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사유의 방법이자 존재의 방식
내가 꾸는 꿈은 글을 통해 나 자신을 정립하고, 동시에 세계와 대화하는 것입니다. 글은 단순히 표현의 도구가 아니라, 나의 내면을 검증하고 외부와 연결하는 매개이자 통로입니다. 살아가는 동안 마주하는 수많은 경험과 관찰은 그 자체로는 흩어져 사라질 수 있는 파편이지만, 그것들을 사유의 대상으로 전환하는 순간, 나는 그것에 새로운 무게와 맥락을 부여합니다.
글쓰기는 그 과정을 가시화하는 행위이며, 내 삶의 여러 층위를 하나로 묶는 끈과도 같습니다. 생각을 문장으로 옮기는 순간, 내 사고는 형태를 얻고, 방향을 갖추며, 하나의 체계 속에 자리를 찾습니다. 결국 글은 내가 살아온 과정을 기록할 뿐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증명하는 흔적이 됩니다.
하지만 글쓰기는 단지 자기만족을 위한 고립된 행위에 머물지 않습니다. 내 문장은 언제나 누군가와 마주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일방적인 설득이 아니라, 차이를 전제로 열리는 대화의 시작입니다. 독자가 끝까지 읽지 않아도 좋습니다. 글이 누군가의 눈에 스쳐 지나가며 일순간의 사유를 흔들었다면, 이미 제 역할을 다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렇기에 글은 선언이나 명령이 아니라 제안이며, 강요가 아니라 초대입니다. 나는 늘 “이런 시각도 있다”라는 태도로 글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읽히든 외면되든, 그 가능성 자체를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글쓰기를 지속하는 이유입니다.
나의 글쓰기는 기록의 윤리와도 깊게 맞닿아 있습니다. 글은 순간의 감정으로만 존재하지 않고, 책임을 동반한 흔적이 되기 때문입니다. 특정한 시간 속에서 내가 무엇을 보고,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증명하는 기록으로 남습니다. 시간이 흘러 다시 그 글을 읽을 때, 나는 과거의 나와 마주하게 되고, 사유의 궤적을 복원하게 됩니다. 사진이 빛과 감각을 붙잡는다면, 글은 사고의 구조와 맥락을 보존합니다. 그래서 글쓰기는 단순히 위안을 얻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연결을 강화하고 동시에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행위가 됩니다. 글은 반복되는 일상에 갇히지 않고,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는 또 다른 차원의 지속성을 부여합니다.
나는 또한 말보다 글을 더 신뢰합니다. 말은 즉흥적이고 흔들리며, 종종 사라져 버립니다. 순간의 기분과 맥락에 따라 쉽게 변형되고, 때로는 부정확하게 남습니다. 그러나 글은 구조와 기록을 통해 흔들림 없이 버팁니다. 말로는 차마 다 전하지 못한 무게, 시의적절하지 못해 입 밖에 내지 못한 사유들은 글 속에서 살아남습니다. 글은 더딘 방식이고, 정리와 퇴고의 과정을 거쳐야만 세상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느림 때문에, 글은 더 깊고 멀리 도달할 수 있는 힘을 갖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사회, 정치, 음악, 문화, 일상이라는 다양한 장면을 글로 남겨왔습니다. 이는 단순히 취향을 늘어놓는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세계와 맺는 관계를 이해하고, 재구성하며, 다시 질문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음악을 통해 감각의 질서를 탐구했고, 사회를 돌이켜보며 스스로를 재발견했으며, 일상 속 문화와 사회의 장면을 통해서는 인간이 살아가는 구조를 성찰했습니다. 내 행보의 공통된 태도는 언제나 같았습니다. 어떤 현상이든 소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해체하고 다시 이해하려는 시도. 정답을 좇기보다 탐구를 택하고, 단순한 기록에 머무르기보다 구조와 맥락을 세우려는 태도 말입니다.
결국 내가 꾸는 꿈은 글쓰기를 통해 세계와 나 자신을 동시에 이해하는 데 있습니다. 글은 내 사고를 정리하고, 혼란을 질서로 전환하는 도구이자, 나를 넘어서는 길입니다. 그 길 위에서 나는 멈추지 않고 쓰고, 기록하고, 사유하며, 언젠가 누군가와 깊이 연결되기를 기다립니다. 타인의 이해를 전제로 쓰기보다, 내 사유의 흔적이 언젠가 타인의 질문과 만나는 그 우연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삶은 글쓰기를 단순한 취미나 도구로 두지 않고, 사유의 방법이자 존재의 방식으로 삼는 삶입니다. 글을 쓰며 나는 스스로를 구성하고, 동시에 세계와 대화합니다. 그 과정은 완결되지 않으며, 미완으로 남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미완의 상태 속에서 나는 끊임없이 나아가고, 다시 쓰며, 계속해서 사유하는 존재로 머물고자 합니다.