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낱 숫자 따위에 매달리는 인생

by 수련화

숫자가 있어 참 감사하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명확하고 분명한 기준을 제시해 주는 것은 역시 숫자만한 것이 없었다. 적당히 잘했다, 꽤 잘했다는 이야기 보다는 이번 시험에서 몇 점을 받았다고 말하는게 합리적이라고 믿었다.

회사 다닐 적엔 또 어땠는가. 하루하루 숫자와 함께 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숫자가 없으면 설명되지 못할 자료들이 즐비했고, 모든 보고에는 우선 숫자를 먼저 들이밀어야 했다. 숫자가 빠진 업무진행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숫자는 내게 또다른 언어였고, 기준이었고, 하루를 살아가는 잣대였다.




작년 생일이었다. 남편이 내게 생일선물이라며 조그마한 박스 하나를 내밀었다. 아직 한국에서는 시판되지도 않은 것이라며 해외직구도 못하는 사람이 어찌어찌 중국에서 파는 녀석을 미리 구했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스마트한 인생을 살고 싶다던 내 투정에 대한 답변이었고, 소소한 챙김이었다.


녀석은 내 생활에 깊숙이 들어오지는 못했으나, 본인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주었다.
열심히 시간을 표시해 주는 것은 물론, 하루에 몇 걸음을 걸었는지도 꼬박꼬박 알려주었다. 목표로 설정해 둔 만보에 다다르면 반짝! 하고 훈장그림도 보여줬다. 두근두근 맥박도 재어주고, 오래 앉아 있으면 좀 일어나서 움직이라고 징징대며 경고도 해준다. 울려대는 전화를 받으라,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라고 알려주는 건 기본중의 기본이라 두 말하면 입이 아플 지경.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녀석의 징징거림이 자꾸만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좀 더 편해지자고 선택한 것이 되려 내 발목을 잡고만 것이다.

7시 30분에 알람을 맞춰두었다. 상쾌한 기분으로 맞이해야 할 월요일 아침. 벽에 걸린 시계는 이미 7시 30분 언저리를 가리키고 있으나 내 손목에 찬 디지털 시계는 정확하게 지금이 7시 27분이라고 말하고 있다. 왜 일찍 일어났지? 3분만 더 있다가 일어날까? 잃어버린 내 3분을 어디가서 찾아야 하나 방황하는 내 눈빛은 더듬더듬 핸드폰을 찾아헤맨다.

핸드폰을 켜 지난 밤에 숙면을 했는지 어플로 확인해 본다. 깊은 숙면 21분. 전체 사용자 중에 1% 에 들만큼 수면의 질이 좋지 않다는 그래프가 뜬다. 분명히 8시간이나 잤는데, 분명 푹 잤다고 생각했는데. 눈을 뜨자마자 나는 지난 밤에 잠을 설친 것 같은 기분에 몸이 찌뿌드드 해졌다.

운동을 나갈때는 또 어떠한가.
막달 임산부가 되고 나서 목표 걸음수를 5천보 정도로 조정해 두었다. 아침저녁 30분씩 산책을 나가면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 목표임에도 불구하고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은 고작 5천보 채우기 힘든 날도 있다. 30분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숫자로 표시되는 만보계에 4,800보 남짓 숫자가 뜨면 나머지 200보를 어떻게 채우지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괜히 엘레베이터 앞을 서성이거나 집 앞을 빙~ 둘러 걷는다. 목표 걸음수를 채우지 못하면 운동도 안하는 못난 엄마가 될 것 같은 생각에서.




우리가 사는 하루하루가 모두 자로 재어 똑 떨어지는 것이 아닌데, 왜 나는 자꾸 숫자에 얽매이는 것일까. 자는 것과 걷는 것. 어느 것 하나 내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것이기는 하나 하루에 몇 시간을 자고, 하루에 몇 걸음을 걷는 것이 그리 중요할까. 숫자로 보여지는 그 것들의 성과에 연연해 하며 신경을 쓰고,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오히려 내게 독이 되지는 않을까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된다.

내 생활을 빈틈없이 관리하겠다는 생각은 물론 훌륭하다. 하지만 그 것으로 인해 멘탈이 바스락 거린다면, 자꾸만 신경이 쓰이고 긴장된 어깨 끝이 굳어져 온다면 가끔은 그대로 내버려 두어도 좋은 것이 아닐까. 조금은 편하게 살고, 조금은 쉽게 생각해도 좋은 것이 아닐까.

어제부터 밴드를 손목에 차지 않고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 아침, 아침 햇살 드는 창문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아~ 잘 잤다! 좋은 아침이야!"

그 것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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