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나에게로 와서 날카로운 비수가 되었다.

퇴사자에게 조금은 따뜻한 눈길을!

by 수련화

세상을 살다 보면 잊혀지지 않는 순간들이 있다.
때로는 너무 행복해서, 때로는 너무 기뻐서... 우리는 그렇게 그 순간들을 오래도록 기억한다. 하지만 때로는 분하고 억울해서, 혹은 큰 상처를 받았기에 잊을 수 없는 순간들도 있기 마련이다.
옛 말에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모두들 한 두 번쯤은 무심코 돌을 던져본 기억도, 또 억울하게 돌 맞은 개구리가 되어본 경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꽃, 김춘수 作


얼마나 아름다운 시인가. 꽃잎 흩날리는 봄날에 읽으면 마음 한 구석이 분홍분홍 해지는, 가히 한국인이 사랑하는 스테디셀러 시 구절이라 할만한다.
다정히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다정히 내게 다가와 꽃이 되어주면 좋으련만... 오늘은 다정히 다가와 내 마음에 비수를 꽂아버린 한 사람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내게 쉽게 잊혀지지 않을 그 순간.

작년 10월 중순쯤에 퇴사한 나는 한껏 들뜬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퇴사 직후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그때는 사실 퇴사했다는 사실보다는 회사에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그저 행복해할 시기였다. 마치 2~3주 휴가를 받아 멀리 해외여행을 떠나 있는 마음 같다고나 할까. 어떤 사람은 무시해 버리라고도 했지만, 이틀에 한번 꼴로 울려대는 예전 회사 동료의 전화가 왠지 내가 퇴사자가 아닌 장기 휴가자임을 입증해 주는 느낌까지 들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주말 대학원을 병행하고 있던 나는 퇴사 후 온전한 대학원생으로 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30대 중반에 학생 코스프레라니. 어색했던 백팩이 내 몸 같이 느껴지고, 캠퍼스에서 만나는 학부생들에게서 느껴지던 이질감은 금세 동질감으로 바뀌었다.
"그래. 누나도 학생이란다. 훗!"

그러던 중 우리 학과 내에서 창업아이템 공모전을 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가까이 지내던 오빠랑 참가신청을 했다. 상대적으로 회사를 다니는 그 오빠보다는 왠지 시간적 여유가 있는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고, 이번 기회에 창업 아이디어를 모아 사업모델을 만들어 보자는 호기심도 있었던 것 같다. 당장 창업을 하겠다는 당찬 포부보다는 경험을 쌓아보자는 쪽에 무게를 두고 가볍게 시작했던 퇴사 후 첫 프로젝트. 나는 일하듯 공부하듯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

드디어 결전의 본선 PT.
대학원생 코스프레를 도와주던 후드티와 운동화를 벗어던지고, 회사에 출근할 때 입었던 단정한 원피스도 꺼내 입었다. 머리도 단정하게 묶었던가. 마치 사장님 앞에서 보고를 준비하던 김 과장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퇴사 후 첫 프로젝트를 보란 듯이 성공시키겠다는 각오와 함께 그 날의 발표를 순조롭게 마무리하고 싶은 바람이 저 깊숙한 곳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던 그때.

야. 이건 반칙이지!
실업자랑 같은 팀 하는 게 어딨어.
우리는 다 회사 다니면서 준비한 건데.


여긴 어디, 나는 누구.
가까운 자리로 다가오는 동기 오빠에게 방긋! 하고 인사를 건네었더니, 그는 나에게로 와서 날카로운 비수를 꽂았다. 불러주지 말걸. 인사하지 말걸. 아는 척도 하지 말걸.

불과 몇 초 사이에 수만 가지 생각이 들었으나, 나는 정작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 그냥 못 들은 체 했던 것 같다. 내 주변에 사람들도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고, 그냥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주변 사람들은 그 상황을 외면했다기보다 그 말이 내게 상처가 되었을 거라고 인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그리 생각하는 게 내가 더 편해지는 길인가.

불과 3초 남짓, 5초도 안 되는 그 경험으로 인해 나는 한껏 주눅이 들었다.
반박할 수 없었다. 나는 퇴사를 했으니 당장은 실업자가 맞지. 장난스레 동기 오빠의 말을 되받아 칠 재간도 없었다. 세상 사람들 눈에 난 그저 실업자구나.

순간 마음속에서 두려움이라는 녀석이 몽실! 하고 살아났다. 장기 휴가자에서 퇴사한 백조로 가면을 벗어야 하는 순간. 마치 요술공주 샐리가, 밤의 요정 세일러문이 5초 만에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말이다.

간판이 없는, 명함이 없는, 소속이 없는, 직급이 없는 내 모습이 그렇게 작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대학원에서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도 가만히 보니 저마다의 간판을 걸어놓고 만나고 있는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두려움은 곧 내게 관계에 대한 회의도 함께 가져다주었다.

"타인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 중에서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것 같기도 하다. 특히 한국인들이 극복하기 어려운 두려움이라고 해두자. 남의 시선을 중시하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닐 텐데, 멘탈이 바스락 거리는 타이밍에 훅! 하고 들어오는 타인의 말 한마디는 우리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기 십상이다.

퇴사를 하고 나서 만나게 되는 첫 번째 두려움은 바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아닐까. 깜짝 놀랄 만큼 차가운 시선이 아니라 무심결에 던져진 말 한마디가 가진 날카로움에 베이는 것이다. 마치 종잇장에 알듯 모를 듯 베여 피가 맺히는 것처럼.

아직 그 오빠의 말을, 그 순간의 당황스러움을 온전히 이겨내고 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누군가의 눈에 아직 나는 실업자고, 게다가 점점 배가 불러오고 있는 예비 장기 실업자의 반열에 올라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아주 조금씩 조금씩 나만의 색깔과 자존감을 회복하며 멘탈을 추스르고 있다고는 말할 수 있겠다. 그때까지 그 오빠는 좀 멀리할까 한다. 언제 다시 바스락 댈지 모르는 내 멘탈의 건강을 위해!

아직 그 무심한 시선을 버텨낼 만큼 내 멘탈이 단단해 지지는 않은 것 같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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