 싶었고, 지금부터 5~10년쯤 꾸준히 해서 나의 두 번째 전문분야를 만들고 싶었다. 퇴사할 때의 포부처럼 멋진 인생 중기를 맞이하기 위한 첫걸음이 시작되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당당한 여성은 물론이고, 현명한 엄마로서의 두 마리 토끼 모두 잡고 싶었다. 분명 어려운 일이지만 어느 누구도 아닌 나니까, 나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관심 있었던 교육들도 찾아서 들으러 다니고, 모임도 나가고, 회사원이었으면 꿈도 꾸지 못할 '오후 2시의 지하철'도 맘껏 누렸다. 내가 회사에 있을 때 세상은 잠시 쉬고 있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세상은 바삐 돌아가고 있었다. 서울의 지하철은 하루 종일 붐볐고, 사람들은 하루 종일 바쁘게 어디론가 걸어 다녔다. 출퇴근 시간에만 종종걸음 하는 줄 알았는데 사람들은 이전에도 항상 종종 거렸었나 보다.

이걸 해볼까, 저걸 해볼까 기웃거리는 사이에 불쑥 새해는 찾아왔고 내 마음은 조금 조급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두려움이라는 녀석이 슬쩍 고개 내밀긴 했지만 아직 무서워 벌벌 떨 정도는 아니었다. 여유로운 하루하루는 내게 기다려왔던 아이도 선물해 주었고, 그즈음 임신 테스트기에 선명했던 두 줄은 하루에도 몇 번을 보아도 미소 짓게 하는 내 엔도르핀이자 자랑스러움이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었다.

그런데 참 신기하지. 내가 가장 여유로웠고, 내가 가장 행복했던 그때.
내 쿠크다스 멘탈이 조금씩 바스락 거리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쯤이었다.

실행보다는 걱정이 앞서고 한 걸음 내딛기 전에 적어도 열 번은 생각해 보는 이 고질병.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경우와 온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을 법한 다양한 목소리까지 모두 고려한 뒤에 나름 최적안을 찾아 움직이는 꽉 막힌 성질머리. 남들의 시선, 남들의 말 한마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습자지 팔랑귀.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중에서 나다움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고집.
회사에 있을 때 이런 나의 성향은 급진적이고 도전적이진 않았으나 규율과 규칙 속에서 최선을 찾아내는데 최적화되어 있었고, 폭발적인 성과를 보장하진 않더라도 리스크 없는 최대한의 안정적인 성과를 보장해 주었다. 되돌아 생각해보니 나는 위험성 제로에 가까운 보장성 보험 같은 부하직원이었으리라. 믿고 맡길 수 있는 후배 녀석이었으리라.

하지만 상황은 변했다. 세상은 리스크 투성이.
내 한 몸을 지켜줄 최소한의 울타리, 회사라는 울타리는 지금 없다. 모든 것을 내가 만들어 가야 했다. 여장부처럼 뛰어나가고 싶은데, 하늘이 주신 귀한 선물이 자리하기 시작한 내 몸은 영 말을 듣지 않았다.
하루에 3~4번은 기본, 심할 때는 7~8번씩 구토를 해대는 것은 기본이요. 밥 냄새 하나 냉장고 반찬 냄새 하나에도 요 녀석은 기가 막히게 반응했다. 아직 5센티미터도 안 되는 녀석이 예민하기도 하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침대에 꼬꾸라져 있는 날이 하루 이틀 늘어났다. 버스랑 지하철은 엄두도 못 냈고, 택시도 근근이 타고 다녔다. 택시를 타고 내리면 어김없이 심한 기침과 구토가 이어졌다.

물론, 순전히 아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 마음속의 두려움이 점점 고개 들기 시작했고, 왠지 모르게 나는 점점 자신감을 잃어갔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내가 새로운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일과 아이 중 더 중요한 것은 아이가 아닐까?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미래를 꿈꾸고 있는 건가?

아무것도 하기 싫고, 아무것도 듣기 싫었다.
그나마 그렇게 온 겨울을 꼬박 보내고 나서야 흩날리는 벚꽃과 노란 개나리가 비로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나는 조심스레 내 안의 두려움들에 대해 찬찬히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렇게 바스락 거리는 멘탈을 부여잡고, 진짜 나를 찾아가는 걸음을 한 발자국 떼었다. 두려웠지만 스스로 해내야만 하는 일이었다. 이제 진짜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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